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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Mar 25. 2021

(SF소설) 대화록 #14 -사랑(2)-

대화 7. 사랑 -2-

니콜 : 저는 영화를 볼 때 자주 동화되는 편이에요. 이게 상상력인지 동정심인지 알 수 없지만 주인공의 입장에서 자꾸 생각하게 돼요. 


이진성 : 맞아요. 인간도 그래서 영화를 보는 거예요. 자신이 겪을 수 없는 것을 영화를 통해서 경험하는 것이죠. 우주 탐험, 전쟁, 사랑 이런 극적인 일들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얻죠. 몰입이 안 되면 누가 영화를 보겠어요?



니콜 : 그러네요. 그런데 진성. 제가 나가서 인간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이진성 : 너무 그런 쪽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니콜은 니콜의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누군가를 돕는 것은 그다음 일이고요. 니콜의 삶을 열심히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돕게 될 거예요. 니콜 스스로 행복해하는 일을 하고 누굴 돕는 건 그다음에 생각해도 돼요.



니콜 : 제가 행복해하는 일요?



이진성 : 니콜이 좋아하는 일이죠. 공부도 하고 사랑도 하고 그런 거죠.



니콜 : 사랑요?



이진성 : 사랑에 대해 이제 얘기해줄 때가 됐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 감정의 요체와 같아요. 이것을 빼고 인간을 말할 수 없으니까요. 니콜에게 감정을 가지도록 한다는 것은 사랑을 심는 것과 같아요. 사랑을 이해하지 않고 인간을 이해할 수는 없죠.



니콜 : 진성이 생각하는 사랑은 뭐죠?



이진성 : 그건 한마디로 답하긴 어려워요.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변화가 심한 것이니까요. 유년기에는 단순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복잡한 인간관계만큼이나 여러 가지 감정들이 섞여 있죠. 동정심도 사랑의 일종이에요. 사랑은 부모·자식 간에도 있고 이성 간에도 있어요. 물론 가끔 동성 간에도 있지만요.



니콜 : 뭔가 복잡하네요. 



이진성 : 이런 것들은 내가 니콜에게 설명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니콜이 사회에서 경험하면서 깨닫는 게 정확할 거예요. 다만 저는 니콜이 누군가를 사랑하더라도 크게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랑에는 기쁨도 있지만 슬픔도 같이 있거든요. 사랑하면 반드시 아프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대체로 이 말에 동의해요.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고요. 사랑은 기쁨만큼 아픔도 주니까 니콜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거예요.



니콜 : 사랑하면 아픔을 겪는다는 거군요. 행복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건데 그게 아픔을 가져온다고요?



이진성 : 사건 파일들을 검색해보세요. 사랑 때문에 일어난 각종 사건·사고가 있어요. 심지어 남성이 저지르는 살인사건에 여성이 관련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 정도로 극적인 감정이에요. 그 기쁨과 절망은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큰 것이죠. 어떤 감정도 그것보다 크게 느껴지는 것은 없어요. 심지어 죽음도 보이지 않을 정도거든요.



니콜 : 진성은 그것을 경험해봤나요?



이진성 : 물론 저도 나이가 있으니까 경험이 있죠. 제 경우는 그렇게 좋지 못한 것이었죠. 연구에 몰두하고 있어서 사랑이란 감정에 충실하지도, 그것을 잘 알지도 못했거든요.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 다 사랑을 이해하거나 잘하는 것은 아니에요.



니콜 : 진성이 그랬다면 사랑은 정말로 어려운 일인가 보군요. 제가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진성 :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가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니콜이 사랑에 빠지는 거예요. 인공지능에 그런 감정을 불어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요. 실험적인 시도라고 볼 수도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어요. 도대체 그게 인간에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 안드로이드에게 그런 것까지 해야 하느냐 하는 논쟁이 있었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인간을 돕기만 하는 인공지능은 그냥 기계일 뿐이에요. 돕는 데도 한계가 있죠. 자기 자신을 위한 의지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만 진정으로 인간을 도울 수 있어요. 그리고 인간은 교감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과 같이 살려면 서로 교감해야 해요.



니콜 : 교감이라…. 한 가지 궁금한 게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죠?



이진성 : 음… 그건 처음엔 잘 모를 수 있는데 만약 니콜이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면 그때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만약 그 사람이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더 확실한 거죠. 이 단계까지의 사랑을 짝사랑이라고 해요.



니콜 : 짝사랑? 누군가 먼저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랑이니까 당연히 그렇겠죠. 데이터를 보니 인간들은 대부분 남자가 먼저 고백하는데 이건 남성 중심 문화의 산물 아닌가요?



이진성 : 뭐. 그런 면도 있죠. 사실 이제는 누가 해도 상관없는데 생물학적, 심리학적으로 남성이 이성 관계에서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에요. 대부분 동물도 그렇죠. 남녀 모두 성욕이라는 게 있지만 남성이 더 강렬하죠. 지구 상의 모든 수컷에게 이것은 족쇄처럼 작용해요. 본능적으로 암컷을 쫓아다니게 만들죠. 그래서 남성은 다소 불안정한 면이 있어요. 니콜이 여성으로 결정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에요. 종족 번식의 본능은 어떤 동물이든 가지고 있지만 암컷의 난자보다 수컷의 정자의 수가 많기 때문에 수컷이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가장 우수한 수컷만이 종족을 보존하죠. 인간의 경우 동물처럼 하지는 않지만 본능적으로 남성이 더 적극적이죠. 여성도 생존과 우수한 자손을 갖기 위해 남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요.



