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활자 앓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앓이 Jun 08. 2018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후기

로버트 제임스 월러 作

본인의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자는 어려서부터 이상하리만치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좋아하였다. 롤모델은 늘 아버지였고, 어머니와 같은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하였다. 집에서 집안일을 하고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어머니는 필자에게 사회 참여적이지 않은 어른으로 비추어졌다. 물론 지금은 가정 주부(사실 housewife로 번역되는 이 표현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필자의 어머니는 자식을 가지면서 일을 그만두고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셨다는 사실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속 여주인공 프란체스카는 이런 필자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꿈과 열정이 넘치던 나폴리 여성 프란체스카는 전쟁을 피해 미군과 결혼을 하고 미국 아이오와로 이주한다. 그녀는 리처드 존슨과의 결혼으로 프란체스카 존슨이 되면서 한 남편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그녀의 삶에서 꿈과 열정은 사라지고 더 이상 프란체스카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저 미세스 존슨(Mrs.Johnson)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의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그녀에게 다시 꿈과 열정을 되찾아주고, 그녀를 한 남자의 아내가 아닌 프란체스카라는 한 여성으로서 바라봐준 사람은 바로 로버트 킨케이드다. 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로 일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남성으로, 이러한 그의 삶의 방식은 전처 마리안을 외롭게 하여 이혼으로 이어졌다.
 

“로버트, 당신 안에는 내가 들춰낼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나는 거기에 닿을 힘이 없어요. 때때로 당신이 여기 오랫동안, 한 사람의 생애보다도 더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혼자만의 공간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구요. 당신은 내게 다정하게 대해 주지만, 나는 당신이 두려울 때가 있어요. 당신을 향하는 내 마음을 제어하려고 나 자신과 싸우지 않으면 난 내 중심을 잃게 되고 말 거예요. 그래서 다시는 찾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中 마리안 曰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감성을 갖고 있었다. 책의 초반에 이러한 로버트의 독특한 감성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의 어린 시절과 몇 가지 특성들이 서술되어 있다.
 

그는 낱말과 이미지를 좋아했다. ‘블루(blue)’라는 말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였다. 그 말을 할 때, 입술과 혀가 만들어내는 느낌이 좋았다. 어릴 적부터, 낱말에는 단순한 의미뿐만 아니라 뭔가 느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킨케이드는 또 ‘머나먼(distant)’ ‘나무를 땐 연기(woodsmoke)’ ‘고속도로(highway)’ ‘옛날(ancient)’ ‘통과(passage)’ ‘뱃사람(voyageur)’ ‘인디아(India)’ 같은 낱말을 좋아했다. 이런 말이 소리나는 방식과 혀끝에 맴도는 감칠맛, 또 마음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시공사, 공경희 옮김


로버트는 아이오와에 있는 매디슨 카운티 다리들 중 로즈먼 다리를 찾는 과정에서 프란체스카를 만나게 되고, 둘은 거짓말처럼 첫눈에 서로에게 반한다. 그 순간 둘에게는 전에 경험한 적 없던 세상이 펼쳐진다. 주변의 시선을 잊은 채, 혹은 잊고 싶은 심정으로 둘은 서로에게 순식간에 스며든다.
 

“당신이 내 안에 있는지, 또는 내가 당신 안에 있는지, 내가 당신을 과연 소유했는지, 확신하지 못하겠어. 적어도 난 당신을 소유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 둘은 우리가 '우리'라고 새로 만들어낸 다른 존재의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우리는 그 존재 안에 있는 것도 아니지. 우리가 바로 그 존재니까. 우리 둘 다 스스로를 잃고 다른 존재를,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얽혀들어 하나로만 존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창조해낸 거요. 맙소사, 우린 사랑에 빠졌소.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이 가장 깊고, 가장 심오하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中 로버트 曰


독자 입장에서는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교감을 통해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 사회에 가도 둘의 사랑은 짧은 기간이라 하더라도 손가락질 당할 만한 일이다. 둘의 관계가 엄연히 불륜임에도, 둘의 사랑을 응원하고 그 결과에 대해 마음 아파한다.

우리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독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둘의 불륜 그 자체가 아니라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다. 둘의 사랑은 마냥 뜨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세상 그 무엇보다 숭고하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中 로버트 曰


둘만의 우주는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깨어진다. 프란체스카는 결국 자신의 가족을 택한다. 독자로서는 그 순간 밀려오는 슬픔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프란체스카의 입장을 존중할 수 있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우주는 그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점점 냉담해지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이중 삼중으로 덧칠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어디까지가 위대한 열정이고 어디부터가 지독한 감상인지, 난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위대한 열정에 대한 가능성을 비웃고, 진실하고 심오한 감정을 감상이라고 치부하려는 우리의 태도는 프란체스카 존슨과 로버트 킨케이드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따스한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나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런 상투적인 태도를 극복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시공사, 공경희 옮김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치관이 아닌 새로운 감성이 필요함을 언급하고 있다. 그 새로운 감성은 특별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사회화를 통해 억눌러왔던 그 특수한 감성은 우리의 본능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독자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통해 우리의 본능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과 함께라면, 당신은 간접적으로나마 한없이 숭고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사랑을 나누는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만 같다. 아니, 둘만의 공간은 분명히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우리 은하가 아닌 다른 은하에서 온 둘만의 우주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다 읽고 나면 당신의 마음속 어딘가에도 분명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우주가 자리 잡을 것이다. 그 우주를 마음속 책장 어딘가에서 꺼내 펼쳐볼 때마다, 외부와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당신은 또다시 경험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별똥별을 함께 본 날, 비극은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