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일리 Apr 15. 2024

세계에서 제일 집 구하기 힘든 도시에서 집 구하기

2023년 베를린 하우징 마켓을 돌아보며 

나는 22년 12월에 현재 다니는 직장으로부터 정식 오퍼를 받게 되면서 23년 4월 말에 남편과 함께 베를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23년 4월 말에 도착한 직후부터 현재 살고 있는 퍼머넌트 집을 구하기 전인 23년 11월까지는 임시 거처에서 7개월 정도를 거주했다. 


23년 2월에 리모트로 한국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부터 많은 동료들이 '베를린에서 퍼머넌트 집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것은 기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상황에 따라서는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간접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물론 유튜브나 네이버 블로그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사례는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내가 꽤 최근에 겪은 이사 프로세스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베를린에서 집 구하기' 프로젝트와 관련된 인사이트를 아래와 같이 공유한다. 


1. 베를린에서 집을 구하는 것은 통상 이직하는 것보다 어렵다. 베를린에서 제일 유명한 부동산 플랫폼은 Immoscouts 24인데 (한국의 다방+직방), 보통 매물이 올라오면 수 시간 내에 200:1에서 300:1은 쉽게 넘어간다고 보면 된다. 가격이 합리적일수록 더욱 그렇다. 얼마 전에 만난 독일인 친구는 180군데에 지원해서 9군데 뷰잉을 하고 그 중 3군데 합격(?)했다고 한다. 그 친구가 세계 유수의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이게 왜 중요한지는 4번에서 후술) 신원이 확실한 자국민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극강의 난이도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커플의 경우 대략 스무군데에 지원을 해서, 그 중 두 곳에서 뷰잉의 기회를 가졌고, 그 중 한 집으로 확정을 지은 케이스이다. 다시 돌이켜봐도 정말 운이 좋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2. 잡헌팅할 때도 그렇듯이 집을 구할 때도 (Flat hunting) 네트워킹이 중요하다. 회사든 학교든 밋업이든, 어떠한 경로로 알게 된 공동체라 할지라도 내가 이사갈 집을 찾고 있다는 것을 널리 널리 알려야 한다. 쉽게 말해서 Immoscouts에 올라오는 잡들은 링크드인에 올라오는 정식 채용 공고이고, 실제 채용은 링크드인에 올라오기도 전에 알음알음 진행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사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와 연결이 될 수도 있으니 널리 알릴수록 좋다. 우리도 굉장히 우연한 기회에 연이 닿은 분을 통해서 집을 구하게 되었다. 


3. 프로세스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Immoscouts 24에서 지원을 한다 -> 집주인이 내가 마음에 들 경우 뷰잉을 와도 된다는 메세지를 준다 -> 약식 서류를 제출한다 -> 뷰잉을 한다 -> 풀 서류를 제출한다 -> QnA -> 계약서를 왔다갔다 한다 -> 사인을 한다 -> 다시 집을 보면서 확인서를 작성한다 -> 키를 넘겨받는다 -> 입주를 한다. 

이 때, 제일 희박한 확률은 첫 번째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Immoscouts 24에 매물이 올라가기 전에 입소문 단계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한국과 다른 특이한 점들은 다음과 같다. 
4. 회사원이 유리하다. 꾸준한 현금흐름 창출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프리랜서나 아티스트는 선호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프리랜서는 페이가 굉장히 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이 신분이 불안정하다고 생각해서 집을 찾는데 진땀을 뺐다고 한다. 


5. 커플이 유리하다. 막말로 한 명이 잘려도 집세내는데 문제는 없으니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6. Rule of thumb은 월세가 본인 세후 월급의 1/3이 넘지 않는 것. 근데 요새는 월세가 많이 올라서 1/2까지도 봐주는 집주인들도 많단다. 


7. 필요한 서류: 신분증, 전입신고확인서, 최근 3개월치 월급명세서(없으면 계약서), 슈파(독일에서의 신용등급 관련된 증명서), 이전 집주인이 발행한 '지금까지 이 사람 월세 밀린 적 없다'는 확인서, 자기소개서 (나 or 우리는 어떠한 가족이고, 비흡연자이고, 어린이가 있고 없고, 반려동물이 있고 없고, 파티를 좋아하지 않으며, 깔끔하고, 청소를 좋아합니다 등 1장짜리 기술서) 등이 있다. 한국과 비교하면 서류가 더 많이 필요한 편이다. 


8. (베를린 한정) 월세는 10년 전부터 미친듯이 올라가는 추세. 5년 전에 비하면 50% 이상 상승했단다. 따라서 Old contract을 유지하려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사를 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나같아도 현재 900유로를 내면서 잘 살고 있다면, 굳이 신변에 엄청난 변화가 있지 않는 이상 1500유로 이상을 주면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할만한 동인은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떠나게 되거나, 동거인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거나, 가족 구성원이 느는 등의 변화가 생기면 이사가 드물게 일어난다. 


9. 베를린만 해당 될수도 있는데 여기는 집을 전 세입자에게서 물려받을 때 그 사람이 제시하는 특약 조건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흔하다. 예컨대 전 세입자가 중고로 쓰던 가구를 다음 세입자에게 팔고 싶어한다던가, 집을 비울 때 벽을 원상 복귀하는 것을 면제해주는 것 등이 있다 (독일에서는 이사를 갈 때 원래 살던 사람이 벽을 원상복귀 시켜놓고 나가는 것이 통상적이다). 나도 집을 얻기 위해 두 가지 조건을 다 받아들였다.


10. 베를린 사람들은 Altbau라고 해서 구축 아파트를 더 선호한다. 백 년 넘은 집들이 아주 많다. 보통 알트바우는 층고가 높고 바닥은 나무인 경우가 많다. 이와 상대되는 개념이 Neubau인데, 노이바우는 신축 아파트다. 한국의 신축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는 알트바우가 고택처럼 더 아름답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