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삼양그룹
소개
이번에 분석할 기업은 삼양그룹이다. 설탕으로 유명한 삼양사를 주력으로 한 기업으로 삼양라면으로 유명한 삼양식품과는 전혀 다른 기업이다. 2024년 공정위 공시대상 기업 자산순위 60위에 랭크되어 있고 업력은 100년이 되었다. 삼양사의 사업구조는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기로는 화학, 식품, 의약바이오, 패키징까지 4개 분야지만 실질적으로는 화학과 식품 2개 분야가 주력이다.
본사 홈페이지에서 화학을 첫 번째로 소개하고 있는 것에서도 보듯이 원래는 설탕에서 시작한 기업이지만 화학사업이 점차 강세를 보이는 추세이다. 어차피 설탕사업도 엄밀하게 말하면 화학적인 부분이 있으니 전혀 별개라고 보긴 힘들다.
화학은 주로 플라스틱, 소재에 강점이 있고 식품사업에서는 설탕, 밀가루, 감미료 등을 생산한다. 대중적으로는 큐원 브랜드가 익숙하다. 의약바이오 쪽에서 어떤 일을 하나 봤더니 수술용 봉합 원사 등 역시 화학적인 성격이 강한 소재를 생산하고 있었다. 항암제등 약품도 생산하고 있다. 패키징 부문은 PET 용기 생산이 대표적이다. 역시 전반적으로 화학기업 성격이 강하다.
근황
삼양그룹의 2024년 영업이익은 1131억 원으로 매년 1천억 이상의 이익은 꾸준히 올려주고 있다. 경영권은 창업주의 3세 자손이 이어받은 상태에고 전통적으로 형제경영에 기반하고 있다. 김윤 회장이 최대주주이고 나머지는 3명의 사촌들이 나눠서 각 계열사 부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 식품 쪽에서는 설탕을 대체하는 알룰로스나 프락토올리고당등 감미료에 힘을 쏟고 있고 배터리 소부장 사업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단
삼양사의 주력인 제당 부문은 시장 점유율은 32%로 50%의 CJ제일제당에 이어 2위이다(출처: 아주경제, 2023.05.31,https://www.ajunews.com/view/20230531150000501). 차이가 크지만 3위인 대한제당 21.3%라 인수하면 1위를 노려볼 수 있다. 하지만 대한제당이 갑자기 회사를 팔 이유는 없다. 특히 식품사업은 순위변화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이 안에서 변화를 꾀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삼양그룹은 다양하게 사업확장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식품 유통을 하고 있어서 삼양에프앤비를 통해 프랜차이즈 사업에 손을 댔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때 했던 사업이 패밀리레스토랑 세븐스프링스이다. 2006년에 인수했으니 사실상 패밀리 레스토랑 최전성기에 의욕적으로 인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우리나라의 인구변화가 미국, 일본을 따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패밀리레스토랑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 뻔했는데 왜 10년 이상 붙잡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패밀리레스토랑이 망한 이유는 첫 번째가 건강식 유행이다. 스테이크 같은 기름진 서양 음식이 대부분이었던 메뉴 구성상 웰빙이 대두되면서 찬바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가성비 문화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성비보다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물건들이 잘 팔렸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거품이 꺼지면서 가성비 문화가 유행했고 유니클로의 대성공은 다른 분야의 가성비화를 촉진했다.
사실 이것은 금융위기가 아니더라도 선진국으로 갈수록 허례허식보다는 검소하고 개인의 사정에 맞춘 소비를 하는 게 문화이다. 만약 삼양에서 이런 경제발달 단계에 따른 소비변화를 생각했다면 이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식품 재료를 생산하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프랜차이즈에 뛰어드는 단순한 발상은 성공하기 어렵다.
