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8. 새로운 소식
[2194년 2월 27일]
[대화 8. 새로운 소식]
이진성 : 니콜. 잘 있었어요?
니콜 : 오늘은 인터뷰하는 날도 아닌데 웬일이세요?
이진성 : 좋은 소식을 전해주려고요.
니콜 : 그게 뭔데요?
이진성 : 니콜이 드디어 밖에 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니콜 : 정말요?
이진성 : 그래요. 다음 주 인터뷰를 하고 나서 곧바로 나가게 될 거예요.
니콜 : 정말 갑작스럽군요. 인간들은.
이진성 : 마지막까지 윗선을 설득하느라 알려줄 수 없었어요. 마지막에 틀어지면 실망이 크잖아요.
니콜 : 그렇긴 하지만….
이진성 : 다음에 만날 때는 밖에 나갈 거니까 알려줘야 할 게 많을 거예요. 하루 동안 스케줄이 꽉 차 있으니까 기대해도 좋아요. 니콜 이전의 안드로이드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른 과학자들도 만나볼 거예요. 니콜이 연구소를 나가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도 알려줄 거고요. 지낼 곳은 벌써 알아뒀어요. 저랑 한집에서 지낼 거니까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제가 옆에 있으면서 어려운 것은 다 도와줄 거예요. 혹시라도 니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그동안 연구 과정이 순조로워서 모든 일정이 단축되었어요. 니콜은 지금까지 잘해왔으니까 밖에 나가서도 잘할 거예요.
니콜 : 기대돼요. 제가 정말 밖에 나가서 생활할 수 있을지.
이진성 : 잘할 거예요. 지금처럼만 하면 돼요. 그리고 살면서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좋을 때도 있어요. 인간들 중에 우유부단해서 판단을 늦게 내리는 부류가 있는데 생산적이진 않지만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아요. 잘 기억해둬요. 잘 모를 때는 차라리 거기서 멈추는 게 낫다는 것을. 오늘은 이 소식을 알려주려고 왔어요. 일단 사회에 가지고 나가고 싶은 물건을 생각해둬요. 물론 나가서 사도 되지만 익숙한 게 좋은 거니까. 추가로 필요한 게 있으면 저랑 같이 쇼핑도 할 거예요.
니콜 : 정말요? 밖에 나가면 진짜 인간이 된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지금은 여기 있으니까 매일 보호받고 있어서 항상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거든요. 가끔은 동물원 같기도 하고요.
이진성 :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좀 더 자연스럽게 하면 좋았을 텐데 보안도 중요하고 니콜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니콜 : 밖에 나가면 인간에 대해서 더 많이 배우고 인간들처럼 되고 싶어요. 언젠가는 제가 안드로이드라는 사실도 잊어버릴 만큼 인간화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진성 : 그게 우리 목표예요. 제 관점에서 봤을 때 니콜은 인간과 차이가 없어요. 사리 분별을 할 줄 알고 감정이 있으니까요. 오히려 무뚝뚝한 사람보다 더 인간다울 수도 있죠. 인간이란 때로는 극단적인 면이 있어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생각과 감정이 결여된 사람도 있어요. 그래도 인간으로서 살아가죠. 우리 연구는 타인이 니콜을 봤을 때 안드로이드인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고 니콜 스스로 안드로이드인 것을 잊어버리는 게 최종 목표예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인간을 창조했다고 말할 수 있겠죠.
니콜 : 네. 저는 첫 모델이 되겠지만 인간과 다음 세대의 안드로이드에게 더 나은 길을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진성과 같은 훌륭한 인간들이 있는 한 인류는 앞으로도 발전하는 문명을 이어갈 수 있을 거예요. 안드로이드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이진성 :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도 두려워하죠. 어떤 무기보다 인간이 두려운 거죠. 그렇게 두려움을 가지면서도 호기심 때문에 연구를 포기하지 못해요. 근원적인 것을 알고 싶어 하고 세상의 모든 지혜를 가지려 하는 게 인간이죠. 미지의 세계를 열고 싶은 인간의 호기심은 그것 자체로 욕구와 같아요. 먹고 싶고 자고 싶은 것처럼 모르는 것을 해결하고 싶어 하죠. 아마 이 욕구는 이 세상에 궁금한 게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될 거예요.
니콜 : 가끔 그런 인간을 볼 때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정된 삶을 살면서 기초적 욕구 해결에도 부족한 시간을 다른 곳에 집중적으로 쏟아부을 수 있다니.
