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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희 May 24. 2018

신들이 사랑한 나라에서

파도는 한 무리 들꽃이다. 끊임없이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진다. 부단한 생명력에 도무지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에셔의 손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이다.



사람들이 삶의 진리를 암시하고 있는 듯한 세상을 배경으로, 계속해서 그 오묘하고 명확한 암시를 찾고, 때로는 세상을 문장 속에 억지로 끼워 맞춰가며 살아간다.

정말 신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일까 아니면 대답할 말이 없으면 일단 그럴듯한 단어 하나를 던져 놓는다 그러면 그 단어를 들은 상대는 멋대로 상상하기 시작하고 이내 그것을 마음에 들어한다 와 같은 것일까



도깨비라는 드라마 속에서 절대신으로 등장했던 남자의 대사가 기억난다. 왜 나에게 이런 운명을 주었을까 원망하듯 질문하는 자들에게 등장해서

지난 선택들이 모두 본인 스스로가 한 선택이었음을 상기시켜주며,

"나는 질문를 하는 자이다. 운명은 내가 던진 질문이며 대답은 그대들이."

라고 말하고는 사라진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피해 도망다녔지만 결국은 그런 운명을 살게 된 남자 오이디푸스, 모든 신탁이 실현되고 말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눈을 찔러 절명한 그의 마지막 대사는

"내 눈을 찌른 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이었소"



어떻게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 속에 참담한 그는 내 눈을 찌른 건 신이 아닌 나였다라고 천명하며 그래도 내 운명의 주인은 나임을 선포한다.

늘 신들과 함께였지만 그 와중에 인간 이성의 가치를 발견해 낸 아주 그리스다운 절묘한 이야기와 인물.




신이나 운명같은 것들은 내가 오래도록 해왔던 질문이다. 그리스인들은 나에게 자주 묻는다. 신을 믿느냐고. 나는 믿는다고 대답한다. 그럼 종교가 뭐니 라고 또 다시 묻는다. 그럼 나는 종교는 없지만 신은 믿어 나는 신이 우주의 기운 혹은 바다처럼 존재한다고 생각해. 신이 성경 같은 문장으로 나에게 말을 건다는 건 어쩐지 이상해

이런 내 생각은 어쩌면 우상을 숭배하는 게 아니라

우상을 산산히 조각내어 그 잔해를 추종중이라는 어떤 이의 분석에 딱 맞는 사례일지도




기운이 아닌 파워 혹은 스트렝쓰 라고 말해야 할 때 생기는 그 간격 때문인지 저 말을 할때는 나도  이상하게 말한 것 같은 느낌에 아차하고 상대도 잘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내 앞에 놓여진 문제들이 모두 소소하게 느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박완서님의 소설에는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지구는, 목성은, 태양은, 은하계는, 우주는...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내 아들의 죽음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더라 하며 때때로 주문을 듯 우주의 크기를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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