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를 읽고

아이를 구한다는 건, 언어를 되찾는 일이다

by 첨예하니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나는 잊지 못한다.
차분하고도 잔혹한 카메라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년들의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폭력과 혐오, 무력감과 침묵이 얽힌 그 세계 속에서
소년들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며, 동시에 사회가 만든 결과물이기도 하다.

처음엔 단지 영화적인 설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건 먼 나라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교실과 휴대폰 속에서도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소년의 시간>은 그저 한 소년의 타락을 다룬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어른들이 외면한 사회의 거울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과
디지털 시대의 냉소가 교묘히 섞여 있다.
그 장면들은 마치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조용히 파헤치는 듯했고,
나는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얼마 전,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에게 물었다.
“요즘 친구들 말투가 좀 거칠던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딸의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엄마, 일베스러운 말이 진짜 많아. 말끝마다 ‘~노’를 붙이면서 키득거리고, 이상한 은어나 혐오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써.”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저 장난이겠거니, 유행어겠거니 넘기기엔 그 언어 속에 이미 혐오와 배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이 더 이상 ‘안전한 언어의 장(場)’이 아니라,
인터넷의 극단적 언어가 스며든 실험실처럼 느껴졌다.

중학교 1학년 때만 해도 교복이 어색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특정한 정치적 프레임과 세계관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흉내 내고 있었다.
그 장면이 <소년의 시간> 속 현실과 겹쳐 보였다.
드라마 속 잔혹한 성장의 서사가 이제는 내 아이의 교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만나게 된 책이 바로 권정민의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였다.
이 책은 교육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아들이 극우 성향의 온라인 콘텐츠에 빠져드는 과정을 목격하고,
그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기록이다.
단순히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유튜브와 SNS가 만들어낸 정보 편식과 혐오 확산의 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가 함께 읽어야 할 문제 제기서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들어주기 → 공감하기 → 사안을 인간화하기 → 정보로 이끌기”의 네 단계를 통해
아들을 다시 대화 가능한 세계로 데려온다.
부모로서 그 인내심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딸아이와 나눴던 이야기를 여러 번 떠올렸다.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서거했던 전 대통령을 비하하며 웃던 아이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냉소’가 하나의 놀이처럼 오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서로를 조롱하며 웃는 그 대화는, 이미 현실 감각을 잃은 게임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누가 상처 입는지조차 모른 채, 냉소를 일상의 언어로 소비하고 있었다.

그 웃음 속의 실체 없는 악의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아이들이 악의를 배운 적은 없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의 언어가 놀이가 되고, 유머가 되고, 일상의 대화가 된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그래서 이 책의 등장은 단순한 문제 제기를 넘어,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혐오의 언어가 아이들의 놀이가 된 시대에,
어른들은 어떤 언어로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성찰하게 한다.

물론 아쉬움도 남았다.
이 책은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데에는 충분했지만,
그다음, 부모와 교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다소 모호하게 남았다.
대화의 중요성은 알겠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아이를 되돌릴 수 있을까?
책장을 덮은 뒤에도 마음 한편에 질문이 맴돌았다.


“나는 과연 내 아이를, 그리고 이 시대의 아이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혐오의 언어를 멈추게 할 방법은 아직 모르지만,
확실한 건 ‘침묵’이 해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말해야 할 이유,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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