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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념있는 희애씨 Jan 22. 2022

백열등 범벅 수능 도시락

파트 1. 포기당하다

엄마는 오른손을 잃을 뻔했다.

처음에 의사는 손을 잘라내야 한다고 했지만 기적적으로 혈관 하나하나를 잇고, 다치지 않은 신경을 최대한 살렸다.

허벅지 살을 그 위에 덧대면서 그래도 ‘손’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주었다. 나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정말 감사한 분이다.

만일 손을 잘라냈다면 그 텅 빈 공간을 볼 때마다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엄마는 한동안 병원 무균실에 지내야 했다. 대수술이었기에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는 한참을 걸렸다.

수능을 일주일 앞둔 주말에 엄마에게 딱 한 번 갔었다.

당시 엄마는 바로 옆 도시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외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터미널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엄마는 야구 글러브 보다도 더 큰 붕대를 손에 감고 있었다.

애써 웃으려고 했지만 온종일 누워있는 탓에 얼굴도 몸도 퉁퉁 부어서 더 안쓰러워 보일 뿐이었다.

엄마는 얼굴 봤으니 됐다고 지갑에 있는 돈을 다 꺼내어주면서 밥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의 말만 늘어놓았다.


그리고 며칠 뒤, 약속된 빅 이벤트가 찾아왔다.

수능이었다.


수능날이 되면 고3 학생이 준비할 것이 3가지 있다.

최상의 컨디션, 지난 3년 동안 공부해온 것들로 가득 채운 머리 그리고 수능 도시락.

고3 엄마들은 한 달 전부터 도시락 메뉴를 뭐로 싸줄 것인지 머리를 싸맨다고 들었다.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할 줄 아는 메뉴 중에서 도시락으로 가장 적합한 것, 주먹밥 당첨!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사는 집에는 번듯한 부엌이 있었지만 엄마와 나, 동생은 간이 부엌을 따로 썼다.

말이 간이 부엌이지 방 옆에 작은 공간에 가스버너와 냉장고를 두고 사용했다.

수능날 아침 나는 우리만의 부엌에서 작은 주광색 백열등에 의존해서 주먹밥을 준비하던,

아 망했다.


백색 빛이 아니라 주황색 빛이다 보니 비슷한 빛깔의 참기름이 들어간 지 안 들어간 지 가늠이 어려웠다.

참기름 떡이 됐다. 도시락을 다시 쌀 시간은 없었다.

뚜껑을 닫았다.


수능장까지는 택시를 탔다. 동생이 택시 타는 곳까지 배웅을 해줬던 것 같기도 하고.

택시 기사님이 교문 반대편에 차를 세우시면서


“파이팅!”


혼자 도시락을 싼 것도 괜찮았고 엄마가 배웅을 해주지 못하는 것도 괜찮았다.

그런데 기사님의 그 한 마디에 왜 눈물이 왈칵 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진짜 괜찮았는데.


점심시간이 됐다. 운이 좋게도 우리 학교에서 수능을 치게 돼서 익숙한 환경이었다.

친구들과 교실에 모여서 점심을 먹으려는데 내 도시락은 간단했다. 락앤락 통 하나에 수저통 하나.

엄마가 다쳐서 내가 싸왔다고 굳이 입을 떼지 않았지만, 친구들은 마치 늘 그렇게 먹어왔던 것처럼 반찬을 나눠줬다.

전우애가 이런 건가 싶었다. 아마 평생 먹은 음식 중에 참기름이 가장 많이 들어간 음식이었을 거다.


수능이 모두 끝나니 6시가 좀 안 안됐다. 제2 외국어를 친 학생들이 모조리 그 시간에 쏟아져 나왔고 교문을 향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고개를 숙인 채로 걷게 됐다. 3년 내내 걸어 다녔던 교정인지라 길도 알겠다, 앞을 거의 보지 않았다.

수능을 망친 탓도 있었지만 수많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내가 손을 흔들며 화답할 사람은 없다는 이유가 컸다.


그래서 빠르게 교문을 지나가려는데,


“누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많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딸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 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명확하게 귀를 찔렀다.

왈칵 눈물이 나오려는데 입술을 깨물었다. 수많은 어른들 사이에서 하염없이 누나를 기다리는데 얼마나 춥고 머쓱했을까.


아마 나에게 수능날이 그다지 차갑지 않은 기억인 것은, 포기당한 온기 있는 도시락보다도 나를 부르던 동생의 목소리가 더 강열해서 일 거다.

나이가 들어도 동생이 미울 때가 종종 있지만, 그날을 떠올리면 용서 못 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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