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in the kitchen Jun 25. 2022

그 남자의 고환 사정

엄연히 의료적인 그 짓

답답한 도시를 떠나고 싶어질 때면, 나는 종종 동호회 사람들과 등산을 간다. 이번에는 그 뒤에 캠핑을 계획하며 텐트와 이것저것 물건을 챙겨 Alex와의 동행을 시도했다. 사실 이번 캠핑은 Alex 생일파티를 위함 이였다.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에서 정말 긴 동행이 시작되었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다 같이 산을 한번 타고, 반대방향으로 내려와, 그 반대방향만큼의 거리를, 바다를 옆에 끼고 함께 걸었다. 아무리 걷고 걸어도 똑같은 풍경이 전개되는 걸음은 정말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총 18km를 걷다 보면, 나를 지나치는, 스치는 사람들과 한 마디씩 하게 된다.


Tom은 키가 큰 남자였다. 나보다는 조금 어린 느낌의 사람이었다. 내가 거의 넘어질 뻔한 바람에 시작된 대화는 항상 그렇듯 어디를 다녀왔냐는 그런 질문. 그러나 내가 모르는 곳만 다녀와서 할 말이 별로 없었다. 어떻게 대화를 매듭지을까 하다 그의 시작된 연애사와 '후세를 남기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외아들이었다. 가족들이 줄줄이 딸린 세대에 외아들의 위치는 어땠을까 궁금할 때, 그는 바로 자신도 외아들이라고 말했다. 말하는 방법으로 봐서는 그는 결혼하지 않은 미혼이었다. 아버지의 외아들과 자신의 외아들이란 점이 그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에만 집중하게 된 걸까? 석연치 않은 이유였지만, 그는 정자 기증을 결심했고, 현재 클리닉에 다니며 정자를 받을 여성들을 찾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의자 작은 침대가 딸린 좁은 밀실에서 원하는 온라인 여성을 보고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를 참아가며 땀나게 따리 따리를 치며  나오는 상상을 하게 된 나는 죄책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왜냐하면 그는 클리닉이라는 건전하고 진중한 곳에서, 아이를 갖고자 하는 성스럽고 신비스러운 경험을 원하는 여성들을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확히 mml로 자신의 양을 계산까지 해야 하는 의료적인 이었다.


하지만 그의 정자도 쌩쌩한 것만은 아니었다. 보통 1ml 당 1.5 million 정자가 정상이라면 자신은 1 million 밖에 없다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4명의 여성이 이미 그가 정자를 기증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두 명은 아이를 바라는 레즈비언이었고, 한 명은 남성보다 아이를 원하는 미혼여성이었으며, 나머지 한 명은 아이를 갖고 싶으나 가질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여성이었다. 남편이 허락을 한 건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네 명의 여성이 어떤 영혼을 가진지도 모르는 사람의 아이를 갖겠다니..


아이가 태어나면 만나 볼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물었더니, 두 명은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했고, 그 나머지 두 명은 모르겠다. 기증한 정자로 아이를 만나보게 된다면 그는 어떤 마음이 들까.. 우리는 18km의 대장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뻗었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기억 속엔 그의 스토리만 남아있다.


가끔 뇌리를 박는 순간들이 있다. 몇 년 전 1시간 차로 떨어진 곳에 하이킹을 갔을 때엔, 어디로 갔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 앞에서 걷던, 자신을 대학교수라고 소개했던 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지르며 산을 오르면서 방귀를 뿡뿡 뀐 사건이 있었는데, 그 기억과 당황스러움만 간신히 건졌던 여행이었다.  


우리는 어디를 다시 갈 새도 없이, 거실에 텐트를 치고 Alex의 생일을 기뻐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은 축하하지만 촛불은 끄지 말아주오
놀랐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두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