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선은 울상을 지었다. 이건 엄마 때문이야.
흰 스타킹이 따뜻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엄마가 아침부터 사과주스를 강제로 먹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유치원 화장실 앞이었다. 쉬가 나올 것 같자마자 달려왔지만 늦었다.
집에 가야겠어. 선은 반쯤 울며 주위를 살폈다. 선생님한테 말할 순 없다. 선생님한테 가려면 친구들이 블록쌓기를 하는 놀이실을 지나야 하니까. 선의 집은 유치원과 아주 가까웠고, 유치원 출입구도 바로 옆이었다. 그 때 박다운의 얼굴이 보였다. 선은 얼른 신발장 밑으로 숨었다.
다운이가 선이랑 아니면 안 하겠다고 한대. 울고불고 난리나서 다운이 엄마가 특별히 부탁했어. 얼마 전, 엄마는 선을 붙잡고 말했다. 박다운과 함께 다운이 이모 결혼식에서 꽃을 뿌려달라고 했다. 선은 이해하지 못했다. 꽃을 왜 뿌려? 잘 살라고, 축복하는 의미에서 뿌려주는 거라고 엄마는 설명했다. 다운이 엄마가 선이 예쁜 옷도 사주고, 맛있는 간식도 사준대. 해볼래? 선은 도리질 쳤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무서웠던 데다가, 박다운과 손잡고 걸어가야 한다는 것도 부끄러웠다. 나중에 엄마는 박다운이 너무 울어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유치원의 다른 친구와 꽃을 뿌렸다고 말해줬다. 선은 어쩐지 미안해져서 그 후로 다운을 피했다.
그런데 이 꼴을 들킬 수 없지. 선은 신발장 밑을 엉금엉금 기며 입을 앙 다물었다.
“너 거기서 뭐해?”
그 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신발장 너머의 박다운과 눈이 마주쳤다. 박다운의 시선이 짙은 색으로 젖은 치마에 닿았다. 어떡해. 선은 저도 모르게 울먹였다. 이제 애들한테 가서 말하겠지. 한동안 오줌싸개라고 놀림받을 거야. 대부분의 아이들이 최소 한 두 번 유치원에서 실례를 했지만, 실수 한 번 하지 않는 선에겐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너, 어디가?”
박다운이 물었다.
“...집.”
“지금 비오는데, 우산 있어?”
그제야 선은 문밖을 봤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다. 엄마가 항상 데리러 오는 선은 우산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박다운은 신발장 옆에 있는 우산꽂이를 뒤적이더니 제 우산을 꺼내들었다. 연보라색에 노란 무늬가 있는 우산이었다
“내가 같이 가줄게. 우리 같은 아파트잖아.”
“나 혼자 갈 수 있어.”
“같이 가줄게.”
박다운이 손을 내밀었다. 선은 울었다. 놀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우산 예쁘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설 때 선이 말했다. 박다운이 웃었다.
“아빠가 가져왔어. 다시 돌려줘야 한다고 했는데, 아빠도 딴 데로 일하러 가서 못 줬어.”
“딴 데 어디?”
“강주? 래. 나도 한 번도 안 가봤어.”
“그럼 지금 아빠랑 안 살아?”
“응.”
갑자기 박다운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선은 지난번 아빠의 날에 본 박다운의 아빠를 기억해냈다. 다른 아빠들보다 한참 나이 든 다운이 아빠는 착해 보였다. 다운이는 중학생 누나 뒤에 태어난 늦둥이라고 했다.
“아니, 어떻게 왔어?”
현관 키패드를 누르자 엄마가 깜짝 놀라 나왔다.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선은 다시 울음이 터졌다. 박다운이 말했다.
“선이가 아파서요, 같이 왔어요.”
“아이고, 고마워라. 선생님은 아시는 거야?”
“아니요. 그래서 이제 가야돼요.”
박다운은 배시시 웃더니 엄마가 붙잡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엄마는 당황해하다 우는 선을 먼저 달랬다. 씻고 옷 갈아입는 동안 유치원에 전화도 걸었다. 박다운은 다행히 잘 돌아왔다고 했다. 선은 안심했다. 왠지는 모르지만.
다음엔 꼭 같이 꽃 뿌려줘야지. 선은 엄마가 타준 핫초코를 마시며 다짐했다. 아빠도 없다니까, 내가 더 놀아주면 돼. 오른손을 꼼질거려봤다. 아까 박다운과 잡은 데가 간질간질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