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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Feb 02. 2020

해피도 엔드도 없는 세상에 대하여

'해피엔드'를 보고

경고: 무지막지한 스포일러가 포함 돼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읽으면 참 좋을텐데요.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를 처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했다. '해피엔드'는  '해피'해 보이는 부자 가족이 서로를 '엔드'로 몰아가는 내용이다.


이 영화를 보지 않고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인물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필수다.  조르주 로랑(장 루이스 트레티냥)은 로랑가의 건설회사 창업주. 조르주의 큰 딸 앤 로랑(이자벨 위페르 분)은 로랑가의 건설회사의 현재 최고 경영자. 조르주의 둘째 아들 토마스 로랑(마티유 카소비츠 분)은 의사. 큰 딸 앤의 아들이자 유일한 건설회사의 후계자 피에르 로랑(프란츠 로고보스키 분). 그리고 에브 로랑(팡틴 아흐뒤엥 분)이 친엄마와 살다가 다른 여자와 재혼한 아버지 토마스 로랑의 딸로 등장한다.


이 가족은 각자의 사정이 있다. 에브가 이혼한 아버지 토마스를 따라서 집에 오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 된다. 에브는 아주 위험한 소녀다. 소녀의 새 엄마는 에브에게 무관심했고, 소녀는 햄스터에게 우울증 약을 먹이고, 어머니의 모습을 몰래 스마트 폰으로 생중계 한다.


에브는 새 엄마와 결혼한 아버지 토마스의 불륜을 알게되고, 자신이 불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티를 낸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에브는 상상을 뛰어넘도록 성숙하고 침착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결국 에브는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에게도 실망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 에브는 토마스와의 대화에서 토마스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당당히 지적한다. 이 장면의 에너지는 정말 강렬했다. 토마스는 에브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이미 신뢰가 무너진 사람에게 말로서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은 위선이고 거짓이다. 토마스는 믿음과 신뢰에 대해서 경험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토마스는 에브에게 불륜이 들켰음에도 불륜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교묘하게 불륜을 감추려 한다. 자신의 무감각함이 딸을 자살로 이끌었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토마스는 자신이 아니라 의사일 때만 당당하다. 한심한 그는 의사로서 자신의 권위를 내세울때만 단호한 태도를 보여 준다. 토마스가 영화 속에서 현실을 회피하고 위선적인 면을 보여줄 때, 그 순간은 거울처럼 나를 날카롭게 비춘다. 난 영화를 통해 잠시나마 나의 솔직한 모습을 보게 된다.


'해피엔드' 속 등장인물 중 그 누구에게도 애정을 주기 어렵다. 조르주나 앤이나 토마스 모두 거짓과 위선과 차별의식으로 똘똘뭉친 인물이며, 에브 역시도 너무나 똑똑하고 침착해서 정을 주기는 어렵다.


미카엘 하네케표 롱테이크 역시도 비호감인 인물을 오래 들여다봄으로서 그 매력을 잃는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작위적이기에 그들이 하는 행동 역시도 전부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미카엘 하네케도 그런 약점을 알고 있었기에 스마트폰이나 페이스북 등 현실의 장치를 가져오지만 그것 역시 얇은 포장일 뿐이다.


영화는 현실이 아니기에 예정된 러닝타임이 끝나면 엔드가 있다. 이 영화에서도 예상 가능하지만 흥미진진한 엔드가 기다리고 있다. 해피하지 않는 삶이라고 할 지라도 엔드가 있다면 해피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은 쉽게 '엔드' 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도 삶을 살아야하고 해피하지 않더라도 살아야한다. 어쩌면 그게 미카엘 하네케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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