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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짱이J Feb 01. 2022

#16 가시덤불숲 마녀(6)

[이전 내용의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큰 흐름엔 차이가 없으나 문장과 호흡이 상당 부분 바뀌었으니, 전부터 읽어주신 분은 참고해주세요:)]



오라비가 어디서 무얼 하고 다녔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이전과 딴판으로 바뀐 모습이 과거를 추측하게 했을 뿐이다. 오라비의 미간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고, 피부는 뱃사람처럼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호쾌하게 웃던 어린 날과 달리 이따금 짓는 미소조차 과묵했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었다. 아담한 키의 아내가 배가 부른 채 함께였다.

     

칠 년만에 아들을 본 낭아의 어미는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비는 아들을 보자마자 우뚝 서 다가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실종된 아들을 찾아다니느라 속을 까맣게 태웠던 아비는 이제 재밖에 남지 않은 가슴을 가지고 말을 잇지 못했다. 낭아의 오라비가 그 앞에 가 무릎을 꿇고서야, 희어진 수염 끝이 떨렸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오라비는 낭아를 보고 말했다. 장터에서 돌아오던 낭아는 바구니를 떨어뜨렸다. 첫 번째도 이뤄졌지? 귓가에서 덤불숲 노파의 목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낭아는 깨어난 어머니를 돌봤고, 어머니는 살아 돌아온 자식의 등을 어루만졌다.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저녁 식탁은 오랜만이었다.

     

“그이는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정말로요.”      


목소리가 가녀린 올케가 말했다. 오라비와 올케는 부두 선착장에서 만났다고 했다. 십대 후반에 집을 뛰쳐나간 오라비는 바다에 면한 대도시로 나갔고, 연이어 사업에 실패하고는 배까지 탔다고 했다. 정말 이상했어요.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올케가 말했다. 뭔가 잘될 기미만 보이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강도를 당하거나 창고에 벼락이 떨어지거나, 사기당해 돈을 잃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어물쩍 흘러간 뱃일에 익숙해지니, 이번엔 백년에 한 번 날까 말까한 폭풍이 불어 선주가 파산했단다. 기가 막힌 건 그 많은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서도 오라비의 목숨만큼은 한사코 보존됐다는 것이다. 지치고 지친 오라비는 부두에서 짐나르는 일을 하다 가자미를 사러나온 생선장수 아가씨와 사랑에 빠졌다.

      

“그이가 오갈 데 없는 고아인 줄 알았어요. 나처럼. 아이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들어줄 수 있는데 어떻게 외면해요. 봐요, 이렇게 예쁜 고모도 생겼잖아요.”     


올케가 수줍게 웃었다. 좋은 여자였다. 오랜만에 귀향하고도 줄곧 과묵하던 오라비도 올케 옆에선 마음을 놓는 듯했다. 부모는 아들을 부추겨 고향으로 데려온 며느리를 미쁘게 여겼다.     


다음날 이웃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떡을 맞췄다. 어릴 적 오라비를 기억하는 상인들이 신기해하며 찾아왔다. 혹자는 오라비의 등을 탁탁 치며 탕아의 귀환을 반겼고, 나이 든 여인네들은 눈물을 찍어냈다. 오라비는 시종일관 무덤덤했다. 대단히 무례하지도, 아주 반가워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유일하게 감정을 보인 것은 아비의 포목점에 갔을 때였다. 천장에 매달린 광목천을 보자마자 오라비는 다가가 손으로 천결을 쓸었다. 메말라 있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정은 침착한 얼굴로 연인의 잃어버렸던 형제를 맞았다. 가게에서도, 낭아와의 만남에서도.     


아비는 오라비를 포목점에 나오게 했다. 한때 한사코 집과 가업을 버렸던 오라비가 이제는 달라져 있었다. 처자식이 딸리니 생각이 바뀐 게야. 아비는 아들의 변화를 달갑게 여겼다. 본래 정에게 맡겼던 장부 정리와 관리 감독을 오라비가 하게 했다. 본래도 총명했던 오라비는 몇 년 지난 새 더욱 셈이 빨라져 만만찮아져 있었다. 마른 수건이 잔물을 빨아들이듯 어떤 일이든 금방 흡수해나갔다.     


정은 조용히 주인 부자를 도왔다. 오라비에게 거래처들을 하나하나 짚어 설명했고, 근 오 년 여간 자신이 돌봐온 장부의 항목을 꼼꼼히 정리해 넘겼다. 오라비는 별 말이 없었으나 정을 마뜩해하는 눈치였다. 정은 여느 때와 같이 예의바르고 성실한 일꾼이었다.      


“아기는 돌아오는 봄에 태어난대요. 조카가 생기는 거예요.”     


낭아는 신이 나 말했다. 마을 외곽에 있는 정의 집에서 밤을 찌던 날이었다. 갑작스럽게 차가워진 공기에 정의 방이 싸늘했다.     


“어머니는 벌써부터 야단이에요. 아가한테 입힐 배내옷하고 쓸 이불을 만드느라 정신없어요. 첫 손주잖아요.”

“그렇네.”

“이번에 오라버니가 도시 양장점에 거래도 텄다면서요? 아버지가 엄청나게 좋아해요. 오라버니에게 그런 수완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정은 묵묵히 밤껍질을 깠다. 낭아가 문득 말을 멈췄다.      


“오라버니에겐, 얘기할까요?”      


정이 과도를 내려놓았다. 낭아의 속뜻을 바로 눈치챈 것 같았다. 그가 도리질쳤다.     


“괜찮을 거예요. 무슨 얘길 해도 이해해줄 거예요.”

“나중에.”

“본인도 집까지 나갔던 사람이잖아요. 살고 싶은대로 살겠다고요.”

“지금은 안 돼. 나중에, 낭아야.”     


정의 단호한 눈빛에 낭아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간 때가 오겠지, 정에게 안기며 생각했다. 정도 얘기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올거야. 여느 때처럼 몸에 도는 온기에 낭아는 잠깐의 서운함 봄눈 녹듯 사라졌다. 자리에 누워 생각했다. 모든 게 잘 될 것이다. 오라비가 돌아온 것처럼. 새 식구가 생긴 것처럼.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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