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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희 Jul 03. 2018

세상의 중심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다, 델피

신이 맡겨놓은 뜻, 신탁(神託)/델피(DELPHI)

그리스 신화를 읽다보면, 아폴로 신탁 혹은 델포이 신탁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아폴로 신탁은 실제로 존재했다. 신화가 아니라 역사였다.

아폴로의 신탁이 내려지던 곳, 그곳이 바로 그리스의 델피ΔΕΛΦΟΙ 되시겠다.

왼쪽 위에 델피, 아테네에서 차로 3시간 거리


지도에서 보듯, 델피는 그리스 중부지방에 실제로 존재하는 지역이며 이곳이 바로 아폴로의 신탁이 내려지던 현장이다. 델피는 그리스를 대표하는 산맥중에 하나인 파르나소스 산맥 해발 660m에 위치하며, 델피에서 차로 십분거리에는 태양의 후예를 촬영한 마을로 유명한 아라호바 마을이 있다.


아라호바 마을 전경, 해발 1,000m에 위치한 마을
봄이 되면 파르나서스 산맥에 가득 피는 로뎀
아라호바 마을
태양의 후예를 찍은 마을로도 유명한 아라호바 마을

아라호바 마을은 해발 1,000m에 위치한 마을로, 공기가 좋고 마을이 예쁘기 때문에 사람들이 델피를 가기 전 꼭 들르는 마을이다. 우리한테는 태양의 후예 마을이라고 설명하면 가장 잘 알아듣지만, 사실은 그리스 신화 속 아라크네라는 소녀가 살았던 마을이다.

아라크네는 베를 잘 짜는 것으로 유명한 소녀로, 나중에는 "베짜는 기술로는 내가 아테나 여신보다 낫다!" 라는 건방진 말을 하고다니다가, 이 말을 전해 들은 아테나 여신과 베짜기 배틀을 벌이게 되는데, 이 배틀에서 진짜 아라크네가 이겨버리는 바람에 더 화가 난 아테나가 아라크네를 평생 베를 짜며 사는 거미로 변신시켜 버렸다는 그 신화 속 주인공. (그리고 태양의 후예 주제곡을 거미가 부름....소름...닭살.....)


오늘의 주인공은 아라호바 마을이 아니라 바로 델피ΔΕΛΦΟΙ  

델피를 자꾸 델포이라고 읽는 이유는, 그리스어를 보면 알 수 있다.


즉 그리스어로는 <델피>라고 읽는 게 맞는 발음이나, 영어권 사람들은 -오이하고 읽기 때문에,

델피가 자꾸 델포이라고 잘못 읽히는 것이다.

산토리니에서 파란 지붕이 있는 그 유명한 마을 이름이 이아마을인데, 이아마을은

OIA 라고 쓴다. 이것 또한 OI를 같이 -이 하고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이아마을이라고 하는 것이다.

산토리니 이아OIA마을, 오이아마을 아니에염



델피라는 지명에 관해서는 3가지 설이 있다. 


1. 본래 이 곳은 가이아의 자궁이었고, 가이아는 남자 없이 낳은 큰 뱀 피톤에게 자신의 자궁을 지킬 것을 명하며, 지켜주는 대신 예언의 능력을 선물로 주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가이아의 자궁을 지키는 가이아의 아들, 커다란 뱀 피톤의 신탁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어로 델피스(δελφύς)는 자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곳이 자궁이라는 뜻의 델피가 되었다는 설.



