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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안도 다다오, 자전과 공전.

콘크리트에는 굴곡이 없지만, 안도의 건축에는 인간적인 모서리가 있다.

by 하인즈 베커
안도 다다오 / 안도 뮤지엄 사진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길을 걷다 노출 콘크리트 건물만 보면, 혼잣말처럼 “음, 안도 스타일이군”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이름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고, 그다음은 당연하다는 듯이 '안도 다다오'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가볍게 훑은 게 아니다. 꽤 깊게 들어갔다. 단순히 도쿄의 <오모테산도 힐즈>나 오사카의 <빛의 교회> 같은 대표작만 알고 찾은 정도가 아니라, 나는 그가 콘크리트로 점령한 나라라 불릴 만한 '나오시마 섬'에도 여러 번 갔다. <치추 미술관>만이 아니라, 그가 손수 설계한 작은 집, 이름 없는 미술관, 심지어 눈에 잘 띄지 않는 벽 하나까지도 보려고 걸었다.


치추미술관, 나오시마 / 하인즈 사진
안도 뮤지엄, 나오시마 / 하인즈 베커 사진



이번 여행에서는 도쿄에 있는 <21_21 디자인 사이트>를 다녀왔다. 안도 다다오가 동시대의 또 다른 거장 이세이 미야케와 함께 ‘일본에도 제대로 된 디자인 뮤지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에서 고수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쥬로 시작된 공간이다. 그 공간은 전시를 보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걷고 머무는 감각을 배우는 곳이다. 그리고 도쿄대 안에 있는 <후쿠타케 홀>도 들렀다. 전공 수업이 있는 학생처럼 캠퍼스를 돌고, 오래된 벽돌 건물과 나란히 선 콘크리트 벽 앞에서 멈췄다. 그 벽은 침묵 속에서 강하게, 자신이 왜 거기 있는지를 설명하는 듯했다. 콘크리트에 굴곡이 없다면, 안도의 건축에는 어딘가 인간적인 모서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21_21 디자인 사이트, 롯폰기 / 하인즈 베커 영상


그런데 이것은 ‘지금의 감정’ 일 뿐이다. 변덕스러운 나는 안도 다다오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매번 다른 감정을 느낀다. 하루는 그가 정말 위대한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고, 다음 날은 왜 이렇게 반복적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그 변화는 내가 MBTI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와도 닮았다. 오늘은 외향적이었다가 내일은 내성적인 것이 인간이지, 언제나 I나 E인 건 로봇이다. 그의 건축도 그렇다. 어떤 날은 콘크리트 벽 사이로 스며드는 빛에 숨이 막힐 정도로 감동하고, 어떤 날은 ‘이젠 좀 다른 걸 해보지 그러셨어요’라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21_21 디자인 사이트, 롯폰기 / 하인즈 베커 영상


21_21 디자인 사이트, 롯폰기 / 하인즈 베커 영상


예술가를 나누는 방식 중 하나는 그가 얼마나 멀리 가느냐만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걷느냐를 기준으로 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안도 다다오처럼 하나의 언어를 완성한 뒤, 그 언어 안에서 평생을 밀고 나간 사람이다. 한 번 찾은 길 위에서 수많은 변주를 시도하며, 깊이를 더해가는 예술가. 후자는 어제 만든 것을 오늘 지겨워하고,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방황하는 사람이다. 나는 후자에 더 끌린다. 창작은 결국 자기 내부의 한계를 마주하는 일이고, 그걸 넘어서기 위해선 계속 떠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라는 별 자체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제자리로 보이지만 계속 자전하고 공전한다. 방랑은 존재의 기본 상태다.


후쿠다케 홀, 도쿄대 / 하인즈 베커 영상


그래서 삶의 새벽은 언제나 약간의 설렘이 있고, 밤은 대부분 피곤함으로 끝나는 법이다. 안도 다다오에 대해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후지사와의 호텔방에서, 그의 건축을 흉내 낸 듯한 회색 벽을 마주하고 눈을 떴을 때, 그 벽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젠 안도 다다오에 대해 좀 써보지 그래?” 그 순간 어쩔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키보드를 열고 그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8 호텔, 후지사와 / 하인즈 베커 사진


나는 아직도 그를 좋아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의 건축이 모두 내게 흡족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는 분명 나를 찾아온 위대한 크리에이터 중 한 명이다. 나의 감정을 흔들었고, 감각을 멈추게 만들었으며, 여행 중에 길을 틀게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이야기할 이유는 충분하다. 좋아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안도 다다오라는 이름은 여전히 내 감각의 깊은 층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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