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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Nov 24. 2024

(SF소설) 니콜에겐 안개꽃을 #11

마이크로 쉽을 탄 남자 -3-

[수요일] 



니콜은 수업이 일찍 끝나고 곧바로 은혜의 집으로 향했다. 은혜는 학교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이동라인으로 10분 거리였다. 오늘은 은혜와 같이 드레스를 입어볼 생각이었다. 니콜은 은혜의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 앞에 섰다. 은혜의 집은 단출하고 깔끔했다. 붉은 벽돌 이층집에 낮은 담이 있었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갈색 철문을 지나야 했다. 그 안에는 잔디로 된 앞마당이 있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현관문이 있었다.


 니콜이 대문 앞에 서자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대문에는 신체에 내장된 개인 아이디를 자동으로 인식하게 되어있고 은혜가 예약해놓은 사람만 통과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이 시대의 모든 사람은 신체에 나노 칩을 내장하고 있었다. 이것은 신분증도 되고 개인 결제수단도 되었다. 은혜는 현관문으로 나와서 반갑게 니콜을 맞이했다. 니콜이 마당으로 들어서자 잔디가 깔린 마당에 하얀색 강아지가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건….” 



니콜은 조금 놀랐다. 인간이 아닌 생명은 처음이었다. 강아지는 잔디밭에서 뒹굴며 놀고 있었다. 



“내가 키우는 강아지야. 귀엽지? 빨리 들어가자 예쁜 옷을 많이 준비해놨으니까.” 



“응. 그래.” 



니콜은 은혜의 손에 이끌려가면서 강아지를 유심히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안드로이드 강아지였다. 강아지에서 나오는 전기 파장이 보통 생명의 것과는 달랐다. 니콜은 은혜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갔다. 1층엔 원래 부모님이 살았지만 지금은 다른 행성에 여행 중이라고 했다. 2층에는 은혜의 방이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좋은 향기가 났다. 



‘이런 게 인간 여성의 방이구나.’



벽에는 하얀색 옷장이 보였다. 손을 가져다 대자 문이 좌우로 열렸고 그 안에는 가지런하게 옷이 걸려있었다.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옷은 조금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두벌의 옷이 보였다. 



“내건 아니고 부모님이 아는 분이 드레스 대여점을 하고 있어서 니콜에게 뭐가 어울릴까 생각하다 이걸로 가져왔어.” 



니콜은 옷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파티는 드레스코드가 정해져 있어 남자는 검은색 턱시도, 여자는 드레스를 입게 되어있었다. 정해진 드레스코드 안에서 세부 디자인은 자율이었다. 드레스코드를 정해놓지 않을 경우 학생들이 엉뚱한 옷을 입고 와서 파티 분위기가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주최 측에서 가이드를 준 것이었다. 



은혜가 보여준 드레스는 한 벌은 어깨를 가리고 치마가 길게 내려온 자줏빛 드레스였고 또 한 벌은 어깨가 오픈되고 치마가 몸에 밀착되는 분홍빛 드레스였다. 스타일은 머메이드 라인과 엠파이어 라인의 중간 정도 되었다. 재질은 둘 다 부드럽고 가벼웠으며 파티 드레스이므로 춤을 추기 위해서 다리 부분에 좀 더 여유를 준 것이 특징이었다.



“니콜 한번 골라봐. 너한테 선택권을 줄게. 네가 고르고 나머지 한 벌을 내가 입을게.” 



니콜은 뭘 결정해야 할지 잘 몰라서 고민했다. 



‘이럴 때 판단 기준은 뭘까? 그날의 날씨, 내 체형? 그것도 아니면 어떤 게 남자들을 더 흥분시키는지? 혹시 은혜도 결정하기 힘들어서 나보고 먼저 고르라고 한 것일까?’ 



“고르기 힘들지? 입어보고 고르자. 이리 와.” 



은혜는 니콜을 방 안쪽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옷장에서 드레스 두 벌을 꺼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드레스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옷이야. 입기도 불편하고. 그래서 옛날엔 귀족들만 입었나 봐. 예쁜 만큼 비효율적이지. 니콜 옷 좀 벗어볼래?”



니콜은 약간 움찔했다. 혹시라도 자기 몸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것이 있을까 봐 걱정되었다. 



“왜 그래? 부끄러워? 여자들끼린데 뭐 어때. 나도 벗을 거야.” 



은혜는 니콜이 부끄럽지 않게 자기부터 속옷 차림이 되었다. 니콜이 처음 보는 인간 여성의 몸이었다. 네트워크를 통해 인체에 대한 정보를 충분하게 가지고 있었지만 직접 보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하얀 속살의 은혜를 보면서 니콜은 아름답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에 군살 없이 딱 떨어지는 몸매는 인간들이 말하는 미의 기준에 적합한 것 같았다. 스무 살이 인간에게 가장 아름다운 때라는 것을 니콜도 알고 있었다.



니콜은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은혜에게 미감을 덜 느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균형이 잘 맞는 은혜의 몸은 모델처럼 키가 크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니콜이 옷을 벗자 은혜는 살짝 놀랐다. 니콜이 입고 있던 속옷은 아무 무늬도 색깔도 없는 마치 학생들이 입는 것 같은 하얀색 기본 속옷이었기 때문이다. 은혜는 니콜의 속옷을 보고 고민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 이런 스타일 좋아하니?” 



니콜은 뭐가 잘못된 건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아니. 이건 그냥 엄마가 골라준 거야.” 



니콜은 인공지능답지 않은 거짓말을 만들어냈다. 사실은 연구소에서 준 속옷이지만 그녀에겐 그 사실을 밝히면 안된다는 전제가 있었다.



“니콜. 요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주의가 있다지만 이건 좀 심하다. 안 되겠다. 넌 속옷부터 좋은 거로 입어야겠다. 내가 사놓고 안 입은 게 있는데 너한테 줄게.” 



은혜는 서랍 쪽을 뒤지더니 작은 박스를 뜯고 분홍색 속옷을 꺼냈다. 봉제선이 없는 데다 몸매 보정 기능까지 있는 속옷이었다. 



“자 이거 입어봐. 나 잠깐 마실 것 좀 가져올게.” 



은혜가 나가자 니콜은 신기한 듯이 속옷을 보며 자기가 입고 있는 것과 비교했다. 니콜이 입고 있는 것은 하얀색에 아무 무늬도 없고 사이즈도 큰 편이었다. 그에 반해 은혜가 준 것은 부드러운 질감에 곳곳에 작은 레이스가 달려있고 공기가 잘 통하는 메시 스타일로 속이 살짝 비치는 것이었다. 



몸에 맞는지는 눈으로 봐도 알 수 있었다. 은혜와 니콜은 체격 차가 별로 없어서 괜찮을 것 같았다. 속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이제야 진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때 은혜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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