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하고싶은 말을 끄적일 수 있는 이렇게 좋은 툴이 있는 데, 왜 쉽게 들어와 지지 않는 것일까. 에세이처럼 길게 써야 한다는 부담감. 하나로 추려지는 테마나 메세지가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 그 와중에 성의없는 글로 보는 사람의 시간을 빼앗아선 안된다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자의식 과잉까지. 글은 끝없는 자가복제이고 썼던 내용을 고쳐쓰고 비슷하게 쓰고 비틀어 쓰고 어차피 그런 것일텐데.
그러고보면 뭐든 직진으로 가지 않고 빙빙 둘러가는 것이 내 스타일인가 보다. 요즘엔 mbti 나 심리학 관련 유튜브 채널이 많아서 스스로 어떤 성격인지 아는 데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 전엔 내가 뭘 좋아하는 지 아는 데만도 십수년이 걸렸다. 어릴 때부터 내 갈 길은 이거야! 하고 알 수 있는 축복받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중간에 바꿀 노선이라도 있다면 (선이라 부를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 역시 축복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에게도 분명 성향이란 게 있었을 것이고, 그걸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옴짝달싹 틔우려 하는 시점에 너무 빨리 가지치기가 시작되었고 80n년생 어린이로써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각자의 가정에서 용인되는 것과 용인되지 않는 것. 너무 많은 편집을 거쳐 내가 가진 여러개의 성향중에 몇개는 살아남고 대부분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물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주 오래 내 속에 묻혀있었을 테니까. 성인이 되어 나에게 덮어씌워진 수많은 레이어를 걷어내고 내가 진짜 어떤 일을 할때 희열을 느끼는지를 찾아내는 것은 정말 미로와 같았다. 게 중엔 왜곡되다 못해, 수치심에 의한 반작용으로 정 반대로 꾸며낸 성격도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생기는 혼란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잘 할 것 같은 일을 아무리 선택하면 뭐하나. 그 “내”가 잘못되었는 데. 조금 관심이 있어 뛰어들어 보면 그 일이 아니었다. 어느 부분은 흥미가 있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아니었다. 어떤 직업이든 바깥세상에서 본 것과 내부에서 본 모습은 다를 수 있다. 안밖의 온도차는 원래가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는 채로 뛰어든 건 그 혼란을 수배로 가중시킨다. 결국엔 소거법으로 하나하나 해보고 지워 나가는 수 밖에 없다.
그림을 좋아했지만 전공으로 하지 못했고, 패션을 전공했지만 업계가 나와 맞지 않았다. 소설을 쓰려고 했지만 스토리텔링엔 잼병이었다. 그 외에도 참 잡다하게 이것저것 밥벌이로 많은 일을 했는데 지금 어렴풋이 그 모든 일을 종합해보면 나는 느슨한 소통을 원했던 것 같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일은 나에겐 너무 힘든 일이고 말도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은 좋아하고 세상 어딘가엔 나와 같은 사람도 있을테니, 내가 잘 할수 있는 시각적인 일을 중간에 끼고 그 매개체를 통해 세상 어딘가 내 언어를 알아듣는 사람을 찾아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걸 알아내려고 그렇게 먼길을 돌아야만 했다.
지금은 방법을 목적으로 오해하지 않고(그러니까 어떤 직업을 찾지 않고), 살아있는 기분이 들게 하고 깊은 만족감을 주는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소통하는 것이 멘탈을 덜 무너뜨리면서 동시에 깊은 만족감을 줄 수 있는지. 그런 일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