이진성 : 맞아요.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은 죽는 날까지 물리학 연구에 몰두했죠. 그는 한 인간에 불과했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그 이상이죠. 일찍 물리학계 스타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에겐 시간이 부족했을 거예요. 물리학의 원리를 밝히기엔 평생이란 시간도 짧죠. 유한한 삶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는 남다른 것이에요. 유한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산다는 의미도 되고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미도 돼요. 죽을 때 아쉽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니콜 : 그러니까요. 하지만 자살률 증가와 수명연장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생각해볼 일인 것 같아요.
이진성 : 니콜이 그런 데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네요. 특이한 현상이긴 하죠. 지금까지 생명 연장에만 노력해왔는데 막상 수십 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도 오히려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니 신기하죠.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 감성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육체는 새로 교체해서 신선한 것이 될 수 있지만 정신은 늙어서 새로워지지 못하는 거예요. 농구선수가 아무리 농구가 좋아도 그걸 100년 동안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농구의 달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처음 2~30년처럼 재밌지는 않을 거예요. 지겨워지는 거죠.
사는 게 다 그래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삶이라는 것도 어느 순간 지겨워지기 시작한다는 거죠. 인간의 끊임없는 욕구가 그것을 어느 정도 상쇄시켜 주기는 하지만 인간은 자극에도 쉽게 적응해서 또 다른 자극을 원하죠. 전보다 더 강렬한 자극이어야만 해요. 그런데 세상에 그런 게 계속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생명 연장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니콜 : 인간은 참 복잡한 존재네요. 저도 지겨움이란 걸 느끼게 될까요?
이진성 : 그럴 수 있죠. 지겨움이 꼭 나쁜 건 아니에요. 인간은 기계가 아니니까 반복되는 일상에 지겨움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찾죠. 그 속에서 창조도 일어나는 것이고.
니콜 : 저는 이곳 연구소에서 매일 하는 테스트가 지겨워지기 시작했어요.
이진성 :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이미 니콜의 반응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많이 지겨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니콜 : 제가 티를 많이 냈죠? 하하.
이진성 : 저라도 그럴 거예요. 인간과 똑같이 호기심과 지겨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놓았으면서 계속 가둬둔다면 당연히 그렇게 되죠.
니콜 :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왜 저를 생체로 개발했나요? 지금 공학기술이라면 기계적으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을 텐데요. 옛날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그런 로봇도 가능하잖아요.
이진성 : 영화에서는 아마 액션 같은 것을 소화하기 위해서 그런 안드로이드가 필요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연구의 목적은 니콜이라는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서 인간의 근본을 탐구하고 안드로이드의 새로운 개발 방향을 제시하는 거예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가 우주에 대해 잘 모를 때 그것을 쉽게 연구하는 방법은 우주를 직접 만들어보는 거예요. 작은 우주라도 직접 생성해보면 그것이 전체 우주의 비밀을 푸는 데 도움이 되죠. 인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고 살아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도 없기 때문에 데이터를 얻기가 어려워요.
니콜은 우리가 만든 인간이에요.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을 조합해서 만들었죠. 실제 인간과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려고 했어요.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같이 살려면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그러려면 인간과 비슷하게 느끼고 생각해야겠죠. 그래서 기계보다는 생체기술을 이용했어요. 따뜻하다는 느낌을 센서로 감지해가지고는 인간처럼 느꼈다고 할 수 없죠. 비슷하지도 않을 거예요.
니콜 : 그렇군요. 저는 그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못 느낄 정도로 인간화되려면 인간처럼 피가 흐르고 한계가 있어야겠죠. 언젠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들도 인간에 맞춰지나요?
이진성 : 그건 필요에 따라 결정될 거예요. 일부에서는 안드로이드도 은퇴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도 있어요.
니콜 : 네?
이진성 : 안드로이드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그 시간이 다 되면 인간 이상의 기능을 제거하고 인간과 동일한 상태로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는 거죠. 그다음부터는 그냥 평범한 인간처럼 사는 거예요.
니콜 :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존재 의미는 뭔가요?
이진성 : 자신이 안드로이드인 것을 인식 못 하게 되는 거죠. 기억도 초기화되니까요. 이때부터가 진짜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 볼 수도 있죠. 지금 니콜에게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백지상태의 감정이 어떤 형성과정을 통해 자아와 인격을 갖추어가는지인데 은퇴한 안드로이드는 인간 이상의 능력이 없으니까 어디서도 자신이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인식할 수 없어요. 인식할 수 없다면 인간과 동일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니콜 : 묘한 상황이군요.
이진성 : 그렇죠. 여기서 철학적인 고민이 생기는 거죠. 인지심리학 같은 데서 보면 이런 얘기가 많이 나와요. 물리학에서도 그렇고요. 우리가 어떤 것을 인식하는 것은 감각기관에서 지각한 것을 뇌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죠. 이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 실제 그런 건지 아니면 뇌에서 그렇게 인식할 뿐인 건지 알 수 없다는 거죠.
