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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Nov 07. 2023

좋았지만 추천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하여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고

*이 리뷰에는 어마어마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리뷰를 읽으실 때 주의하세요.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이하 정신병동)는 빛나는 장면들이 참 많이 있다. 하지만 드라마 전체는 처참하다. 빛나는 순간들을 흘러간 개그와 유치하다 못해 짜증 나게 만드는 유머들로 드라마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가려버린다. 설정이 캐릭터를 붕괴시키는 장면이 끊임없이 나오면 드라마가 싫어진다. 결혼식 뷔페에서 맛있는 김밥이 있었다고 해도 밥이 맛있다고 하지 않는다. 그 김밥이 자꾸 생각나고 기억에 남는다고 해도 뷔페에 대한 기억은 나쁠 수밖에 없다. '정신병동'도 마찬가지다.


'정신병동'은 명신대학교 간호사 정다은(박보영 분)이 정신건강의학과 근무를 시작하면서 생기는 일을 다루고 있다. 박보영 이외에도 연우진이 명신대학교 항문외과 의사 동고윤 역할을 맡았고, 정다은의 소꿉친구 송유찬 역할은 장동윤 배우가 연기했다. '기생충'의 이정은 배우가 정신건강의학과를 지키는 수간호사 송효신, 정다은의 간호사 동료로 똑 부러지는 민들레(이이담 분), 워킹맘이자 빈틈없는 박수연(이상희 분), 동기 이자 편안한 홍정란(박지연 분), 동고윤의 오랜 친구이자 정신의학과 의사 황여환(장률 분) 등이 출연한다. 


앞서 수많은 배우를 소개한 이유는 캐스팅과 연기가 퍼펙트하기 때문이다. 주연을 맡은 박보영은 12회 동안 거의 혼자 드라마를 이끌어가지만 전혀 어색하거나 거슬리는 면이 없다. 특히나 스스로를 가엽다고 말하는 순간이나 사랑에 빠진 순간을 그릴 때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다른 배우들 역시 스타일 면에서 거슬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연기는 찰떡이었다. 앞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보호사로 나오는 전배수 배우나 조달환 배우 등 에피소드에 짧게 나오는 역할들도 찰떡이다.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 환자로 등장하면서 극에 사실성과 몰입감을 더한다. 무엇보다 정신병을 비하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1화에서 양극성 장애로 나오는 오리나와 오리나 엄마의 진실게임은 범죄 스릴러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짜릿한 몰입감을 선물했다. 서로 엇갈리는 진실 속에서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과 파격적인 연출로 인한 감정의 표출과 잔잔한 화해와 이해까지 어설픈 요소가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높이기에는 충분했다.

 

'정신병동'에는 꽤 다양한 정신병과 환자들이 나온다. 흔히 아는 공황장애, 조현병, 가짜 치매, 우울증, 자해 등을 가진 환자들의 사연이 사실적이고 진정성 있게 그려진다. 병의 증상부터 치료를 하는 과정이나 그 이후의 모습들까지도 차근차근 그려진다. 이 드라마가 빛나는 순간들은 그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현실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신병을 앓는 이들에 대한 편견까지도 과장하거나 오버하지 않고 보여준다. 저열하고 진득한 사람들의 악의와 함께 살아가는 정신병 환자들의 덤덤한 모습이 참 눈물 나게 감동적이다. 누구나 다 정신병에 걸릴 수 있고, 스스로를 돌봐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만든다. 


조현병에 걸린 송효신의 동생 송애신의 에피소드나 워킹맘으로서 고군분투하다가 가짜 치매에 걸리는 권주영과 권주영을 통해 고된 워킹맘 생활을 돌아보는 이상희의 이야기나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이겨내지 못해 그 대열에서 탈락하고 공황장애를 스스로 이겨보려고 하는 송유찬의 이야기까지 전부 울림이 있다.

진정성 있고 가슴 아픈 메시지를 깨는 것은 괴상한 유머 때문이다. 일단 남자 주인공의 이름부터 어처구니가 없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항문이 생각나게 하는것은 큰 에러다. 정다은이 우울증으로 보호병동에 다녀온 이후에 간호사를 할지 말지 고민을 털어놓는 순간에 동고윤이  "내가 항문을 치료했으면 항문외과 의사를 할 수 없냐"라고 말하는 장면은 완벽하게 진지한 분위기를 깬다. 이외에도 분위기를 깨는 수많은 유머들이 나오면서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아주 아주 짜게 식는다.


특히나 최악은 민들레와 관련된 에피소드다. 민들레는 황여환과 연애를 하면서 자존감을 찾고 자신의 꿈을 찾아간다. 민들레는 오랜 친구가 크루즈를 타면서 공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크루즈를 타고 싶다는 마음에 간호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는다. 민들레는 친구와 함께 크루즈 직원들의 회식에 참여하고, 그 회식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는다. 이 에피소드 자체가 최악인 것은 차갑고 이성적이고 공감하지 못하는 민들레라는 캐릭터와 전혀 어울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민들레는 간호사로 다시 복귀해서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리는 정다은을 보고 간호사를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평생 춤과 노래는 해본 적도 없는 상황에서 여환도 간호사라는 안정적인 직업도 버리고 크루즈를 탄다는 것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캐릭터 붕괴다. 민들레와 그의 친구가 회식하는 고깃집에서 즉석에서 크루원 전체가 아카펠라로 공연하는 것 역시 어색하고 낯설고 보는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 중간에 크루원 중 한 명은 '부끄러워하지 마'라는 명대사도 남긴다. 대본, 연출, 연기까지 어느 하나 최악이 아닌 장면을 보는 부끄러움은 시청자의 몫이다.

송유찬이 공황장애의 고통을 느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화장실 타일에서 물이 차는 장면이 수없이 반복되는 것 역시 성의 없어 보인다. 그러다 마지막엔 실제로 상상 속에서 물이 차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배수관이 터져서 물이 차는 유머를 구사한다. 송유찬의 공황발작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방향을 트는 것은 병을 유머로 사용하려는 저열한 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공황장애라는 것을 밝히고 회사에 취직한 송유찬은 새로운 회사에서도 업무 압박에 시달리며 공황을 겪는다. 송유찬은 팀장에게 일을 적게 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것이 통하지 않자 오후 6시에 칼퇴근을 하면서 근로기준법을 지켜야 한다고 외친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동료들은 6시가 되자 송유찬에게 퇴근 안 하냐고 물어본다. 이 장면은 공황장애 환자인 송유찬을 비꼬고 놀리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앞서 보여준 정신병과 그 환자들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부정하는 느낌까지 받는다.


러브라인 역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송유찬은 단 한 번도 오랜 짝사랑인 정다은에게 고백하지 않는다. 정다은은 자신에게 먼저 고백하고 묵묵하게 기다려준 동고윤을 선택한다. 고백한 번 해보지 않은 상대와 고백한 상대와의 승부는 누가 봐도 뻔하다. 충분히 시청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를 쉽게 포기해 버린 것 역시 무책임해 보인다.


이외에도 지적하고 꼴 보기 싫은 유머는 수없이 많다. 원작을 최대한 살린 것이라면 무책임하고 원작에 없는 유머라면 무능하다. 이게 2023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어떤 장면은 '개그콘서트'랑 비교하기에도 민망한 장면도 있다. 난 이 드라마를 싫어할 수 없다. 아름다운 연기로 빚어낸 감동적인 순간들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누구에게도 보라고 추천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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