도미토리 숙소 옆 침대의 너는 내가 묵는 사흘 내내 밤을 꼴딱 새고 들어와 낮에는 잠을 잤지. 그래서 내가 체크아웃하는 날에야 겨우 너와 인사를 할 수 있었어. 분명히 너는 너의 이름도 말했을 것이고,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말해주었을 텐데 난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그냥 도미토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와 하는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인사였거든. 그래서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를 나가려는 나를 따라와 내 이름을 부르는 너를 보고 조금 당황했었어.
“세상에나, 내가 이곳 남미(콜롬비아)에서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아시아인(한국인)을 만날 줄은 몰랐어. 심지어 남미(볼리비아)에서 3년간 봉사활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반년씩 여행을 하는 아시아인이라니...”
솔직히 나를 아시아인라 부르고, 콜롬비아도 남미, 볼리비아도 남미, 이렇게 자기 근처 나라 아니면 다 뭉뚱그려버리는 너를 무식한 유럽인이라고 생각했었어, 미안해!
“사실 나 모든 게 다 필요없다고 생각했어. 여기 여행 와서도 낮에는 자고 밤에는 카지노만 갔었어. 가지고 온 돈이 다 떨어졌고, 나는 오늘 돌아갈 비행깃값을 찾아서 카지노에 갈 생각이었어. 그리고 그 돈도 떨어지면.......”
너무나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네 눈이 너무나도 초롱초롱해서 난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널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 너처럼 세상을 열심히 사는 사람을 내가 만나다니..... 나 정말 생각이 바뀌었어. 나 이제 집으로 돌아갈 거야. 나도 열심히 살고 싶어졌어 ”
사실 너와 5분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은데.. 짐을 싸면서 네가 하는 질문에 형식적으로 답했던 것 같은데.. 그게 너를 다시 살게 하는 말이 되었다니,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네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해서 난 쉽게 입을 뗄 수가 없었어.
그러면서 너는 내게 선물이라며 100달러를 내밀었어. 우리가 묵었던 숙소가 하룻밤 채 20달러도 되지 않았고, 심지어 넌 조금 전 돈이 다 떨어졌다고 말했는데,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돈을 선물로 준다고? 난 그 돈을 받지 않겠다며 뒷걸음질 쳤지만 넌 내 손에 있던 여권을 낚아채 그 돈을 조그맣게 접어서 여권케이스에 끼어 다시 나에게 건넸지.
“제발 받아줘. 이건 네가 날 살게 해준 것에 대한 선물이고, 내가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의 징표야. 잘 가! 여행 잘하고 아시아에도 잘 돌아가!”
그러고는 넌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 버렸어. 엄청나게 큰 배낭을 메고 있고, 예약한 버스가 이미 숙소 앞에 도착해서 날 기다리고 있어서 난 널 쫓아 올라갈 수 없었어.
지금도 그 100달러는 내 여권 케이스에 꽂혀 있어.
넌 어떻게 살고 있니? 네 말대로 열심히 살고 있니?
네가 준 100달러는 나의 부적이 되었어. 난 힘들 때 종종 그 100달러를 꺼내 봐.
정말로 그 100달러가 너를 다시 살게 했다고 믿으며, 너를 열심히 살게 해준 이 부적이 나도 지켜준다고 생각해.
나 때문에 열심히 살겠다는 너를 생각하며 나도 힘을 얻어.
네 이름도, 네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지만, 나의 부적의 힘이 아주 멀리까지 뻗어, 너도 잘 살고 있기를, 열심히 살고 있길 기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