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아 Feb 29. 2024

단죄가 필요한 사회에 대하여

넷플릭스 '살인자o난감'을 보고

****이 리뷰에는 무지막지한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드라마를 다 본 후 읽은 것은 추천드립니다.


최근 의사들의 파업 사태와 '살인자o난감'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죽은 환자가 있다면 복수해야 할까. 단죄해야 할까. 복수는 개인적으로 당한 만큼 돌려주는 것이며, 단죄는 사회적으로 그가 저지른 죄만큼의 합당한 벌을 주는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이탕은 단죄를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탕이 하는 것은 단죄되지 않은 가해자들에게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의 유족을 대신하는 복수다. 이탕이 가진 신비한 능력은 복수를 하고 단죄를 피하는 능력이다. 이탕이라는 역설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살인자o난감'은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남자 이탕(최우식 분)과 그를 쫓는 형사 장난감(손석구 분)의 이야기다. 


이탕이 죽이는 사람들은 주로 살인, 강간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법적인 처분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탕은 죽어 마땅한 이들을 죽이고 어떠한 증거도 남기지 않는다. 이탕이 살인했다는 것을 알고 이를 단죄하려는 이들은 선여옥처럼 숨을 거두게 된다. 이 탕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은 송촌(이희준 분)이다. 송촌은 자신이 단죄해야 할 사람들을 정하고, 고문하고 반성문을 남기고 죽인다. 스스로의 세계에서 정한 룰에 의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보면 연쇄살인마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사람을 죽인다고 믿고 있다. 

살인이라는 행위를 놓고 보면 이탕과 송촌은 같다. 이탕은 죽여야 할 사람을 스스로 정하지 않고, 송촌은 스스로 정한다. 의지의 측면에서 다르다. 현재 대한민국 형법에서도 살인의 고의는 중요한 판단 영역이다. 살인의 고의가 없다면 과실치사가 된다. 그 고의는 살인 동기라는 말로 대체된다. 둘의 살인을 법적으로 보면 이탕과 송촌은 다르지 않다. 고로 한국 사회에서 둘 다 단죄의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


송촌은 늘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면서도 죽여 마땅할 인간들이라고 확신한다. 이탕은 살인을 하지 않은 이들을 죽이지 않는다. 그의 칼은 늘 죽여 마땅하지만 처벌을 받지 않은 이들을 향한다. 그의 능력이 단죄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탕이 죽인 살인자들이 죽어 마땅한 이들을 죽인다면 이탕은 자신을 살인한 것과 다르지 않다. 단지 이탕에게 걸렸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너무나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주인공인 이탕의 설정에 허점이 많은 만큼 이 드라마는 이탕에서 장난감 형사와 송촌으로 초점이 넘어간다. 장난감은 이탕을 쫓는 과정에서 송촌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장난감과 송촌의 과거 이야기가 크로스오버 된다.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송촌과 이탕을 비교하게 된다. 이탕과 노빈은 송촌의 질문에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게 되고, 송촌은 이탕이 살인을 했다는 증거를 약점으로 쥐게 된다. 


단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장난감의 살인으로 마무리된다. 송촌이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것은 맞지만, 그 역시도 장난감처럼 장난감 아버지의 피해자일 뿐이다. 장난감은 이탕을 지키기 위해 송촌을 죽인다. 장난감은 송촌을 죽였지만 단죄받지 않게 되고, 장난감은 이탕의 단죄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이탕은 또다시 모든 단죄에서 벗어나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현재 한국 사회는 단죄가 필요한가 복수가 필요한가. 환자들의 목숨을 인질로 파업을 하고 돌아온 의사들의 처지를 보면 저 질문의 자그마한 단초를 찾게 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19금 액션하는 마동석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