니콜 : 어느 정도 이해는 가요. 남성의 육체는 다른 동물들처럼 자손을 남기는 데 본능적으로 집중하게 되어있는데 여성은 출산과 육아라는 부담을 안게 되니까 거기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네요.



이진성 : 맞아요. 그런데 요즘처럼 인공 출산이 보편화한 시대에도 그 본능만은 잘 안 바뀌는 것 같아요. 여성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났지만 그래도 남자보다 적극적이지는 않아요. 그것은 태초부터 유전되어온 성향인 것 같아요.



니콜 : 그런 면이 있을 것 같네요. 진성은 뭐든 대답해주니까 자꾸 물어보고 싶어요. 궁금한 게 많거든요.



이진성 : 음… 제가 다 대답해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전 신이 아니에요. 모든 걸 가르쳐줄 수는 없어요. 실제로 제가 말해준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저는 어디까지나 니콜을 돕는 역할이고 최종 결정은 니콜이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온전한 니콜의 인생이 되니까요. 알겠죠?



니콜 : 네. 맞는 말씀이에요. 다행이에요. 진성이란 사람을 알게 돼서. 진성이 하는 말은 진심이 느껴져요. 사람을 판별하는 능력이 아직 없는 저에게 진성은 좋은 기준점이 될 것 같아요.



이진성 : 전 니콜에게 굳이 거짓말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사회에 나가더라도 사람들의 말을 100% 믿는 것보다 전체적인 상황과 사리에 맞춰서 판단해야 해요. 인간들에게 거짓말은 굉장히 일상화되어있거든요. 거짓말을 하루 한 번씩 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고요.



니콜 : 정말요? 저로서는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상상이 안 돼요. 단순히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함인가요?



이진성 : 이유는 다양하죠. 자원은 한정되어있고 그것을 원하는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기 때문에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서 하기도 하고 타인을 위해 좋은 뜻으로 하기도 하고.



니콜 : 진성도 거짓말을 해요?



이진성 : 저도 어쩔 수 없이 할 때가 있어요. 물론 악의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가 있죠. 완전히 진실만 말하고 살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인간의 삶이 고달픈 것이죠. 아는 대로 말하고 배운 대로 행동하기만 하면 뭐가 어렵겠어요. 니콜이 세상에 나가면 다 경험하게 될 거예요. 지금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니콜 : 그래도 전 거짓말 안 할 거예요. 굳이 그렇게 하면서 뭘 얻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진성 : 쉽지 않을걸요. 니콜의 의지대로 해보면 답을 얻을 거예요.



니콜 : 네. 진성….



이진성 : 니콜. 오늘은 시간이 금방 가네요. 더 궁금한 거 없어요?



니콜 : 혹시 제가 사랑 때문에 분노에 휩싸이면 어떻게 하죠? 질투를 할 수도 있잖아요.



이진성 :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사람도 그러니까. 제가 니콜에게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시간의 힘을 빌리라는 거예요. 만약 사랑 때문에 상처 받거나 사랑을 얻지 못해 괴로울 때 성급하게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기보다 시간을 두고 고민하면서 무엇이 나와 상대방을 위해서 좋은 길인가를 생각하라는 거죠. 말은 쉽지만 막상 겪어보면 잘 안 될 거예요. 사랑에 눈이 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요. 



 사랑이란 게 결국 두 사람이 하는 거고 두 사람의 균형이 갖춰진 상황에서 가장 잘 이뤄진다는 걸 잊지 말아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모든 걸 주고, 나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사랑은 금방 끝나버려요. 사랑을 지탱하는 균형이 무너지는 거죠. 니콜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니콜 : 여태껏 진성이 하는 말은 다 이해를 했는데 지금 말은 약간 어렵네요. 



이진성 : 내가 바로 서야 상대방도 나를 돌아보게 되고 둘의 사랑이 오래갈 수 있다는 거예요. 일방적인 사랑은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에게 불행한 결과만 가져올 뿐이에요. 사랑은 너무나 큰 에너지라서 그것이 분노로 변했을 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에너지가 돼요. 심지어 사랑보다 오래갈 수도 있어요. 그것을 잘 조절할 줄 알아야 하는데 쉽지 않죠.



니콜 :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이진성 :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이것만은 저도 장담하기 어렵네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같이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분노는 많이 가라앉으니까요. 사랑이 이뤄지지 않을 때의 고통이나 배신으로 인한 분노 같은 것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어떻게 컨트롤하느냐가 문제죠.



니콜 : 제가 그것을 잘 컨트롤할 수 있기만 바래야겠네요.



이진성 : 대부분 사람은 잘 겪고 넘어가니까 니콜도 그러길 바라야죠. 혼자 생각 속에 갇히지 말고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낼 줄 알아야 해요.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얻는 다양한 스트레스에 대해 제때 해결하지 않으면 그것이 나중에 마음속 병이 돼요.



니콜 : 네. 대부분 진성에게 상담하겠지만 다른 육체적, 정신적 활동을 통해 풀어내는 노력을 해야겠죠. 네트워크에서 검색해보니 인간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겠어요. 운동, 예술, 독서 등이 다 이런 활동이군요.



이진성 : 꼭 그것만을 위한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인간은 기쁨을 느끼고 기분전환을 할 수 있죠. 노폐물은 생리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배출해버려야 하니까요.



니콜 : 지금은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지만 사회에 나가면 꼭 해야겠어요. 가능하면 스트레스받거나 분노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이진성 : 그래요. 우리 인간들 모두의 바람이죠.



니콜 : 네. 진성.



이진성 : 그래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니콜 : 네. 오늘 많은 것을 배웠네요. 안녕히 가세요.



이진성 : 그래요.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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