 2. 다만 가이아는 피톤에게 예언의 능력과 함께 예언도 하나 주었는데, 조만간 태어날 제우스의 아들에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거였다. 정말 얼마 뒤에 제우스는 아폴로, 아르테미스 쌍둥이 남매를 얻었고, 아폴로에게 예언의 능력을 선물로 주었다. 예언의 땅을 이미 피톤이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았던 아폴로는 활을 들고 피톤에게로 갔다. 태어난 지 사흘만에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등장한 아폴로를 보고 방심한 피톤은 아폴로의 화살 한 방에 그 자리에서 죽게 되고, (아폴로는 궁술의 신이기도) 아폴로는 그 자리에서 이 예언의 땅은 이제 아폴로의 예언이 내려질 땅임을 선포한다. 아폴로는 대지의 어머니인 가이아의 아들을 죽인 게 미안하여, 자신의 신전을 지키는여사제의 이름을  피톤의 이름을 따 피티아 여사제라고 불렀고, 4년에 한 번씩 피티아 제전을 열어 죽은 피톤을 위로했다. 이 때, 아폴로가 에게해의 델로스 섬에서 돌고래를 타고 델피로 왔다고 하는데, 그래서 돌고래의 Dolphin 에서 델피가 되었다는 게 두번째 설.


델피 성소에 있는 배꼽돌(옴팔로스). 사람들은 배꼽돌을 조각해 바치기도 했고, 델피에는 수 많은 배꼽돌이 있었다.


3. 델피는 자궁이라는 뜻 말고도 배꼽이라는 뜻도 가지는데, 사람들이 지구가 동그란 구가 아니라 평평한 원판이라고 믿었던 시절, 제우스는 이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가가 궁금하여 자신의 새인 독수리를 세상의 동서양끝에서 동시에 한마리씩 날려보냈다. 세상의 양 끝에서 출발한 독수리 두마리는 세상의 중앙을 향해 날아오다가 바로 이곳, 델피에서 만났다고 하는데 그 때 제우스가 이곳이 지구의 배꼽, 세상의 중심이다 라는 뜻으로 배꼽돌을 떨어뜨려 여기가 세상의 배꼽임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은 배꼽, 델피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는 게 세번째 설.


지구의 배꼽이 있는 그리스는 당연히 세상의 중심에 있는 땅이 되고, 세상의 중심인 그리스 앞을 흐르는 바다도 세상의 중심을 흐르는 바다가 된다. 그래서 그리스 앞을 흐르는 바다의 이름은 지중해地中海, 영어로도 Mediterranean. 가운데를 뜻하는 medi 와 땅을 뜻하는 terranean.



아마 모든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신화는 본래 이곳의 토착 신앙이었던 가이아 신앙, 후일 델로스 섬에서 들어온 아폴로 신앙이 이곳에 자리잡게 된 역사를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해석이 가장 인정 받는다.













쓰다보니 잡설이 길었다.(하고시푼 얘기 짱많은 (구)그리스가이드>_<)

어쨌든간에 델피는 이렇게 아폴로의 신탁이 내려지던 실제 장소로 지금도 신탁이 내려지던 신전과, 신탁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바쳤던 보물, 보물들을 보관하기 위한 보물 창고들이 남아 있다.


델피 성소를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여기가 바로 델피 성소의 모습이다.

중앙에 부서진 기둥 5개가 남아있는 신전터가 보이는데 저기가 아폴로 신탁이 내려지던 아폴로 신전이다.

이 곳에서 처음 신탁이 내려진 때는 기원전 8세기로, 그때는 아폴로의 신탁이 아닌 가이아의 신탁이 내려졌다. 그 후, 아폴로의 신앙이 이 마을에 들어오게 되면서 가이아의 신탁이 아닌 아폴로의 신탁이 내려지기 시작하는데, 이 전에 여성신인 가이아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사제로 여사제가 오랫동안 있어왔기 때문에, 남성신인 아폴로의 신앙이 자리잡은 뒤에도 여사제의 전통이 계속 이어져서 아폴로의 목소리를 여사제의 목소리로 전한다. 


