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맥주는 꼭 세븐일레븐에서.
미야지마에 처음 도착한 나를 반긴 건 사람이 아니라 사슴이었다. 수컷인지 암컷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컷은 위험하다고 한다. 처음 알았다. 사슴 한 장 찍고 토리이를 향해 걸었다. 오늘 히로시마에서 일정이 많기 때문에 길게 머물 시간이 없다. 여기서는 토리이와 바다 위에 만든 사원만 보면 된다.
여느 여행지처럼 상점들을 지나쳤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열지 않았지만, 언제나 반가운 도토로들을 만났다. 미야지마의 상징인지 너구리도 있었다. 길게 인사 나눌 시간은 없었다. 뛰듯 걸었다. 처음 만난 것은 돌로 만든 큰 토리이였다. 아마도 우리가 사찰에 갈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일주문(一柱門) 같은 것일 거다.
사진 한 장 찍고 패스. 붉은 토리이를 오른쪽에 두고 100미터쯤 걸어가자 이쓰쿠시마 사원의 입구와 마주쳤다. 입장료 300엔. 기꺼이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나는 26살이었다. 거의 30년 전이다. 처음은 도쿄였다. 그때 하라주쿠를 지나쳐 걸으면 나타나는 ‘메이지 신궁’이 나의 첫 일본 신사 혹은 사원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경험과 기억은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내가 방문한 일본의 사원들, 정원들에 대한 기준이 되었다.
오늘도 그 기준으로 사원을 걸었다. 어디나 있는 지역의 자랑스러운 술통들, 남산 타워 자물쇠 같은 연인들의 추억을 스치며 바다 위에 올려진 나무 바닥을 걸었다. 그리고 만났다. 토리이를. 그 붉은 T자를 잠시 넋 놓고 바라봤다.
“스바라시.”
나도 모르게 일본말이 입안에서 튀어나왔다. 정신 차리고 나무 바닥을 조금 더 걸었다. 이내 사원의 출구였다. 짧지만 알찼다. 입장한 지 5분 만에 볼 것 다 보고 사원을 나섰다.
다시 JR 페리 선착장 쪽으로 걸었다. 이제 이 섬에서 남은 일은 단 하나다. 술통도 봤겠다, 미야지마산 맥주 한 캔이면 스스로에게 충분한 기념품이었다. 선착장으로 가기 위해 다시 상점가를 지나쳐야 했다. 10시가 넘자 15분 전과는 달리 상점들은 이미 대부분 문을 열었고 분주했다.
미야지마 로컬 맥주를 쉽게 찾았다. 두 캔에 1,500엔. 나쁜 가격은 아니었지만 좀 더 걸었다. 또 찾았다. 1,400엔. 여행지란 게 이런 거다.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 캔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랴? 그렇다면 갈수록 싸지는 것이 당연한 시장 논리다. 선착장까지 가면 더 싸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 캔이면 족하다. 1,400엔도 지나쳤다. 그리고 결국 기념품 상점가가 다 끝난 선착장 앞 구멍가게에서 맥주를 찾았다. 한 캔에 650엔. 이거 봐. 얼른 붉은색으로 한 캔을 샀다.
그런데, 세상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이다. 나는 이 구멍가게가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선착장에 아주 작은 세븐일레븐이 있었고, 거기에는 545엔이 붙어 있었다.
“아이고, 하나님.”
뭐 그래도 대만족이었다. 다시 JR 패스를 이용해 공짜로 배를 탔다. 오는 길에 세금 100엔을 내서 이번에는 낼 필요 없다고 했다. 손해 본 맥주 값을 돌려받은 기분이었다.
객실에 들어가 캔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부웅~
기적을 울리며 페리는 다시 히로시마로 향해 출발했다.
https://maps.app.goo.gl/ck1RisJNdRJG5LN98
이 글은 정보보다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 편씩 나눠서 읽으셔도 좋지만, 소설처럼 처음부터 천천히 읽으셔도 좋습니다. 첫회 링크입니다.
https://brunch.co.kr/@heinzbecker/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