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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이 Jun 19. 2018

죽음에 관하여

착각과 망각

네이버 웹툰에서 명작으로 꼽히는 <죽음에 관하여>가 재연재 되고 있다. 몇 년 전에 이미 읽었던 것 같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재연재가 끝날 즈음에 몰아볼까 한다. 동명의 웹툰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요 근래 머릿속을 부유하는 죽음에 대한 상념들을 글로 남겨 보고자 한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이 글의 자취를 감춰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는 법. 인류는 의학 기술의 발달로 수명을 연장해 왔지만, 탄생의 숙명적 꼬리표인 죽음을 잘라내지는 못했다. 불로불사의 꿈은 져버린 지 오래인 인류는 이제 건강하게 늙는 법을 탐구한다. 이러나저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를 예로 드는 그 유명한 삼단논법에도 나오듯 말이다.


어려서 아주 재미있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아버지께서 사극을 좋아하셔서 옆에서 함께 시청하곤 했는데, 전쟁 장면에서 죽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그 엑스트라 배우들이 실제로 죽는다고 생각했다. 생계가 얼마나 어려우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드라마에 출연할까,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어린 나이에나 할 수 있는 귀여운 발상이라 여겨지지만, 그때 희미하게나마 처음으로 죽음에서 비롯된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친구들이 다들 강아지 한 마리씩은 키울 때, 절대 허락해주지 않는 부모님을 졸라 물고기를 키웠던 적이 있다. 큰 어항에 다양한 종의 물고기를 서른 마리 정도 넣어두니, 배가 터져 죽는 녀석도 있고 잡아먹혀 죽는 아이도 있더란다. 물고기와는 특별한 교감이 있기가 힘든 탓인지 몇십 마리를 떠나보내면서도 단 한 번도 슬프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친구들은 키우던 강아지나 거북이가 죽으면 우울감에 빠져 집 앞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던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실로 겪게 되었다. 이팔청춘의 춘향이는 몽룡이와 사랑을 나누었다는데, 나는 낙엽이 지던 가을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노라면 괜스레 눈가가 뜨거워지고 행동도 굼떠진다. 그때마다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의 흐름에는 논리와 이성이라는 것이 눈곱만치도 없다. 나는 이를 마음이 시끄럽다고 표현한다.


어머니의 죽음은 예상했으면서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처음 진단받았을 때부터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 이후에는 괴롭기만 한 투병 생활이 이어졌다. 의사의 예상보다 차도가 좋았기 때문일까, 어렸던 나는 방심했다. 평소처럼 반항기 어린 말투로 대들었고 말을 듣지 않았다. 사춘기를 겪는 여느 아이가 그러하듯, 애석하게도 나는 철이 없었다.


그 해에는 이상한 일들이 있었다. 예지몽이나 현몽, 이런 것들을 믿지 않는 편인데 괜히 마음이 불편한 꿈들을 꾸었다. 사람을 죽이는 꿈, 어머니의 장례식날 뼈를 맞추는 꿈, 어머니가 홀로 계신 안방에만 지진이 나는 것을 지켜보는 꿈 등. 우연의 일치에 불과함을 알면서도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쉬이 지워내지 못한다. 5월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 생신을 챙겨 드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해의 나는 평소 같지 않았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다. 등교하면서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을 아버지 얼굴이 유난히 슬퍼 보였다. 마지막 과목을 응시하는데 이유 모를 눈물이 흘렀다. 시험을 다 치고 남는 시간 동안 펑펑 울며 시험지 뒷면에 어머니에 관한 시를 썼다. 방과 후 병원에서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뵈었고, 다음날 새벽 임종을 지켜보았다. 그런 탓에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가 어떠하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중환자실에 들어서던 때부터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눈에 띄게 슬퍼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죄책감마저 느꼈다. 발인까지 마치고 집에 도착해 내 방 문을 닫고 나니, 거짓말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온전히 나만의 공간에 있게 되니 한없는 슬픔에 젖었다. 억울하게도 나는 어머니를 여의었다. 믿을 수 없지만 더는 어머니를 만날 수 없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제 어디에도 어머니는 없다.


나의 생활로 돌아가면서 매일같이 어머니의 빈자리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제야 어머니의 부재가 실감이 났다. 그러다가도 집에 들어설 때면 어머니께서 왜 이리 늦었냐며 잔소리를 하실 것만 같고, 안방 문을 열면 TV 앞에 어머니가 계실 것만 같다. 지금도 나는 종종 어머니의 죽음을 망각한다. 어쩌다 다시금 어머니께서 더 이상 살아계시지 않음을 떠올릴 때면, 장례식 때 울지 않은 것에 대한 벌을 받기라도 하듯 오열한다.


며칠 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마찬가지로 예상했으면서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잠이 달아날 정도로 놀라 놓고는, 식장으로 향하면서는 내 일이 아닌 마냥 조문을 가는 기분이었다. 예매해둔 공연을 보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수준이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친척들의 얼굴을 보고 나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장례식 내내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께서는 끝끝내 당신의 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돌아가셨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생각 치고는 굉장히 감상적이고 비논리적이지만,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죽음이 멀리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내 주변에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그 날이 오겠지만 오늘 혹은 내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는 것. 비단 나만이 하는 착각은 아닐 것이다.


비통하게도 인간에게 죽음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망각의 강을 건넌 자가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한데 그 강을 건너지도 않은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죽음 그 자체를 잊는다. 생사 여부가 헷갈리는 것이 아니다. 착각이 아닌 망각이다. 아니, 어쩌면 착각도 망각도 아닐지 모른다. 육신의 부재가 죽음의 전부는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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