오히려 프랜차이즈에서 성공하고 식품재료 쪽으로 뛰어든 것이 더 선순환구조이다. 지금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성공한 회사들은 다 그런 식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프랜차이즈라는 것은 대기업에서 밀어준다고 되는 게 아니고 엄청난 사업적 감각이 필요한 분야이다. 본비빔밥으로 유명한 본아이에프, 백종원 씨가 대표인 더본코리아, SPC 같은 기업들을 보면 뒤에서 그룹차원의 지원으로 큰 게 아니다. 시장에 대한 치밀한 분석 끝에 최적의 업종을 정하고 진출해 성공을 거두었다.
프랜차이즈 사업은 기본적으로 낙후된 공급시장과 고급화된 요구를 가진 수요자가 만나는 시장에서 성공한다. 본아이에프는 도저히 프랜차이즈가 될 수 없다는 비빔밥, 죽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계량화도 균일한 맛 내기도 어렵다는 한식에서 이뤄낸 것이다. 이들 시장은 가게마다 맛의 편차가 큰데 반해 소비자들의 입맛은 고급화되어 있어 소비자와 공급자의 격차가 매우 큰 시장이었다.
백종원 씨가 만든 새마을 식당 역시 균일화가 어려운 김치찌개를 가지고 독자적인 메뉴를 만들었다. 특히 가성비를 추가로 앞세워 프랜차이즈는 비싸다는 고정관념도 깨면서 성공했다. SPC는 소비자들의 입맛이 고급화되었지만 빵집 사장의 실력은 형편없던 빵 시장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정량화가 가장 쉬운 게 빵이지만 소비기한이 짧아 수익이 쉽지 않은 이 시장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균일화된 맛을 이루고 다양한 상품군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이런 성공전례를 분석하지 않고서는 프랜차이즈에 진출해서는 안된다. 생각해 보면 세븐스프링스는 친환경, 건강식 위주의 샐러드바 콘셉트이었는데 설탕 파는 회사가 건강식을 강조하는 게 앞뒤가 안 맞다. 플라스틱 사업도 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친환경도 별로 맞지 않다. 그만큼 시장과 회사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굳이 프랜차이즈를 하겠다고 하면 차라리 아이스크림이나 커피 관련 프랜차이즈를 하는 게 맞다. 실제로 커피는 CJ가 투썸플레이스로 크게 재미를 봤다. 지금 고급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는 베스킷라빈스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물론 이 시장도 건강식 열풍에 한계가 온 상황이고 커피 시장은 레드오션이다. 하지만 설탕을 공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명분이 있고 시너지 있는 사업을 고르라면 이게 차라리 났다.
커피시장에서는 스타벅스가 고급 커피를 독주하고 있고 저가 커피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다. 굳이 진출한다면 스타벅스의 시장을 조금 잠식하는 게 나을 듯싶다. 여기서 일반 설탕이 아닌 삼양사가 개발해 밀고 있는 알룰로즈를 사용해 저당 커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한국적인 차나 음료를 좀 더 강조해도 좋을 듯하다. 아이스크림도 설탕 걱정이 많은데 그걸 깨면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될 것이다.
비슷한 입장인 동원 같은 기업도 프랜차이즈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유통 공룡인 롯데도 롯데리아 정도를 제외하고 프랜차이즈로 크게 이름 남긴 게 없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시장이 얼마나 어려운 시장인지 알만하다. 삼양사가 생산하는 설탕과 밀가루가 모두 쓰이는 제품이 빵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베이커리 분야도 유력하다.
여기도 레드오션인데 파리바게트의 성공 이후 이 시장이 상당기간 정체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다시 동네 빵집을 찾기 시작했고 동네 빵집의 제빵사들도 과거와 달리 상당히 실력이 올라왔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빵집은 피해 갈 수 없는 게 밀가루, 설탕 사용이다. 건강식을 생각한다면 저당 베이커리를 해봄직하다. 최근 가격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이 크다는 걸 생각하면 자사 밀가루와 당류를 사용해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도 좋다. 그래야 차별화가 된다.
