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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으나 스스로 발이 묶여 정체되어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비현실적인 흉몽을 계속 꾸고 있는 듯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연발탄 터지듯 매일
속보로 터져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브런치로부터 친절한 주의를 받고 나서야 반성문 쓰듯 글을
올리곤 했는데, 최근엔 꽤 오래 브런치에 들어와보지도 못했다. 2024년을 꼴딱 넘기기 전에 마지막
글이라도 올리지 않으면 무릎을 꿇는 심정일 것 같다. 투머치토크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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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그날은 밤 10시 25분 윤석열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무장 군인들을 동원 국회에 난입해 벌인 내란 쿠데타를 방송으로 지켜본 국민, 그리고 직접 국회로 달려갔던 국민들에게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서울의 밤’ 그날이었다. 극우 유튜브에 중독 세뇌된 판단력 마비 상태의 20퍼센트 국민을 제외하고 모두가 5.18 트라우마로 밤을 새야 했던 그날... 21세기 한복판에서 20세기 살인마의 망령이 씌운 용산 망상병자의 대국민 테러 행위에 대해, 성인 김대건 신부의 4대손인 마태오 신부는 ‘지랄발광’이라고 성탄 미사에서 일갈했다.
시민 주도로 2년 반 동안 계속해왔던 수백 명에서 수천 명 규모의 ‘윤석열 퇴진’ ‘윤석열 탄핵’ 집회는(기울어진 운동장, 우로 편향된 언론들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12월 7일부터 참여자 수십만의 대규모 집회로 커졌고, 거리로 몰려나온 MZ세대의 응원봉 집회는 또 하나의 한국 문화 ‘K-Protest’로 전 세계에 신선한 놀라움을 주고 있다. 비상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오직 여섯 시간, 계엄령 무효화 투표를 위해 국회 담장을 넘어간 의원들과 담장을 둘러싸고 국회를 지킨 시민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 탄력성에 대한 해외의 찬탄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 내란 잔당들의 버티기 속 내란수괴 복귀 시도의 분명한 징후들은 “왜 그 일당들이 물러나고 처벌받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의아함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렇게 대한민국은 선진 민주주의와 친일독재 망령이 공존하는 신기한 나라가 되었다.
윤석열은 직무 정지 상태지만, 사태가 어떻게 정리될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응원봉 집회’는 매일 이어지고 있다. ‘응원봉 혁명’이라는 수사로 20대가 집회의 중심이 되었다는 찬사에 절반은 인정하면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응원봉으로 모인 전 세대의 연대’라 말하고 싶다. 지난 2년 반 동안 세종로에서 매주 토요일 진행된 ‘윤석열 퇴진, 탄핵 집회’에 2, 30대가 거의 없어 안타까웠는데, 10대에서 70대까지 모든 세대가 연대해 장엄한 교향곡과 같은 하나의 구호를 외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순간 순간들이 소중하다. 지금은 세대 불문 아이돌 응원봉이 아니라도 각자 준비한 조명 스틱을 들고 집회 현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10대도 20대도 30대도 아닌 BTS 팬으로서 나는 집에만 모셔두었던 아미밤을 들고 나간다. 탄이들의 공연보다 몇 배 멋진, 수십만 소우주들이 만들어내는 빛의 하모니에 함께하기 위해서.
집회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촛불문화제 마지막 순서 후 다 함께 거리 행진을 하는 시간이다.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의 ‘함께 걷기’가 위대한 저항과 항거의 행위가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행진을 하다 보면 마법처럼 대열이 점점 길어진다. 촛불전구대신 등장한 응원봉의 보라색, 하얀색, 분홍색, 연두색, 파란색 불빛이 은하수처럼 펼쳐진 행렬이 반짝이며 출렁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걸음에 맞춘 힘찬 구호와 노래가 하나의 염원이 되어 세상에 울려퍼진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두 손 높이 들어 박수를 보내고, 자동차를 타고 가던 시민들이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어준다.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아가는 동안 연대는 확장된다.
연대하는 이들의 함께 걸음은 가야 할 대륙을 향한 주저함 없는 진군이다. 거기에는 흔들리지 않는, 타협이 없는 정신성이 있다.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함께 걸어갈 때 생겨나는, 허물어진 세계를 복구하는 정신성이다. 그것은 포기 없이 반복되며 웅대한 서사를 만든다. 내란의 괴수가 만들어내려 했던 잔혹 쿠데타의 서사가 아니라, 어둠을 밀어내고 추악한 것을 드러내 ‘다시 만난 세계’를 구현할 아름답고 웅장한 서사다. 그 서사의 주인공들이 동원하는 색색으로 빛나는 응원봉과 각자의 개성 있는 조명 기구, 선결제 커피, 현장으로 배달되는 떡과 김밥, 빵 터지는 유쾌한 문구의 피켓과 깃발 들이 감동의 디테일이 된다.
박근혜가 탄핵된 다음해 쿠바 여행을 했다. 공산주의 국가의 나이 든 쿠바노가 나에게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나에겐 없던 국뽕이 처음 차오르게 했던 말.
“한국의 민주주의는 최고야.”
그는 광화문 일대와 세종대로를 가득 메웠던 촛불의 물결을 얘기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최고야.” 우리는 8년 전 위대한 촛불의 서사를 반드시 또 완성해야 한다. 국뽕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연하게 누려야 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고서.
오늘도 속보는 계속 이어졌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회 탄핵’보다 훨씬 큰 울트라 급 충격적인 뉴스가 또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너무 과장했다고 비웃었을 내란수괴의 명령. “총을 쏴서라도 (국회 본회의장) 문 부숴!” “계엄 두 번, 세 번 하면 돼!” 그가 도끼로 부수고라도 회의장에 들어가 자신의 표적인 정치인들을 체포해 지하 벙커로 끌고 가라고 했을 때, 체포조가 가지고 간 도구는 송곳, 포승줄, 케이블타이, 야구방망이, 망치 등 끔찍한 인권 말살의 물건들이었다. 발이 부르터도, 다리에 쥐가 나도, 용산의 괴수가 받아야 할 벌을 반드시 받을 때까지 나는 도심의 대로를 걸을 것이다. 연대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어쩜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저 별들도 불빛도 아닌
우리들 때문일 거야.
......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밤이 더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BTS의 〈소우주〉 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