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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금요일, 광주의 영혼들에게 건배.

'민주주의여 만세'. 글을 쓰고 있는 손가락마저 죄스럽다.

by 하인즈 베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혁명


45년 전 오늘. 1980년 5월 16일 밤, 광주는 이미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계엄령 확대가 임박했고, 특전사가 곧 투입될 것이었다. 언론은 침묵했고, 정치권은 무기력했고, 거리는 조용했지만 피는 이미 끓고 있었다. 그날 밤의 광주는 ‘전날’과 ‘내일’ 사이의 어둠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고요했지만, 실은 너무 많은 일이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간이었다.


시민들 사이에 “이거 이상하다”는 촉이 돌고 있었다. 광주의 민주주의는 언어가 아닌 삶의 감각이었다. 곧 피로 번역될 것임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밤은 짧았지만, 오래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누군가는 그날 밤 이후 늙었고, 누군가는 그날 이후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2025년 5월 16일 밤. 다시 비가 내리고, 다시 주말이 다가오고, 다시 광주를 누군가 찾아갈 거다. 대통령 후보 '김문수'도 있겠지. 지난 수십 년간 민주주의를 외면하고, 노동자와 시민을 조롱했던 자가 한덕수가 했던 그 유체이탈 화법을 그대로 빌려와 ‘사랑해야 합니다’를 외칠까 걱정이 앞선다. 쇼윈도 정치. 사과 없는 사과. 눈물 없는 슬픔. 광주는 또 한 번, 배우 없는 연극의 무대가 될 것이다.


특전사령관 정호용, 광주 발포 시행자.


'정호용'이라는 이름이 다시 뉴스에 나왔다. ‘고문’으로 이름을 올리려 한다고 했다. 이미 역사로 정리되었어야 할 이름이, 지금은 자살골처럼 다시 튀어나온다. 누가 그런 인선을 했는가. 누가 그걸 감쌌는가. 국민의 힘은 이제 정당도 아니다. 난파선이다. 더 이상 목적지도 없고, 선장도 없다. 그 안엔 뛰어내릴 타이밍만 재는 쥐새끼들과, 끝까지 함께 수장될 이름들만 남았다. 누가 봐도 침몰 중인데, 아무도 모르는 척,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조국은 안중에도 없다. 다음 총선만이 전부다. 그때까지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거짓을 뿌린다.


IMG_5688.JPG 표고전과 배추김치 / 하인즈 베커 요리


비 오는 금요일이다. 나는 요리학원에서 만든 '배추김치와 표고전'을 꺼낸다. 막걸리 한 병을 따며 생각한다. 그날 밤, 광주에선 어떤 술자리들이 있었을까? 무슨 안주가 있었을까? 어쩌면 누군가는, 마지막 저녁인 줄도 모르고, 친구와 한 잔을 기울였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청년들이 지금 살아 있다면, 지금의 이 나라를 보고 뭐라고 할까.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나는 그들에게 건배한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yR-L1w6wII

타는 목마름으로 / 김광석


그날의 밤처럼, 오늘의 밤도 조용하다. 하지만 내일이 오면, 말해야 한다. 절대, 잊지 않았다고. 이 비는 그들을 위한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손가락마저 죄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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