아폴로의 신탁을 듣고, 전달하던 피티아 여사제. 상상도


델피 근처 마을에 거주하는 귀족 가문의 아리따운 처녀들을 골라 피티아 여사제로 앉혔다. 피티아는 땅의 갈라진 틈으로 올라오는 신비로운 흰 연기위에 고정 된 삼발이솥에 앉아, 올라오는 흰 연기를 마시고 생 월계수 잎을 씹어 먹으며 아폴로의 목소리를 전했다. 흰 연기와 생월계수잎에 취한 피티아는 황홀경의 상태로 접신하여 신의 목소리를 전했고, 이 말은 신관이 여섯글자로 요약하여 신탁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피티아가 전하는 말은 어지럽고 오묘했고, 이를 다시 신관이 여섯글자로 요약해서 가져다주는게 신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델피의 신탁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신관은 그리스의 유명한 시인들로 이루어졌으며, *헤로도토스도 델피의 신관으로 일한 적이 있다.


헤로도토스 두상

*헤로도토스

서양 문화에서 그는 "역사학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그는 체계적으로 사료를 수집하고 어느 정도 사료의 정확성을 검증하였으며 잘 짜여지면서도 생생한 줄거리에 따라 사료를 배치한 최초의 역사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저작 《역사》를 통해서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




델피의 신탁이 어렵고 모호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리스의 현인들은 델피로 와서 사람들의 신탁 이해를 돕기 위한 격언을 델피 신전 기둥에 새겨 놓는다. 총 7가지 격언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말이,

"너 자신을 알라"

이는 밀레토스 지방 최초의 철학자라고 알려진 탈레스가 델피 신전에 새겨놓은 격언으로, 후일 소크라테스가 인용한 말이다. 그러니까 저 말의 원주인은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탈레스이다.

신탁이 아무리 용해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알지 못하면, 신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었으리라.



기원전 6세기, 델피의 전성기



위 그림은 기원 전 6세기 델피의 전성기라고 불리던 시기의 복원도이다.

중앙에 가장 큰 신전이 신탁이 내려지던 아폴로 신전이고, 그 아래로 수 많은 신전 형태의 건물들은 신전이 아니라 보물 창고들이며, 보물 창고에 들어가지 못한 수많은 보물들이 세워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델피는 그리스에서 유일하게 어느 도시 국가에게도 속하지 않은 유일한 땅이었다. 델피를 범하는 도시 국가가 있으면, 다른 도시 국가들이 힘을 합쳐 델피를 탈환 한 뒤 다시 아폴로에게 바치는 의식을 했을 정도이다.

델피에서 신탁이 내려지는 건 일년에 단 몇 차례 뿐이었지만, 델피 땅은 일년 내내 보물을 들고오는 사람들로 붐볐다.



아폴로 신전을 감싸던 벽 Delphi wall



아폴로 신전 아래 쌓여진 벽으로 사람들은 이 벽을 따라 줄을 서서 신탁 차례를 기다렸다. 돌들을 네모 반듯하게 깎지 않고, 최대한 자연석 모양을 그대로 살려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쌓으면 구조가 아주 견고해져서 지진이나 충격에 잘 무너지지 않고, 이 벽은 기원 전 6세기 때 쌓은 벽으로 약 2600년 가량을 이렇게 버티고 있다.

델피 성소에서 가장 잘 남아있는 유적 중 하나다. 본래는 이것보다 약 2m 더 높아서, 신탁을 듣기 위해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 신전 안에서 신탁이 내려지는 모습을 볼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저 벽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이렇게 빼곡하게 새겨진 그리스어들을 볼 수 있는데,

이건 그리스에서 해방 된 노예들의 이름이다. 델피는 그리스 어떤 도시 국가에게도 속하지 않은, 오로지 신에게만 속한 땅이었기 때문에 그리스에서 노예를 해방시킬 때는, 이곳에 주인과 노예가 함께와서 노예의 이름을 새기고 노예를 풀어주었다.


이제 이 사람은 나의 것이 아니라 신의 것입니다. 당신에게 돌려드립니다.



