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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일리 Oct 26. 2023

창업 경험이 없는 입주창업가

나는 어떻게 채용이 되었을까  

한 5년 전부터 한국에서 본격적인 창업 붐이 일기 전까지,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창업'이라는 키워드를 자력으로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집안에도 사업을 하는 사람은 없었고, 평범한 직장에 종사하는 샐러리맨들이 대부분이었다.


창업은 성장 과정이 유별난 사람들, 특히 천재 과의 괴짜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일 것이라 생각했다. 창업이라는 단어조차도 접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빌 게이츠나 안철수쯤 되어야 창업의 ㅊ이라도 꺼낼 수 있는 아우라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스물몇 살 언저리의 나는 그저 내 가치관과 크게 위배되지 않는 적당한 기업체에 들어가서, 나에게 맞는 직무를 선택한 후, 그 도메인에서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 올라가는 것을 개인적인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계획을 퍽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대학생 때부터 가고 싶었던 인더스트리에서 당시 가장 각광받는 대기업에 입사해 7년 가까이 근속하며 관심이 있었던 세일즈, 마케팅, 사업개발, 약간의 앱 기획까지 두루 경험했다. 4-5년 차가 되었을 때 권태는 이미 찾아왔고, 나는 팀을 이동하며 직장에서의 생명선을 최대한 연장해보려 했으나, 그 사이에 먹은 나이만큼 겁도 많아진 나는 결국 MBA라는 그럴싸한 도피처로 향했다.


그로부터 2년 후. MBA도 했으니 당연히 나는 더 멋진 회사에 가고 싶었다.

넷플릭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유수의 테크 기업들이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거리에 아지랑이처럼 보였다. 그들은 MBA 인턴십 같은 제도를 운영하며, '테크 백그라운드가 없어도 입사할 수 있다'는 달콤한 말로 많은 사람들을 꾀였다. 그들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지만 나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졸업 후 다른 친구들이 각자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6개월간 백수로 지냈다. 큰 회사만 고집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자 스폰서십이 필요한 외국인을 받아주는 곳은 큰 조직 외에는 드물었다. 인터뷰를 하자고 해놓고 시작 2분 전에 콜을 캔슬한 회사도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Entrepreneur in Residence' 포지션을 찾고 있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발음도 어렵고 이름도 긴 이 포지션. 6개월 차 프로 백수답게 3초 안에 JD를 스캔하고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지원을 했다. 내 프로필이 안 맞다고 판단이 되면 자연히 회사에서 나를 거절할 터였다. 상대방의 고민까지 끌어안기에는 심적 여유가 없었다. 이때쯤엔 나는 대략 300개 이상의 회사에 지원을 했던 상태였다. (링크드인, 학교 잡보드 등)    

 

지원 후 1주일 뒤 - 인사팀에서 연락이 와 스크리닝 콜을 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 회사의 (공동) 창업자와 2차 면접을 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 3명의 면접관 (창업자, 전략 임원, 마케팅 임원)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 합격했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교육을 받고, 평범한 경력을 쌓아온 내가, 약 한 달간의 짧은 면접 전형 끝에 갑자기 베를린 한복판에 있는 IT 기업의 입주창업가가 된 것이다. 요즘은 한국 신입 공채 시장에도 발에 차이는 이력이 앱 개발 경험 내지는 창업 경험이라는데, 그 어느 관련 험도 없는 나의 입주창업가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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