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에 이름표가 붙어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수치에는 주인이 정해져 있습니다
지독한 그 수치는 옴짝달싹 못하는 나에게 이름표를 붙여줍니다
배신만은 매일매일 나를 헷갈리게 만듭니다
어둑어둑해지는 산을 오릅니다
허벅지에 떨어지는 땀에도 철벅철벅 대는 카라비너에도
배신은 없습니다
땅을 박차는 걸음과 헐떡이는 수치뿐입니다
산 정상에서 소리라도 치면 잊힐까 했지만
산 정상까지는 너무도 많이 남았습니다
어떤 포기에는 이름이 있지만
나의 포기에는 수치만 있습니다
배신하는 것을 포기할까 수치스러움을 포기할까 고민했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이름이 신 씨였나 아니었나 모르겠습니다
성이 배 씨인 아버지는 등산하고 나서 먹는 묵밥을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수치가 나였다면 안심입니다
섬이 필요하면 내 방에 펼쳐놓은 텐트로 들어갑니다
화장실도 없고 화분도 없지만
배신과 수치와 눈물이 섞여 줄줄 흐릅니다
순백의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