라는 뜻의 의식이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델피를 어느정도로 신성하고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델피는 그리스가 패할 것이라고 모두가 확신했던 페르시아 전투(페르시아 vs 그리스)에서, 유일하게 그리스의 승리를 예언한 사건으로 본격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그리스 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이 곳의 신탁을 듣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왕들이 국가의 대소사를 델피의 신탁으로 결정하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큰 전쟁을 치르기 전에는 반드시 델피의 신탁을 듣는게 관행이 되었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치 권력도 델피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피티아 여사제를 잡아끄는 알렉산더 대왕, 연기나는 삼발이 솥, 활을 든 아폴로 신상을 통해 이 곳이 델피임을 알 수 있다.


유명한 일화로, 이런 것들을 미신이라고 믿지 않았던 알렉산더 대왕은 주변에서 하도 델피 신탁을 들어라들어라 하니까 억지로 델피에 신탁을 들으러 갔는데, 하필 그날 여사제가 불길한 날이라고 신전에서 나오질 않았다. 이에 알렉산더는 신전으로 들어가 여사제의 손을 붙잡고 강제로 끌고 나왔고, 이에 여사제는


당신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겁니다.

라고 말했다. 이 대답을 들은 알렉산더 대왕은,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신탁이다.


이렇게, 왕들이 나라의 일을 결정하기 전에 델피 신탁을 들었을 정도로 당대 델피에서 내려지는 신탁의 영향력은 어마어마 했으며, 피티아 여사제는 당대 가장 힘있는 여성이었다 라는 평가를 받는다.




델피 성소에서 발견 된 이집트 소년.

그리스 도시 국가들 뿐만아니라 이집트에서도 델피 신탁을 듣기 위해 그리스땅으로 왔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델피의 세계적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의 역사를 흔들만큼 강했던 이 신탁의 정체는 뭐였을까?

정말 신의 목소리가 들렸던 걸까?



델피에 관한 고대 기록을 잘 남겨놓은 남자로 기원 전 1세기의 기록가 Diodorus Siculus(이하 시큘러스)의 기록을 통해, 신탁의 시작을 추측해 볼 수있다. 시큘러스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 전 8세기, 파르나서스 산맥에 염소를 몰고 다니던 Coretas(이하 코레타스) 라는 인물에 관한 기록. 그는 염소를 몰고 파르나서스 산맥을 돌아다니다가 염소가 땅 위에 어떤 틈 주변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발견, 그 틈으로 다가가보았다. 그가 다가가자 틈에서는 이상한 연기가 나오고 있었고, 염소는 그 틈에 고개를 쳐박고 연기를 맡고 있었다. 염소는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고, 이를 놀랍게 여긴 코레타스는 본인도 그 틈에 고개를 쳐박고 연기를 맡아 보았다. 그랬더니, 그의 몸이 신성으로 가득차는 것을 느끼며 미래와, 현재, 과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 경험을 주변의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고 사람들은 이곳에 몰려들어 광기, 흥분, 착란 상태를 경험했으며, 간혹 이 틈으로 들어가 죽은 사람도 있었다. 사망자가 종종 발생하자 사람들은 이 위에 성소를 세운 뒤 여사제를 앉혀 대신 신탁을 듣기 시작했고, 당시에는 이 연기가 대지의 어머니 가이아의 목소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여사제가 목소리를 대신했다.  


이것이 언제부터, 왜, 하필 이곳에서 신탁이 내려지기 시작했는지를 설명하는 오래 된 기록이다.


시빌의 바위, 가이아의 목소리를 전달한 첫 여사제의 이름이 시빌.


델피 성소에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때 가이아의 연기를 대신 맡기 위해 처음으로 뽑힌 여사제의 이름이 시빌sybyl 이었고, 그 여사제의 이름을 따서 그 뒤로는 가이아의 신탁을 말하는 여사제들을 모두 시빌이라고 불렀다. 연기가 솟아오르는 틈 위에 저렇게 바위를 두고 저 바위위에 시빌이 앉아 연기를 맡고 신탁을 말했다. 즉, 델피에서 첫 신탁이 내려진 장소다.

