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영화 '서울의 봄'은 잘 만든 영화다. 연기에 구멍이 없고 캐릭터들이 잘 보이며, 보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인다. 카르텔의 시대에 정확한 타이밍으로 우리에게 왔다. 그래서 상업영화로서 훌륭한 작품이 됐다. 다소 교조적인 것과 함께 빌런으로 그려진 전두광에 대한 묘사는 흠이다. 영화 속에서 전두광은 카리스마 있고 리더십 있으며, 사람을 조종하려 들며, 악행에 거리낌 없으며 피해자가 생기는 것에 어떠한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인셀이며, 그 누구도 믿지 않았으며 정신병적인 모습을 보이는 조커와 달리 그는 자신의 이득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득을 위해 살았던 처절한 이기주의자였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 군사반란 발생 그날,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9시간을 그리고 있다.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 분)이 군 내 사조직을 이용해 반란을 일으키고 수도경비사련관 이태신(정우성 분)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진압군을 결성해 나라의 운명을 건 하룻밤을 보낸다.
'서울의 봄'은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점이 소소한 단점이다. 어떠한 위기가 닥쳐와도 전두광이 이길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이 위기가 어떻게 풀린 것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보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이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을 분노하게 만들면서 영화에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지위와 책임을 가진 자들의 무능함과 안일함과 이기주의로 인해 절망으로 물들어가는 이태신이 서서히 쓰러져가는 모습은 처절했다. 결국 불의할 수 없는 자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의 봄'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나 배우들의 연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극에서 싱크로율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영화는 결국 한없이 진실에 가까운 가짜다. 그렇기 때문에 재연에 그치느냐 아니면 몰입하게 만드느냐는 결국 배우의 손에 달려있다. 배우들은 감독이 만들어준 판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들며 영화적인 대본을 사실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관객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분노를 가슴에 품고 극장을 나가게 된다.
해소되지 않는 분노는 단죄되지 않은 불의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민주주의라는 미명아래 권력을 찬탈하고 권력을 누리고 사적인 이익을 채우며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아온 한 인물이 실존했고, 그 인물로 인해 수없이 많은 피해자가 생겼다는 뒤바꿀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에 울분이 터지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만큼이나 인간을 좀 먹는 감정이 있을까.
그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의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2023년 겨울 대한민국은 여전히 단죄되지 못하는 불의가 판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