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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짱이J Feb 09. 2022

#21 가시덤불숲 마녀(11). fin.


“안 돼요, 이건 정말 안 돼요....”     


낭아의 울음이 공터에 메아리쳤다. 어둠에 젖은 나무들이 을씨년스럽게 춤췄다.


“제발, 한 번만 더 들어줘요.”

“또 들어주면?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기면 다시 달려와 울 셈이냐.”     


노파가 빈정거렸다. 낭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뭐든 할게요. 뭐든이요.

“그래?”     


순간 노파의 눈빛이 바뀌었다. 아궁이의 불길이 거세졌다. 노파 녹아 눈들을 한 발로 탁탁 치자, 가시덤불들이 함께 뒤엉켰다.    

 

“그럼 이리하자.”     


마침내 노파가 말했다.     


“네가 그 놈 자리를 정했지. 이번엔 내가 네 자리를 정하련다.”

“자리요?”

“그 놈이 뭐가 될지, 어디 있을지 정했어. 네 마음대로.”

“정을 사랑했-”

“아니지.”     


노파가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있으니 했던 거야. 그럴 수 있어서.”     


낭아가 노파를 올려다봤다. 눈물 탓에 시야가 일그러졌다.


“그 놈이 돌아오면 함께는 있게 해주마. 네가 같이 있고 싶을 때까지 원 없이 있어. 그 다음엔 내가 정한 자리에 있어라. 그게 소원값이다.”     


노파가 킬킬댔다. 낭아는 땅바닥 위에 엎드렸다. 바닥 위 눈이 흙과 뒤섞여 있었다.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 목덜미 위로 칼날같은 바람이 스쳤다. 고개를 든 낭아가 말했다.      


“당신이 마녀로군요.”     


노파가 끼륵끼륵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집에 도착했을 땐 새벽녘이었다.      


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눈앞에 노기 띤 아비의 얼굴이 어른거렸지만 신경쓸 수 없었다. 온몸이 욱씬거렸다.      


어떻게 돌려보낸다는 거지. 몸이 떨렸다. 이상하리만치 그 날 밤 숲은 낭아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언젠간 단번에 그녀가 원하는 길로 인도해주던 숲이, 달빛조차 길잡이가 되지 못할 만큼 어둡고 복잡했다. 집에 가보거라, 눈밭에 굴러 잔상처가 나는 와중에도 낭아의 머릿속엔 노파의 마지막 말이 떠돌았다. 그 놈이 기다리고 있을 게야.

    

낭아는 터질듯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복도에 들어섰다. 아직 빛이 들지 않은 실내는 어두웠다. 이상한 냄새가 났다.


“아가씨...”     


누군가 뒤에서 낭아를 불렀다. 올케가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어디 다녀와요...”     


올케가 헤실헤실 웃었다. 벌어진 입가에 침이 흘렀다. 머리는 산발이 되어 풀어헤쳐져 있었고, 얼굴엔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놀란 낭아는 급히 늘어진 올케의 몸을 붙잡았다.     


“언니, 무슨-”

“그이는 어딨어요?”

“네?”

“아직 일하나봐요. 저녁밥 먹어야 되는데.”     


낭아는 올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새언니의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치맛자락은 젖어 있었다. 치마에 붉은기가 스며나왔다.  


강도가 들었나? 낭아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뛰쳐나간 낭아를 찾으러 다른 이들이 나간 사이, 올케 혼자 당한 건지 모른다. 아니면 다른 가족들에게도 변고가 생겼는지 모른다. 낭아는 올케를 내려다봤다. 거실에 널어놓은 면보라도 있어야 피범벅이 된 새언니를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실로 가까이 갈수록 뭔가 잘못됐다는 확신이 강해졌다. 평소 잘 정돈되어 있던 가구와 화분들이 엉망으로 엎어져 난장이 되어 있었다. 집에 들어설 때부터 느꼈던 비릿한 신내가 점점 더 강해졌다.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거실에 들어섰을 때, 무언가가 눈에 비쳤다.


꿀렁이듯 일어선, 기괴한 형상.

토할 것 같은 악취.     


형상이 몸을 돌린다. 짤막한 두 다리, 한쪽밖에 없는 팔. 개인지 사람인지 구별 못할 머리통. 허옇게 드러나는

뼈들 위로 반쯤 소화되다 만 고깃덩이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움직일 때마다 껄그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 왜...     


