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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이 Jun 05. 2018

명성이 무색한 뮤지컬 명성황후

뮤지컬 <명성황후> 후기

뮤지컬의 본고장은 웨스트엔드이지만,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에서는 요즘 들어 창작 뮤지컬들도 눈에 띄게 수가 늘었다. 특히 대극장 뮤지컬에서는 라이선스 뮤지컬에 밀려 큰 힘을 쓰지 못하던 창작 뮤지컬들이 이제는 관객들 사이에서 호평까지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오늘날의 티켓 시장에서 대극장 창작 뮤지컬계의 조상이라 칭할 수 있는 <명성황후>의 귀환은 아니 반가울 수 없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실제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광화문에 소재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이 이루어지기에 관객으로서는 그 의미가 더욱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해국의 반성의 기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현 상황 하에서 조선 말기에 우리나라가 당한 수모를 명성황후를 통해 다시금 살펴보고, 도저히 해소되지 않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울분을 공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자녀를 둔 부모의 경우 문화생활을 통한 역사 교육이 될 수도 있다.

관객들의 기대감이 너무 컸던 것일까. 뮤지컬 <명성황후>는 제목 자체만으로 들끓었던 관객들의 애국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명성황후, 고종, 흥선대원군 등의 핵심 인물들은 무대 위에서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이입할 수 없었고, 각 캐릭터들의 목표의식 또한 시나리오에 묻어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넘버 외에는 핵심 넘버가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캐릭터 테마 넘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이 뮤지컬에 레프리제(reprise)가 있기는 한 것일까 의심마저 하게 되었다. 레프리제 없이 (혹은 인식할 수 있는 레프리제 없이) 공연을 이어가려니 흐름이 깨졌다. 뮤지컬에서 가장 핵심 요소인 작곡이 엉망이니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기반으로 함에도 플롯이 엉망진창인 것이다.


관객들이 극에 집중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은 도입부이다. 초반 30분도 아니고, 초반 5분도 채 되지 않는 서곡에서 뮤지컬의 완성도는 결정된다. 아무리 훌륭한 대본과 넘버를 갖추고 있더라도, 도입부에서 관객들을 집중시키지 못한다면 관객들의 감상은 제작진의 의도와 다를 수 있다. 대본도 작곡도 무엇 하나 훌륭한 것이 없는 뮤지컬 <명성황후>는 도입부마저 힘이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이후로도 극 자체가 지니는 흡입력이 전혀 없었다. 간혹 앙상블들의 군무나 합창이 이목을 끌었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뚫고 나오는 우리 국악의 힘이 놀라웠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솔직히 말해 뮤지컬 자체는 너무 지겨웠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 그리고 고종. 지겹기 힘든 소재라는 데에는 대다수가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정말 작곡만이 문제였을까. 시나리오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뮤지컬의 제목이 '대한제국'이 아닌 <명성황후>라면 명성황후의 이야기에 집중했어야 한다. 한 나라의 왕비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명성황후를 조명했어야 하고, 그를 통해 관객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통찰할 수 있게 했어야 한다. 좋은 예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를 제시할 수 있다. 윤동주의 삶을 심도 있게 다루었고, 관객들은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면서 일제강점기를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조선 말기의 역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른 시기에 비해 굉장히 잘 알고 있는 시기이다. 사건들을 나열할 필요가 없었다. 그럴 것이라면 제목을 '조선 말기'로 했어야 한다.


뮤지컬뿐만 아니라 그전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명성황후>도 피해갈 수 없었던 비판을 다시금 하고자 한다. 바로 역사 왜곡 문제이다. 역사책만 봐도 명성황후가 당시에 흥선대원군과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에 밝았고 굉장히 명석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명성황후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순간 고종은 이유 없이 찌질한 멍청이가 되고 흥선대원군은 악역이 된다.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왜곡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명성황후에 대해 후대 사람들이 지니는 인식이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미디어의 등장으로 왜곡의 문제가 더욱 대두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예술과 윤리의 관계는 늘 문제였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 볼 수 있게 만든 또 다른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으로 바뀐 것이 얼마 전의 일이다. 한 유명 연예인이 한국사 기본 상식을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수많은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졌고, 결과적으로 유명한 광고 계약이 해지되기까지 했다. 이렇듯 국민들의 한국사에 대한 관심과 국민들이 느끼는 국사 교육의 필요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명성황후>가 극장가로 돌아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광고 포스터 위의 '명성황후'라는 네 글자를 보며 사람들이 역사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애국심 또한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뿐이다. 뮤지컬을 관람할지 말지는 본인의 선택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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