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 의 육아
infj 는 더 이상의 자료찾기를 그만두고 일단 생각한 걸 밖으로 뱉어야 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고, 만족할만큼 정리가 되진 않았지만 이 주제가 내 관심사에서 벗어나기 전에 써두려고 한다. 예상하시다시피 infj의 육아는 잡생각으로 가득하다. 사소한 투닥거림으로 시작된 생각은 어느새 진정한 사랑이란!? 하는 곳까지 튀어가 있곤 한다.
딸아이랑 놀다보면 온갖 홀대를 다 받지만 늘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가 권력을 쥐게 된다. 아이가 자유롭게 놀이를 주도하는 듯 해도 그 자율성은 내가 허락한 범위 내로 한정되어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그 놀이를 시작할지 말지 언제 끝낼지를 내가 정한다. 그러니 아이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만 자신의 권한을 만끽할 수 있다. 혹여 신나게 놀다가 흥분해서 엄마를 때리거나 좀 심한 말을 하기라도 하면 금새 내 눈치를 본다. 놀이라는 커튼이 살짝 들어올려져 적나라한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아마도 아이는 항상 나의 기색을 살피고 있다.
그런 미묘한 관계를 의식하고 나면 비로소 아이가 뭔가가 맘에 들지 않을 때 떼를 쓰거나 과격한 행동을 한다해도, 그건 진짜 자기가 부모보다 우월하고 대단한 존재라 착각해서가 아니라 목도리도마뱀이 위기시 목도리를 펼치는 것 처럼 자기가 작고 힘이 없다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과장되게 행동 할 수 밖에 없었던거구나 하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런식으로 테스트를 거치면서 서로가 가진 힘의 정도를 가늠하고 조율하는 거였다. 엄마가 어디까지 수용해 줄지, 내가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을지. 아이에겐 매 순간이 필사적이고 그래서 짠내가 난다.
아이를 신체적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부모가 너무나 많은 걸 보면 자식사랑은 어쩌면 인간의 기본소양이 아닌지도 모른다. 보통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게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 생각하는 데 그게 거짓이라면 세상에 절대적인 사랑이란 없는 걸까? 아니다. 있다. 아이가 부모에게 보내는 사랑이 그렇다. 연인 사이에도, 부모의 사랑에도 예외가 있는데 아이의 부모를 향한 사랑엔 예외가 없다. 모든 문화권에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며 그것이 가장 숭고한 사랑인냥 구는 것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제발 그랬으면 하는 바램에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아이한테 부모에게 효도하라고는 해도 사랑하라고 하진 않는 건 그건 말할 필요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엄마사랑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부모가 무조건적으로 자기를 지켜주진 않을 거란걸 아이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스스로를 먹여살릴 능력이 없는 아이의 세상은 늘 불안하고 위태위태하다. 수렵인들은 급박한 상황에서 이동이 힘들땐 아이를 버리고 가기도 했다는데, 아마도 위기상황에서는 유전자를 남기려는 욕구보다 생존이 더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원초적 의미의 사랑이란 그저 생존의 관점에서 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호르몬이 불러일으키는)생존기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사랑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계급을 올려주거나 나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고. 사랑의 민낯은 이렇게 노골적이고 심플하기 때문에 지금껏 그토록 아름다운 수사와 사랑의 위대함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어찌됐든 아이는 매순간 자신의 생존의 문제인냥 나를 대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세상이고 내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비춰주는 거울 일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아이가 날 얼마나 사랑할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괜한 심술을 부리며 자존심을 챙길 때에도, 다른 발신지로부터 수신된 불안을 애먼 아이에게 슬쩍 떠넘길 때도 아이는 나를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사랑한다 해도 아이만할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