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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y 19. 2023

제 여인들을 소개합니다 (하)

쿨한 그녀들, 핫한 오페라! 뮤즈가 된 10명의 여인들

(지난번 소개한 줄리엣, 메리 스튜어트, 엘리자베스 여왕, 잔 다르크, 마농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여인을 소개합니다. 위의 여인들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로...^^)


https://brunch.co.kr/@jinaohmezzo/227


1. 로지나

로지나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요즘말로 치면 '서브주연'이죠.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의 주인공은 이발사 피가로입니다. 로지나도 여주이긴 하지만,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건 피가로죠. 그녀가 출연하는 또 다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그녀의 존재는 더 작아집니다. 이번 시즌 메인여주는 로지나가 아니라 수잔나가 꿰찼거든요. 수잔나가 바쁘게 활약하며 인기를 끄는 동안 로지나는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토로하며 짠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로지나가 부르는 노래는 오페라 세계에서 엄청나게 인기가 많답니다. <세비야의 이발사> 속 그녀의 아리아 "방금 들린 그 목소리 Una voce poco fa"가 바로 그 예인데요. 소프라노는 F키로, 메조소프라노는 E키로 부르는 등 예나 지금이나 여성 성악가들이 사랑하는 레퍼토리죠. 또 <피가로의 결혼> 속 그녀가 부르는 "사랑을 주세요 Porgi amor" 와 "어디로 갔을까 그 아름다운 시간들은 Dove sono i bei momenti"은 리릭 소프라노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아리아랍니다.


저는 로지나를 창조해 낸 프랑스 작가 보마르셰를 주목했어요. 마르셰는 시계 수리공이었다가 왕실 음악교사를 거쳐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가였고요. 또 국왕의 밀사이기도 했죠. 미국의 독립에 가장 기여한 프랑스인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있답니다. 격변의 세월을 살았던 보마르셰 덕분에 그의 창조물이었던 로지나의 삶도 더불어 파란만장해집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로지나를 짠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1876년 보마르셰의 연극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로지나 역을 맡은 배우


2. 신데렐라

어릴 적에 동화를 읽을 때, '콩쥐 팥쥐'도 읽고, '신데렐라'도 읽었죠. 그런데, 동서양의 각기 다른 동화가 어쩌면 이렇게 플롯이 비슷하지? 하고 궁금했었습니다. 고아나 다름없는 처지에 계모와 의붓언니에게 구박받고. 초자연적인 존재-요정이나 말하는 두꺼비-가 도와줘서 촤라락~! 변신 후 왕자를 만나러 가는 것도 그렇고요. 시간에 쫓겨 유리구두 혹은 꽃신이 벗겨지는 것도 그렇죠?


그런데요, 이런 신데렐라 류의 이야기가 전 세계에 수백 개의 버전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아시나요? 그럼 당연히 다양한 버전의 예술작품도 존재하겠죠? 이탈리아 벨칸토 버전의 오페라, <신데렐라(La cenerentola-로시니)> 와 프랑스 스타일의 오페라 <신데렐라(Cendrillon-마스네)>처럼 누가 작곡했느냐, 또는 어느 시대에 작곡되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색깔을 보여준답니다.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로시니 버전의 '신데렐라'는 왕자가 찾아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소극적인 신데렐라가 아닌, 스스로 왕자를 선택하고, 또 그에게 미션을 줘서 자신을 찾게 하는 자기 주도적인 신데렐라랍니다. 만나보실래요?


존 애버렛 밀레이, '신데렐라'


3. 로렐라이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이 노래 아신다면, 저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오셨나 봐요. 여러분이 머릿속에 떠올리시는 그 멜로디는 프리드리히 질허라는 독일 작곡가가 쓴 노래인데요. 정작 이 노래는 마치 독일 민요인 것처럼 전해오죠? 로렐라이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 전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실 19세기 초에 등장한 엄연한 창작물이랍니다. 이 캐릭터는 생각보다 젊어요^^ 저는 로렐라이의 탄생과 변주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앞서 소개한 '로렐라이' 노래는 하이네의 시에 질허가 곡을 붙였는데요. 이 시에 곡을 붙인 작곡가는 질허 한 명이 아니었어요. 그중에서 19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였던 두 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 명은 클라라 슈만이고, 또 한 명은 프란츠 리스트죠. 피아노 건반 위를 군림했던 여왕과 왕이 같은 시를 가지고 작곡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이야기도 책에 담겨 있습니다.