이제 슬슬 감이 올거다. 신탁의 비밀은 바로 저 흰 연기다.


아폴로 신전

아폴로 신전의 단면도 이다.

아폴로 신전의 왼쪽 뒷편 지하에는 성인 두명 정도가 들어갈 만한 작은 직사각형의 지하 공간이 있었고,

위 사진에서 보듯, 그 지하 공간으로 땅의 연기가 솟는다. 즉 저 곳이 여사제가 앉아 연기를 마시고 신탁을 말하던 곳이다.  저 직사각형의 공간을 ADYTON(아디똔, DO NOT ENTER라는 뜻) 라고 부른다.


아디똔 아래 놓여지는 돌, 왼쪽 삼각형으로 뚫린 구멍에 삼발이 솥을 고정시킨다. 세워놓는게 아니라 눕혀놔야 된다.



아디똔에 이런 돌을 눕혀놓고, 이 위에 삼발이 솥을 고정시킨다. 삼발이 솥 위에 피티아가 앉아 올라오는 흰 연기를 마시며 신탁을 말한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연기, 한 손에는 월계수 잎, 걸터 앉은 삼발이 솥


아디똔 위에 고정되었던 삼발이 솥, 델피 박물관 소장.



삼발이 솥 실제로는 겁나 크다. 이 위에 걸터 앉는 건 거의 불가능한 크기인데다가 솥의 언저리를 둘러싸고 크고 화려한 장식들이 달렸었기 때문에, 사실은 이 안에 아예 퐁당 들어가서 신탁을 말했다. (귀엽ㅠ0ㅠ)




흰 연기가 최초로 발견 된 비슷한 시기에 이런 기록도 남아있다.


무언가 달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데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았고, 바닷물은 꼭 끓는 듯 했다. 어부들은 죽거나 죽어가는 생선들만 낚아 올렸고, 동물들은 불안한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쥐와 뱀들이 마을에서 도망쳤고, 개들은 목줄을 끊고 달아나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안가 대지진이 있었다. 저것들은 큰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관찰되는 현상들이다.

대지진 이후, 갈라진 틈 사이로 연기가 솟기 시작했다! 땅 속에 있던 엄청난 가스들이 분출되면서 대지진이 일어났고, 지진 이후에도 계속 솟아오르던 가스는 사람들에게는 신의 목소리가 되었다.


델피 성소 밑 지형도


이렇게!

가스가 솟아오르던 틈 위에 아디똔을 중심으로 아폴로 신전이 지어졌다. 저 틈을 지금은 Delphi Fault 라고 부른다. 땅에서 갑자기 연기가 막 솟는데, 그 연기를 마시니까 다같이 정신이 아득하고 멀어지니, 고대 사람들은 이를 신의 메세지라고 여겼던 것!



실제로 나중에 분석한 결과, 이 땅에서 솟던 흰 연기에서는 메탄, 에탄올, 프로판, 부탄, 탄화수소 등의 성분의 검출되는데, 이들은 들이마시면 뇌에 있는 산소를 빼앗아 마취, 질식 등을 일으키며 많이 들이마시면 신경계를 마비시킨다. 특히 에탄올은 초기 마취학에서 널리 쓰였던 성분. 게다가 생월계수잎도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작용을 한다. 신경을 마취하는 가스를 계속 들이마시고, 생월계수잎까지 오도독오도독 씹어먹으니 여사제가 취할수 밖에...또한 이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고대의 기록들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피티아 여사제는 성난 바다에 떠있는 배와 같았다.
소리를 지르고 미쳐서 벽으로 몸을 던지고 그 안에 있던 사제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사제들은 도망쳤고, 나중에 돌아왔을 때 피티아는 의식을 잃고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숨을 거두었다.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저자,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작가)


당시 피티아 사제의 죽음의 과정이, 마취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죽음의 과정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좀 냉정히 말하면, 세계 역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델피 신탁이 사실은 마취 가스에 취한 여자의 헛소리 였다는 얘기가 되는데, 아니 그렇다면 이 신탁이 다 틀려야 되는데 델피 신탁은 적중률이 높았다.

