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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짱이J Mar 06. 2022

[쓰니노트] 시점과 결말에 대하여

#가시덤불숲 마녀


그럴 때가 있다. '잘못 쓰고 있다'는 직감이 선명하게 내리꽂힐 때.


<가시덤불숲 마녀>의 원제는 '마녀와 처녀와 아궁이와 개'였고, 아무렇게나 생각난 제목의 단어들 자체가 이야기의 영감이었다. 재밌는 단어들이라 생각했다. 서양동화 같은 배경이지만 동양적인 분위기를 넣고 싶었다. 결코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는 절망감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 이야기의 분위기가 맘에 들었음으로 사소한 영감만으로도 쓰기 좋았다. 그리고 어느 시점서부터,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글을 쓰다보면 이야기의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자주 느낀다. 방향을 잃은 글과 캐릭터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지점까지 나아가버리고, 나는 길을 잃는다. 그 사실을 여러 번 느꼈기에 일정 길이 이상의 글을 쓸 땐 대략적인 얼개라도 만들어려고 애썼다. 그러나 여기엔 항상 두 가지 함정이 있다. 1) 최초의 영감이 떠올랐을 땐 아무 계획 없이 마구잡이로 쓰고 싶다는 열망에 빠진다는 것, 2) 나름껏 얼개와 결말을 갖추더라도 그것들이 결코 온전하게 진행되지 못한다는 것. 물론 천운으로 1), 2)의 함정을 모두 피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글들은 쉽게 나락으로 간다. <가시덤불숲 마녀>는 그 함정 구덩이가 유난히 크고 깊어서, 속상한 글이었다.


다만 속상한 만큼 배우는 건 있겠지. 갈 길이 구만리같아 아득해지지만 몇 가지를 메모해둔다. 나는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실수를 또 하겠지만, 적어도 같은 방식으로는 안 할 거다.






1. 작가가 제 시점을 까먹으면 안 된다.

 5화쯤에 이르러 앞의 글을 모두 다시 쓴 적이 있다. 도무지 문장이 진척되질 않았다. 심리묘사의 뎁스를 조절하기 어려웠고, 이야기의 강약조절은 꿈도 못 꿨다. 설 연휴동안 한참 고민한 끝에 내 시점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본 소설에서 나는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을 취하며 시작했는데, 이것이 어느 지점에서부터 낭아를 중심으로 한 주인공 시점으로 변질되면서 균형을 잃었다. 시점은 중학교 국어수업 맨 처음에 나오는 부분임에도, 이제껏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연습이 필요하다. 시점을 정확하게 박아두는 연습. 3인칭 관찰자,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생각했다면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감정이입하면 안 된다. 서술가 아는 것은 무엇이고,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만약 그 거리감을 지키기 어렵다면, 인위적으로라도 첨언을 넣어 말뚝을 박아놓는 것도 방법이다. 마치 옛날 판소리나 고전소설에 '오호 통재라' 하며 서술자의 대사를 넣듯이. 이 말뚝은 나중에 뽑아버리면 그만이다.



2. 채널이 무엇이든 좋은 글이 좋은 글이다.

 <소설쓰기 연습> 매거진을 시작할 때 가장 집착했던 것은 '모바일에 적합한 글'이다. 마침 나는 회사에서도 앱 관련 업무를 시작한 터라, 이참에 모바일 환경에서 쉽게 읽히는 문장을 써내고 싶었다. 내가 택한 첫 번째 방법은 모든 문장을 쪼개는 거였다. 애초 내 글은 장문이다. 좋아하는 단어들을 재주껏 그러모아 구구절절 쓰는 걸 좋아한다. 이런 문장이 요즘 스타일이 아닌 건 진작부터 알았으니, <소설쓰기 연습>을 단문화 연습의 장으로 삼고 싶었다.

 그러나 <가시덤불숲 마녀>를 쓰며 생각이 조금 바꼈다. 문장의 길이가 질을 담보하진 않더라. 모바일에 적합한 글이 있는 건 분명 사실이나, 단지 단문이냐, 장문이냐가 그걸 결정하지는 않는다. 글에는 호흡이 있고, 좋은 호흡은 종이책에서든 휴대폰 액정 안에서든 똑같이 좋은 호흡이다. 시작부터 간소하게 쓰려 무리하진 말자. 그러다 내 글만 반푼이 된다.



3. 결말은 일곱 번 더 생각해도 모자르다.

 마지막 편을 올리기 직전, 말그대로 울고 싶었다. 글은 다 써두었는데, 도저히 올릴 엄두가 나지 않아서.

 결말 부근에 가서야, 나는 내가 미리 생각해둔 결말이 말그대로 '생각난' 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곱 번은 더 톺았어야 했다. 수미상관 구조에 집착한 나머지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나온 결과물을 두고 수정하려 보니 어디서부터 수정해야 할 지 몰랐다. 분명 거지같은 게 느껴지긴 하는데, 이건 결말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해결될 문제인 것 같았다. 애초에 이 고민을 했어야 했는데. 결말을 먼저 써봤어야 했는데.

 마지막 편을 올린 후에도 수정하려 몇 주를 고민했지만 한 자리에서 빙빙 맴돌 뿐이었다. 종래에는 답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괴로워 글쓰기 자체를 멈췄다(물론 갑자기 시작된 야근 및 주말출근 메들리 때문도 있다...). 어릴 적 나는 생각보다 수학 문제풀이에 그다지 끈기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 끈기 부족이 소설쓰기에도 해당되는 걸까, 고민이 된다. 이런 식으로는 인생에서 아무것도 못 이룰 것 같다. 글은 더.

 변명 같은 이야기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 글을 두고 계속 고민하기보다 일단 다른 글이라도 써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일단 이 소설은 여기에 남겨둔다. 언젠간 돌아와 널 다시 살릴 수 있길 바라. 널 잊지 않고, 돌아올게, 글아.






어렸을 때 아름다운 문장에 꽂혔더랬다. 열 두달 제철 채소를 겨우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듯, 남들이 모르는 단어나 표현을 내 정원에 가득 길러두고 쏙쏙 꺼내쓰고 싶었다. 문장이 흐드러져 읽는 사람이 숨 막히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실력에도 미치지 못했거니와, 더이상 아름다운 문장 답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기가 쎈 소설을 쓰고 싶다. 작가의 기가 너무 강해서, 지면에 글이 나왔을 때조차 읽는 이를 한 번에 집어삼킬 수 있었음 좋겠다. 이 사람이 정말 글 쓰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는 것을,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작심이 철석처럼 강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다. 디자인에서 매끈매끈한 디지털 작업물들이 많아지자, 도리어 아날로그적인 날 것 그대로의 결과물들이 더 인상깊는 글을 읽은 적 있다. 하나도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풀물내가 강하게 나는 글을 써보고 싶다.


그러니 이제는 입 다물고 다음 꺼 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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