한 가지 참고할 사례가 있는데 삼양사와 경쟁사인 대한제당이 2003년 두산으로부터 커피 전문점 프랜차이즈 네스카페를 인수했다 2007년 매각했다. 이 당시 사업내역 자료가 없어서 매각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업이 잘되었으면 팔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CJ가 프랜차이즈로 승승장구했던 걸 생각하면 삼양사나 대한제당의 프랜차이즈 실적은 초라하다. 이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CJ는 투썸플레이스를 통해 고급 커피 시장에 진출했다. 국산 프랜차이즈 중에는 그나마 스타벅스랑 비벼볼 수 있는 프랜드였다. 물론 지금은 매각한 상태이다. CJ는 되고 대한제당은 안된 이유가 뭘까? CJ는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했고 따라서 자사가 기획한 브랜드 정체성을 충분히 구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커피대전이 일어날 만큼 브랜드들의 각축전이 벌어졌는데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고급스러운 구성과 독자적인 케이크 메뉴, 멤버십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카페베네가 무분별한 출점으로 인한 브랜드 가치 폭락과 정체성 파괴로 망한 것을 생각하면 투썸플레이스의 영업방식은 스타벅스에 가까웠다. 철저히 기획된 출점과 고급스러운 서비스 제공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좀 더 이익을 내기 위해 시장판처럼 좌석을 늘리거나 메뉴를 수십 개 만들어서 아무거나 다하는 커피숍으로 만들지 않았다.
대한제당이 인수한 네스카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뭘 어떻게 영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참모였다면 인수를 반대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네스카페라는 브랜드 자체가 인스턴트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스턴트는 아니지만 여기에 네슬레가 커피를 공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캔커피 시장에서 네스카페의 브랜드 가치는 거의 싸구려 수준인 렛츠비와 큰 차이가 없다. 이런 브랜드를 나는 죽은 상표라고 부른다. 브랜드가 있긴 하지만 아무도 브랜드라고 보지 않는다.
인지도는 높지만 브랜드 가치가 거의 없고 오히려 인스턴트나 캔커피 시장 브랜드로 인식된 브랜드를 프랜차이즈로 도입하는 건 실패확률이 높았다. CJ와는 전혀 다른 길이고 이미 인스턴트커피로 브랜드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어서 대한제당이 인수한 뒤 바꿀 여지도 없었다. 삼양그룹도 이런 실패 사례를 잘 분석하여 진출해야 할 것이다. 이미 CJ가 구축해 놓은 브랜드가 살아있는 투썸플레이스를 인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매각가는 1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네스카페가 실패사례라면 성공사례도 있다. 매일유업이 운영 중인 폴바셋이라는 카페브랜드이다. 여기는 스타벅스보다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인테리어도 좋고 가격대도 높다. 하지만 직영체제로 운영되고 있어서 확실한 품질관리가 되고 최고급 원두를 쓰는 데다가 유제품 회사가 모기업인 만큼 아이스크림을 전면에 내세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실제로 내가 먹어보니 흔한 아이스크림과는 다른 깊은 우유맛이 났다.
폴바셋은 지점이 많지 않고 가격대도 높지만 비교적 성공적인 실적을 내고 있다. 2022년 127개점을 두고 있는데 영업이익이 147억이다(출처: 민주신문, 2023.06.14, https://www.iminju.net/news/articleView.html?idxno=86117). 투썸플레이스가 같은 해 1330개의 매장수를 갖고 영업이익 219억을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훌륭한 성과이다(출처: 2022년 공정위 가맹점 사업 현황). 이렇듯 치밀한 사업전략이 성공의 어머니임은 부인할 필요가 없다. 사실 삼양사의 기업규모나 사업구조를 보면 CJ보다 오히려 폴바셋이 더 맞는 벤치마크 대상이다.
전망
지금은 그룹 내 화학 사업이 확장하고 있고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식품, 특히 제당 분야는 이미 과점시장으로 크게 변동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당분을 줄인 새로운 감미료 개발 경쟁이 치열하긴 하지만 실제 시장이 열리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이 정도 규모의 회사가 성급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급속히 망하는 경우를 많이 봤으므로 안정적인 사업확장에 신경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