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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rfish Aug 03. 2021

예민함은 잘못이 아닙니다

예민함은 내 평생의 화두였다. 그건 말하자면 태어나고 보니 여기가 내 집이 아닌 느낌이다. 낯선 행성에 툭하고 떨어졌는데 살아도 살아도 그 낯선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이 집, 이 가족 외에 다른 가족이 없으니 분명 내 집이 맞는데 나는 이 가족과 전혀 다른 존재이다. 나는 느끼는 데 남들은 그걸 느끼지 못하고 그러니 그냥 내가 이상한 게 되어버리는 억울한 상황. 하지만 나조차 왜 남들과 다른지 알 수가 없고. 차라리 외형적으로 다르다고 놀림을 받았더라면 똑같이 수치스럽더라도 스스로의 내면을 의심하지는 않았을텐데. 예민함에는 아무도 이유를 모르고 어딘가 수상하고 꺼림찍하기만 해서, 겹겹히 쌓인 그 비밀을 파헤치느니 그냥 그 예민한 사람을 싸잡아 비난하고 싶어지는 데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윽박지르고 다그치면 고쳐질 것처럼 언뜻 착각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맨 바닥에 잘 앉지 못한다. 너무 차갑고 딱딱해서 어릴 때부터 늘 방석이나 이불을 깔고 앉았다. 그게 뭐 그리 유해한 일이라고 엄마는 늘 유난을 떤다며 이불을 빼앗아 갔을까. 밥 먹은 밥공기에 물도 마시지 못한다. 쌀밥의 시큼한 냄새가 물과 같이 섞이는 게 역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그 무슨 유해한 일이라고 먹지 못한다고 혼이 나야했을까. 커서도 이러한 습관은 여전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래도 내가 혼이 난건 어린애가 까다롭게 구는 건 건방지다는 게 주된 이유였을 것이다.

 촉각 후각 외에도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기류도 세세하게 다 감지하는 편이라 인원이 많은 회사생활, 인간관계도 내겐 힘들었다. 지금도 나는 과한 소음은 견디지 못하고 촉감식감에도 예민하지만, 나를 바꾸려하기 보단 주변환경을 정교하게 다듬는 편이다. 사람이 많은 모임은 알아서 횟수를 제한하고 두 세명씩 모여 깊은 대화를 나눈다. 예민한게 나쁜 게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잘못된 거라는 걸 알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아마 부모님 중 한 분도 어렸을 땐 나와 같은 입장이었다가 본인이 자식을 키울 땐 그냥 무시해버리는 편한 길을 가신게 아닐까. 기질은 유전이라고 하니까.


 최근엔 HSP (highly sensitive people)이나 초민감자 라는 용어도 생겨 많이 위안이 된다. 나조차도 한 때 고쳐야 할 성격이라 생각한 적이 많았기 때문에 기질은 어쩔 수 없는 거란 말을 들으니 면죄부를 받은 듯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이미 생겨버린 부정적 자아상까지 새로고침 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고쳐야 할 건 예민함이 아니라 그로 인해 생긴 부정적 자아라는 걸 안 것만으로 일단은 만족하려 한다. 스스로를 알아가는 건 어차피 평생에 걸쳐 해야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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