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3. 포기, 하시겠습니까?
사람 일은 역시 아무도 모르는 거구나. 온 집을 다 뒤져서 싸인 종이 한 장을 찾아냈다. 2014년 JTBC 인턴기자 시절에 인기 프로그램 ‘마녀사냥’ MC 중 한 명에게 받은 싸인이었다. 싸인지에는 이런 말이 함께 적혀있다. “좋은 기자가 되시길!”
N 잡러의 영역에서 방송 지분이 많아졌다. KBS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TV 프로그램 출연도 종종 있었고 EBS 등 고정 프로그램도 추가로 생겼다. 대부분이 금융 관련 프로그램이었는데, 처음으로 금융이 주제가 아닌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왔다. 무척 반가웠다. 유튜브에서도 그렇고 강의도 마찬가지.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에서 금융 관련 콘텐츠만 다루는 것이 아닌데도 급기야 ‘금융 크리에이터’라고 불리기까지 하면서, 방송 섭외 역시 비슷한 결을 이어갔다. 불러주시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지만, 저는 오른쪽보다는 왼쪽 얼굴이 더 잘 나와요!라고 사진이 잘 나오는 쪽으로 얼굴 방향을 바꾸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새로 합류한 프로그램은 시사교양 쪽에 가까웠고 내가 맡은 롤은 트렌디한 뉴스를 정리해서 데일리로 전하는 ‘뉴스 리포터’ 같은 것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고정된 시간에 움직인다는 것에서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분명 활동 반경을 넓혀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 그런데 고백하자면 한 가지 더 마음에 걸린 것이 있었다. ‘트렌디한’ 뉴스를 전하는 사람이라… 나란 사람 자체가 그다지 트렌디하지 않다. 크리에이터이지만 트렌디한 소식보다는 꼭 알아야 되는 필수 개념들을 쉽게 풀어내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고, 때로는 크리에이터라는 단어 자체가 ‘크리에이티브해야 한다.’라고 압박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었다. 그런 내가, 트렌디한 뉴스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모순인 것 같았다.
”트렌디한 뉴스를 따라가 봅니다. 손희애의 애! 허지웅의 지! 애지! 중지! 뉴스-!”
좋은 기자가 되라고 덕담을 해주던, 과거의 마녀사냥 MC 허지웅 ‘씨’는 이제 동료가 됐다. (과거에는 그저 영화평론가, 연예인 사람이었으니 존칭을 쓰는 것이 마땅할 테지) 이제는 매일 같이 얼굴 보며 밝게 인사하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방송에서도 남매 캐미를 거침없이 뿜어낸다. 허지웅쇼에 합류한 지 3달쯤 지났을 때, 그때 그 싸인지를 지웅 오빠에게도 보여주며 7년 만에 싸인을 받던 시청자에서 동료가 된 벅찬 감정을 조잘조잘 늘어놨던 적이 있다.
몇 해 전,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이 문득 떠오른다. 엄마를 포함해 6남매인 자식들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준 손님맞이에 정신없어 보였고, 언제 볼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나에게도 여럿 인사를 시켜주었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말동무를 해드리게 된 막내 이모의 친구가 내가 하는 일을 물었고, 프리랜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구구절절하는 일들을 몽땅 늘어놓았다. “방송도 간간히 하고, 청년들 대상으로 강의도 하고 있어요. 유튜브도 해요!” 와 대단.. 하다고 말을 끝맺기도 전에 인기척도 없이 자리로 돌아온 이모는, 얘 희망사항이라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으로 얘기를 전환했다. ‘프리랜서’라는 4글자 뒤에 숨어 무모한 도전을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려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는 건 나만 안다.
지웅 오빠가 얘기했던 ‘좋은 기자’가 되지는 못했다. 인턴 기자, 프로젝트 팀 기자로 잠시 잠깐 발 끝 정도는 물을 묻혔지만, 분명한 건 과거를 회상할 때 ‘기자 출신’이라는 수식어구를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2014년도 24살의 손희애는 아나운서에서 방송기자로 방향을 바꾸어서 지망하고 있었고, 방송기자가 되지 못하면 불행한 삶이라며 극단의 벼랑 끝에 나를 몰아넣고 있었다. 2022년도의 손희애는 방송기자는 아니지만 전혀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돌고 돌아, 나의 개떡 같은 질문에도 언제든 찰떡같은 현답을 내어주는 동료도 함께하게 됐다.
역시 나만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 거였다.
아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 보고 싶다. 우리 할아버지, 라디오가 늘 친구셨는데. 이제는 라디오에서 제 목소리 나오는데, 듣고 계시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