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았다던 오라비는, 이상하게 포목점만큼은 무슨 일을 해도 눈에 띄게 흥했다. 이제까지 밀려있던 운이 단번에 트이는 것 같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뚫지 못하던 판로가 오라비 손에 바로 풀리고, 도시에서 새로 들인 옷감들은 부인네들을 사로잡았다. 부모는 신이 났다. 아들이 집을 나간 후 일곱 번의 겨울 동안 언제나 무언가 잃은 기분이었으나, 이번 겨울은 달랐다. 장성해 돌아온 아들이 있었고, 번성하는 포목점이 있었으며, 기특한 며느리와 곧 태어날 손주까지 있었다.
“이놈이 어릴 때부터 똑똑했어. 동네에서 수재 소리 듣던 놈 아닌가.”
아비의 오랜 친구인 정육점 주인은 상인회의 때마다 큰 소리로 말했다. 안 그래도 잘 되던 장사, 이렇게 든든한 후계까지 세우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상인들이 입 모아 칭찬하자 가족 모두가 뿌듯해했다.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때를 되돌아봤을 때, 낭아는 가시덤불로 가득한 심연 속에 빠져들었다. 아무 변화도 눈치채지 못했다.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을 돌아오게 만드는 덴 여러 방법이 있지. 노파는 말했었다. 그 다음에 놈의 맘이 어찌될 진 네 몫이고.
그 말을 새겨들었어야 했다.
정의 태도가 열없어졌다고 느낀 것은 그 즈음이다.
처음엔 기이한 거리감이었다. 더 이상 정은 어린 연인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지 않았다. 만나면 피곤해하고 때로 지루해했다. 말을 듣고 있지 않아 두 번 세 번 말하는 일이 반복됐다.
“낭아야. 제발.”
그는 때로 이렇게 말하며 한숨 쉬었다. 한숨 끝엔 미묘한 짜증마저 어려 있었다. 낭아는 두려웠다. 자신이 기어코 이해하지 못한 정의 어느 부분이 이제야 제 존재를 드러낸 것 같았다.
허나 말을 아낄수록 괴이한 균열은 더욱 깊숙이 똬리를 틀었다. 어느 날 오라비가 다음 해 일꾼을 늘리려 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문득 정의 표정이 이상했다.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낯설다 못해 두렵기까지 한 얼굴.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고 정의 간결한 대답으로 어정쩡하게 맥이 끊겼다.
“괜찮은 거지요?”
낭아는 한 번씩 정에게 물었다. 정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낭아는 더욱 집요하게 그를 안았다. 그나마 살 부빌 땐 그가 자신 옆에 있다는 실감이 들었으므로. 일을 마친 정이 이전과 달리 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라도 시시각각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어느 날부턴가 나물 풋내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몸이 물에 젖은 듯 무거워 하루종일 잠이 쏟아졌다. 날짜를 세는 데 서늘한 예감이 들었다. 달거리가 늦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