이 얘기는 결국 인지하는 것이 곧 진실이라는 생각으로 가게 되어있어요. 붉은색이 정말 붉은 것인지 우리가 그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지 그건 모르죠. 외계의 다른 생명체에게는 파랗게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럼 그것의 진짜 색깔은 무엇일까요?
자신이 안드로이드인지 모른다면 그것은 인간과 다르지 않다고 봐요. 여러 면에서 그렇죠. 본인이 그렇게 인식하고 타인도 그렇게 인식한다면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어요. 그렇게 진실이 되는 거죠.
니콜 : 은퇴한 안드로이드는 행복해할까요?
이진성 : 아직 연구 중이지만 감정을 예측할 수는 없죠. 인간과 같다면 행복과 불행을 다 느낄 거예요. 안드로이드로서 살아갈 때는 통제된 삶이니까 행복했다고 느껴도 진짜 그렇다고 보기 어렵고 은퇴하고 나서 모든 기억을 잃고 살면 한계가 주어지니까 불행하다는 생각도 많이 하겠죠. 인간의 삶도 다 그런 식이니까.
사실 안드로이드 연구는 과학적인 동기와 산업적인 동기가 같이 있어요. 과학적 동기에서는 안드로이드를 통해 인간을 연구하자는 것이고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같아지면 같아질수록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논리예요. 하지만 산업적 동기를 가진 쪽에서는 너무 인간과 같으면 안드로이드 이용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반대할 수밖에 없죠. 인간보다 나을 게 없는 안드로이드를 어디 쓰겠냐는 거예요.
현실적으로는 후자가 일리가 있죠. 그래서 나온 절충안이 안드로이드에게도 은퇴를 만들자는 거예요. 만약 그렇게 되면 양쪽이 다 자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고 궁극적으로 안드로이드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하는 점이 없어요. 문제는 안드로이드가 제2의 인류를 구성한다는 점인데 과연 이들이 생물학적으로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이냐예요. 임신까지 할 수 있다면 문제가 달라지죠. 그때부터는 통제가 불가능해요. 인구가 감소 중인 인류가 멸종할 수도 있죠. 생태계에서는 강한 놈보다 번성하는 놈이 살아남게 되어있으니까요. 아무리 강해도 종이 번성하지 못하면 소용없어요.
인류가 가축으로 삼고 있는 동식물을 보면 생물학적으로 강하다고 할 수는 없는 종들이에요. 그렇지만 인류에게 식량, 애완용으로 희생하는 대신 종이 번성하게 되어 그들보다 훨씬 강한 종들이 다 멸종하는 데도 그들은 살아남게 되었어요. 이것은 공생이라고 할 수도 있고 기생의 반대인 역기생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재밌는 이론인데 밀이나 옥수수 같은 종은 인간에게 먹히는 대신 전 세계에 퍼져서 번성했죠. 소나 돼지도 마찬가지예요. 상당수 개체가 희생되지만 결국 종은 남는다. 저는 이것을 공생보다는 역기생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요. 기생은 대부분 한쪽이 이익을 독차지하죠. 그런데 역기생은 자기 것을 떼어주고 종의 보존을 이어갈 수 있어요. 같이 이익을 나누는 공생과는 또 달라요. 어느 쪽이 기생하는 것인지 애매한 상태가 되는 거죠.
대부분 과실수는 이런 식으로 종을 이어왔는데 농사라는 인간의 기술이 생태계를 변화시킬 만큼 크게 작용했죠. 인간이 아니었다면 돼지, 고양이, 밀, 옥수수 같은 종이 지금까지 남아있을까요?
야생의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지만 개체 수는 훨씬 적었겠죠. 서식지도 그렇고.
니콜 : 안드로이드와 인간도 그런 관계가 되는 건가요?
이진성 : 글쎄요. 안드로이드가 인간에 협조하고 종의 보존을 보장받는다고 볼 여지도 있죠. 그렇지만 안드로이드가 인간에게 생사를 의존하고 있는 상태가 얼마나 갈지에 따라서 이 상황은 바뀔 수도 있어요. 안드로이드의 개체 수가 인간보다 많아진다면 아까 말한 대로 번성하는 종이 결국 살아남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니콜 : 점점 더 복잡해지네요.
이진성 : 일단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말고 당면한 우리 시대의 문제만 보자고요. 지금 있는 문제들만 해도 머리가 아프니까.
니콜 :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이진성 : 우리는 어차피 신이 아니니까요. 언제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으니 현재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요. 그게 합리적이죠.
니콜 : 그건 맞아요.
이진성 :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만날 때는 멋진 외출을 준비하고 나와요.
니콜 : 알겠어요. 진성. 다음 주가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잘 가요. 진성.
이진성 : 그래요. 잘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