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러기 Mar 09. 2023

겨울비

‘겨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영화나 노래가 있으신가요?

갑자기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잠에서 깨었는데, 평소 이불도 잘 덮지 않고 자던 제가 작은 무릎담요에 제 몸을 구겨 넣어 덮고 있었어요. 추위에 턱이 달달 떨리고 입김이 나오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창밖을 봤더니 사람들이 가죽점퍼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어요.


뭔가 크게 잘못된 것만 같았어요.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모기장을 젖히며 침대에서 나왔어요. 정말로 추위로 몸을 제대로 펴고 일어나기도 힘들었어요. 그리고 벽의 온도계를 보았습니다.

‘18도?’

제가 잘못 보았나, 온도계가 고장이 났나, 내가 어디 아픈 건가? 하지만 여전히 창밖에는 모두 겨울옷을 입은 사람들이었어요. 분명 영하의 날씨인데, 아마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그건 지구에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다 제가 여기 아마존에 처음 온 날이 기억이 났어요. 한겨울 서울에서 삼일을 꼬박 여행해서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곳 아마존의 날씨는 40도에 가까운 날씨였어요. 영하의 날씨에서 40도의 날씨로 이동한 저는 거의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죠. 인사 다음으로 먼저 배운 여기 말이 “더워”였습니다. “더워, 더워”를 입에 달고 다니는 나에게 회사 동료가 “그래도 여기에도 겨울이 있어. 여기 겨울엔 17도야! 엄청 추워”라고 절 위안해 주었습니다. 제가 “17도? 7도도 아니고 17도가 겨울이야? 17도는 겨울이 아니야!”라고 대답을 했었는데, 그 겨울이 진짜로 아마존에 온 것이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서울에서 입고 온 겨울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18도인데도 겨울옷을 입어도 추웠어요. 미리 다운로드 받아 둔 플레이리스트에서 “겨울”이라고 검색하였습니다. 아마존에서 겨울 노래를 들을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어요? 겨울 노래는 딱 김종서 씨의 ‘겨울비’ 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넷이 잘 연결되지 않는 곳이라 다른 곡을 내려받을 수는 없으니, 그 겨울, 저는 겨울비만 주구장창 들었습니다. 주구장창이 틀린 표현인지는 알지만, 주야장천으로 그 의미를 살리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1월의 이별 노래라는 가사는 7월로 바꿔 불렀습니다. (남반구인 아마존은 한국과 반대의 계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존 겨울은 여전히 습도가 80%가 넘으니 촉촉한 겨울비를 맞는 것 같았어요. 참 슬픈 가사의 노래이지만, 종종 겨울비를 들을 때면 아마존의 겨울이 생각나서 웃음이 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마존 먹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