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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이 Jun 15. 2018

말 못 할 사소한 고민이 있나요

이인석 作,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우연히 기회가 닿아 읽게 된 생애 첫 에세이였다. 편독이 심한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그 벽을 허물고자 노력하면서도 에세이나 자서전에는 유난히 손이 가지 않았다. 꼭 책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왜 굳이 책에서 찾나, 그런 생각이었다. 책을 통해서는 직접 경험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무언가 특별한 것들을 보고 싶었다.

억지로 펼친 책이나 다름없음에도 삽시간에 책에 빠져 들었다. 어느새 카페 한 구석에 앉아 히죽히죽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책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여태껏 에세이를 무시하고 살아온 과거가 무색하게도, 필자는 첫 에세이 한 권만으로 그 매력을 알아버렸다.

현실에서 한 발짝 멀어져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문학과 달리, 에세이는 독자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상의 문을 두드렸다. 경계 태세를 갖추던 필자도 책 속 한 두 문장에 금방 문을 활짝 열고 작가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딛으려는 필자에게 사소한 인간관계에서부터 회사 생활에 이르기까지의 작가의 실패담을 비롯한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에세이는, 작가와 마주 앉아 커피 한 잔, 혹은 맥주 한 잔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누구나 쉽게 해결되지 않는 고민, 혹은 외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떠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본인의 모든 고민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기란 쉽지 않다. 가끔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채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고, 사소한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끙끙대는 본인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사실상 작가의 이야기를 그저 읽고 있음에도, 위로는 독자가 받는다. 독자로서 작가를 위로해 주고 싶을 때도 있지만, 정작 고민거리 하나도 털어놓지 않은 독자가 위로받는다.

위로의 핵심이 문제 해결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고민 혹은 문제에 답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스트레스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문제의 해결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답을 알아도 그 과정 자체가 힘들거나 해결책이 도통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때로는 답이 없는 문제가 우리를 괴롭히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바라는 위로는 '공감'이다. 상대가 힘듦을 온전히 알아주지는 못해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일 때, 사람은 진정으로 위로받는다.

작가는 본인이 다양한 상황 속에서 가지각색의 고민을 떠안고 살아온 만큼, 어떠한 위로가 진정한 위로인지 알고 있다. 독자에게 훈계를 하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의 고생담 혹은 영웅담을 떠벌리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도 알고 있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잊고 살았을지 모르는 것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작가의 한 문장 한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던 필자는, 어느새 책을 통해 힐링을 받고 있었다.

작가가 전한 힐링에 대한 보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에 대한 비용을 지불했으니, 그 대가를 치른 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이 책은 필자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작가에게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작가가 아닌 자격지심에 빠져 있던 과거의 작가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본인만 뒤쳐진다고 느껴진다고 했나.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본인의 친구들이 훌륭한 만큼, 당시의 작가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었으리라.

비단 그 당시의 작가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존재만으로 빛나는 본인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을 좀 더 사랑해 주었으면 한다. 이 에세이와 함께라면 모두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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