시커먼 구멍이, 눈으로도 입으로도 보이지 않는 구멍이 움직인다. 기형적으로 뒤틀린 팔에선 누렇고 붉은 곤죽이 후두둑 떨어진다. 낭아는 그제야 집에 들어설 때부터 코를 찌르던 시큼한 냄새의 정체를 알아차린다.

      

― 나를...     


낭아가 뒷걸음질친다. 형상은 제게 뼈대가 있기라도 한 듯 한발씩 뗀다. 형상이 움직일 때마다 그 몸이 흐물흐물 흐트러지고, 구성물들이 훤히 비친다. 선지덩어리들, 반쯤 흐물거리는 살점, 위액, 번들거리는 기름, 푹 삶아져 누렇게 익은 뼈들. 흐트러져 떨어진 몸뚱이는 그럼에도 다시, 또 다시, 제 갈길을 찾아간다는 듯 형상에 들러붙는다. 형상의 발 아래는 다른 옷더미가 널브러져 있었다.  아니, 옷더미가 아니다. 낭아는 깨닫는다. 그것은 한때 낭아의 부모였던, 그러나 이제는 살가죽밖에 남지 않은 고깃덩이다. 주저앉는다.     


“이게 아니야...”     


입을 막은 손가락 사이로 신물이 올라온다. 낭아의 속삭임에 화답하듯, 어디선가 마녀의 목소리가 실려온다. 난 네가 원하는대로 해줬다. 그녀가 킬킬댄다. 봐라, 저 놈이 돌아왔지 않느냐.     


“아가씨.”     


올케의 목소리가 들린다. 기어오다시피 한 올케가 벽을 짚고 일어서는 게 보인다. 치맛자락은 피에 젖어 있다.

    

“그이가 여기 있네. 왜 한데서 잔대요.”     


그제야 낭아는 이제껏 알아차리지 못했던 제 옆의 이상한 동산을 알아챈다. 물건인 줄 알았던 그것은 제 오라비다. 올케는 킬킬 웃으며 하얗게 핏기가 가신 남편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피칠갑 된 오라비의 배는 엉망으로 찢겨나가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하다. 허연 뼈와 비장, 심장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는 게 보인다. 감기 들어요, 올케가 시신을 끈다. 이제 그만 윗층으로 올라가요. 오라비의 배에서 내장이 후두둑 떨어진다.      


낭아는 망연히 오라비 부부를 바라본다. 올케가 깔깔 웃으며 가죽밖에 남지 않은 오라비를 끌어낸다. 계속해서 낭아에게 오려 하는 뼈와 살과 피의 형상은 자꾸 흐트러지는 몸 탓에 나아가질 못한다. 낭아는 뒤로 긴다. 네가 같이 있고 싶을 때까지 원 없이 있어. 사타구니가 젖는다. 한때 거적때기를 타고 흐르던 그것만큼이나, 선명하게 검붉은 얼룩으로 물든다.  


벽에 등을 기댄다. 새언니만큼이나 기이한 웃음소리가 그녀의 잇새 사이로 흘러나온다.          





     

가시덤불숲 마녀가 어찌 생겼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혹자는 이드르르한 머리칼에 편도꽃같이 고운 미인이라 했고 다른 이는 한 줌 백발과 거죽밖에 남지 않은 노파라 했다. 수백 년이 넘도록 마녀에 대한 이야기는 차고 넘쳤지만 대부분 저잣거리 뜬소문이었다. 다만 모두가 한목소리로 떠들길, 그녀는 한때 산어귀 마을 주민이었으나 이웃 몇을 찢어죽인 후 숲으로 도망쳤다 했으니, 생김새가 어찌 됐건 그 이력만은 사실일 테다.


끝내 그녀를 잊지 않은 건 산어귀 마을의 토박이들 뿐이었다. 주민들은 아이들에게 절대 숲 근처엔 가지 말라 신신당부했다. 그런 당부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제 자식들에게, 그 자식들은 또 제 자식들에게 같은 당부를 전했다.           


무엇이든 이룰 수 있고, 누구든 막아낼 수 있으나, 사악하기 그지없는 가시덤불숲 마녀를 조심하라고.

그녀는 제 가족과 이웃을 죽인 대가로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으니 그 쇠비린내로 구분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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