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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Mar 12. 2024

묘를 파는 것과 게임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영화 '파묘'를 보고

** 이 리뷰에는 엄청난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영화를 보시고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파묘'는 완성도나 작품성이나 메시지가 훌륭한 영화는. 영화 초반부터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분위기와 숨통을 조이는 에너지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한 합을 이루며 영화로서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게임을 생각하게 하는 구성으로 보는 사람의 흥미를 자극한다.


'파묘'는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뭉친 무당 화림(김고은 분)과 봉길(이도현 분) 그리고 풍수사 상덕(최민식 분)과 장의사 영근(유해진 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파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무당과 풍수지리에 대한 소재로 시작한다. 탄탄한 세계관을 구축하며 설명하기보다 기이한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한다. 그리하여 악지에 묻힌 할아버지의 관이 열리면서 악령이 된 할아버지가 무차별적으로 자손들을 죽이기 위해 한국과 미국을 종횡무진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설명되지 않거나 거슬리는 부분들이 한 둘이 아니다. 할아버지의 관을 열어 사달이 나게 만드는 이는 화장터 직원이다. 이 직원은 향나무 관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그 안에 귀한 것이 있는 것처럼 생각해 관의 문을 힘겹게 연다. 뻔히 영근이 관을 지키고 있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혼자서 관을 열어 도둑질을 하려는 것은 너무나 어설프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자손들을 죽이는 것을 넘어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 악령이 창문을 열어줘야지만 들어간다는 것 역시도 의아한 면이 있으며, 그 존재가 아들을 죽이고 손자를 죽이고 증손자를 죽이는 순서를 지켜야 하는 것 역시 아무런 설명이 없다. '파묘'는 이 어색한 지점들을 오컬트니까 하는 장르적인 느슨함으로 퉁치고 넘어간다.


첫 번째 위기가 지나가고 묘를 이장할 때 참여한 일꾼 역시 병에 시달리고 파묘를 의뢰한 의뢰인이 죽으며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말을 듣고 수상하게 여긴 상덕은 다시 한번 그 묫자리를 찾아가 그 안에 묻혀있는 거대한 관을 발견하고 관을 화장하려 한다. 이번에는 그 관에서 형태는 없지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본 사무라이가 등장해 주인공들을 위기에 빠트린다. 사무라이가 간을 빼먹는 것 역시 뜬금없지만 간을 빼먹기 위해서 상대방의 오른쪽에 손을 넣는 것 역시 이상하다. 늘 간을 빼먹었던 사무라이가 문신이 없는 봉길의 오른쪽 몸을 노리는 것은 옥에 티처럼 보인다.


상덕은 그 관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우리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박은 쇠못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그 쇠못을 제거하기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화림과 봉길과 영근을 설득한다. 여기서 상덕은 미래에 이 땅에서 살 자손들을 위해 그 사무라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설득력이 전혀 없다. 화림은 사무라이에게 당한 봉길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영근의 참여나 목숨까지 걸고 필사적으로 사무라이를 무찌르려는 상덕의 태도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화림이 사무라이를 유인하고 상덕이 오행의 이치를 깨달아 사무라이를 처치하는 데 성공하고, 봉길은 사무라이의 저주에서 벗어나 무사히 깨어난다. 상덕의 딸 결혼식에서 만난 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도 눈에 띄거나 놀랍지는 않다. 아무래도 구성적인 허점을 보인 상황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화림 역할을 맡은 김고은이 굿을 하는 장면은 진지하기보다 아이돌이 연말 시상식에서 준비된 퍼포먼스를 하는 것을 떠오르게 만든다. 신과 만난 무당이라기보다 준비된 것을 잘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최민식 역시 늘 보여주던 모습을 보여줬으며 유해진도 평범했다. 이도현은 몸을 잘 쓰는 배우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 


'파묘'의 영리한 지점은 마치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구성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페이즈에서 형태가 보이지 않던 악령은 두 번째 페이즈에서 엄청난 힘을 가진 사무라이로 진화한다. 주인공들은 지금까지 벌어졌던 사건들을 떠올리며 단서를 모아 적을 물리친다.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닌 단서들을 모아 퍼즐을 풀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파묘'는 한국을 넘어 인도네시아 외국에서도 크게 흥행하고 있다. 이제 흥행하는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영화로서 재미가 아니라 게임 같은 재미도 줘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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