에밀 크루파 크루핀스키, '로렐라이' (1899)


4. 마르가레테 & 그레첸

괴테의 '파우스트'는 나오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명작을 모티브로 많은 예술작품이 쏟아진 건 당연했고요. 그중에는 18살이었던 슈베르트가 작곡한 "물레 감는 그레첸(Gretchen am Spinnrade)"도 있었죠. 그런데 슈베르트와 겨우 3개월 나이차밖에 나지 않았던 동시대 작곡가 카를 뢰베도 훗날 같은 텍스트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곡을 작곡했답니다. 당대 슈베르트는 무명에 가난에 시달리다가 요절했지만, 뢰베는 작곡가이자 스스로 노래도 하는 만능 음악인으로 상당한 명성을 얻었지요. 두 사람을 보면서 인생은 참... 앞서 간다고 자만할 것도 아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낙담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괴테는 '파우스트' 안에서 '마르가레테'라는 이름과 '그레첸'이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어요. '마르가레테'는 본명이고 '그레첸'은 애칭인데요. 전자는 이성적이고 신앙에 헌신하는 여인이고, 후자는 사랑에 빠져 물불 못 가리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 두 여인이 모두 한 사람의 양면성일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공감이 되지 않나요? 그렇다면 괴테는 왜 파우스트의 연인을 이렇게 이중성을 가진 여인으로 그렸을까요? 젊은 날 괴테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목격한 어떤 여인의 처형이 그 계기가 됐을 거라 사료됩니다. 법률가 괴테가 작가 괴테로 바뀌는 데 영향을 줬던 그 사건, 같이 알아보실까요?


아리 셰퍼, 파우스트와 마르가레테


5. 미미 & 무제타 

넷플릭스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 '브리저튼'을 보면 귀족 혹은 부르주아 계급의 여인들이 좋은 혼처를 찾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묘사하고 있죠. 쓸만한 신붓감이 되기 위해 쌓는 교양, 신부 수업, 평판 관리... 등등 깨알같이 그려냅니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서 소외된, 가령, 첫째 아들 앤소니가 사랑했던 오페라 가수 시에나의 삶은요? 그저 배경으로 등장하는 시장의 여인들, 하녀들...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브리저튼'에서 오페라가수 시에나와 브리저튼 자작, 앤소니


<라 보엠>의 두 여인, 미미와 무제타는 19세기에 부르주아가 아니었던 여인들의 모습입니다. 즉, 집안의 힘으로 좋은 혼처를 찾을 수 없는, 혼자의 힘으로 삶을 일구어야 했던 여인들의 이야기죠. 미미는 노동자, 무제타는 사교계 입성을 꿈꾸는 가수죠.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는 그 당시 노동자처럼, 미미도 빈곤 속에서 폐결핵으로 죽었어요. 당시 가난한 이들의 삶을 빼앗았던 대표적인 질병이 바로 이 폐결핵이었습니다. 무제타의 경우는요? 그녀처럼 미모와 매력을 타고났다면, 돈 많은 누군가의 정부가 되어 사교계에 입성을 할 수 있는 루트가 있었죠. 18세기에는 귀족이 아니면 아예 입성이 불가능했던 그 사회를, 그래도 19세기에는 파트너를 잘 둘 경우엔 가능했거든요. 적당한 스폰서를 구하지 못하면 비참한 노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필사적이었고요.

 

이런 시대 배경을 알고 나서 <라 보엠>을 다시 보면, 두 여인이 새롭게 보일 거예요. 똑같은 원작을 가지고 푸치니와 레온카발로가 싸웠다는 스캔들은 열외로 하더라도요. 물론, 이 위대한 작곡가들의 싸움 이야기도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답니다.                                         


앙리 이브느퓔, 파리의 카페 다르쿠르


"오페라의 여인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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