아무리 흰 연기와 거기에 취한 여사제의 모습이 신비롭다 한들, 계속 헛소리만 했다면 델피 성소는 이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적 사건들을 척척 예언하고 맞춰대니 이렇게 유명세를 탄 것이다.



어떻게 맞췄을까?




1. 신탁을 들으러 온 사람들은, 그들의 마을과 나라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소상히 고했고, 피티아는 가만히 한 자리에 앉아있어도 사람들이 와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자세히 말해주니까, 사실 앉아서 세계의 정세를 다 읽을 수 있었다. 당대의 CIA, FBI 랄까?


 ex) 지금 우리나라가 배 삼백척과, 기병 오천명이 있습니다. 아테네가 민주주의 정부 성공시키고, 이번에 배를 이백천 새로 건조했다던데, 우리가 아테네랑 전쟁하면 승산이 있을까요??


이런 얘기를 하루 종일, 몇 년씩 듣고 앉아있으면 웬만한 모지리가 아니고서야 대충 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



2. 고대 그리스인들을 그렇게 순진하지 않았다.

처음에야 믿었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그들도 이 흰 연기가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유력한 도시 국가들의 정치 세력이 많이 개입해서 신탁을 사주, 조정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아테네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영화 300 2편 주인공)는 이참에 해군을 창설해야 한다는 본인의 주장을 아테네인들이 들어주지 않자, 그럼 델피 신탁을 듣고 결정합시다!

라고 말해놓고는 몰래 델피에 뇌물을 보내고, 아테네 사절들 오면 해군 창설하라고 말해쥬떼염

뒤에서 다 조종해놨다. 이 사주를 받은 피티아 여사제는 신탁을 들으러 온 아테네 인들에게


"나무성 안에 갇혀 전쟁을 준비하면 승리할 것"


이라는 예언을 척 내놓는다. 여기서 나무성이란 함선을 뜻한다.

아테네는 영토의 80%라 돌덩어리라 최고급 대리석으로 성을 지을 수 있었는데 왜 나무 따위로 지으라는겨?

아테네 인들이 신탁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자 테미스토클레스 등장 → 나무성은 함선을 뜻하는거요!

그래서 아테네인들은 해군을 창설한다. 이 때 창설한 해군으로 한 전쟁이 살라미스 해전!!!

역사를 바꾼 세계 10대 해전 중 하나다.










이렇게 우연히 일어난 지진과 흰 연기가 만들어낸 엄청난 결과, 그게 바로 델피다.

델피는 약 300년의 전성기를 누리다가, 기원 전 4세기 다시 한 번 일어난 지진으로 흰 연기가 나오던 Delphi Fault 는 닫혔다. 기원 전 362년에 있었던 신탁이 델피에서 내려진 마지막 신탁이라고 전해진다.



아름답게 지어진 신전은 무너지고 있고, 아폴로는 어떤 성소도 월계수 나무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말하는 샘물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습니다.  




로마 황제가 델피에 보낸 특사가, 델피를 둘러보고 황제에게 올린 마지막 보고다.

신의 목소리는 닫혔고, 황홀경의 여사제는 없었다.



그 뒤로 델피는 유명세와 인기를 잃고 방치되다가, 기원 후 4세기 로마의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가 국교임을 선포하면서, 당시 로마의 속국이었던 그리스의 모든 신전들이 이교도의 상징으로 모두 파괴된다.

다 예수님 믿으라고 그리스의 신을 무너뜨린 사건이다. 이 때 그리스 전역의 많은 신전들이 무참히 파괴되었고, 델피는 이교도의 성지로 더더 무참히 파괴된다.



1800년대 찍힌 델피의 모습, 뒷편 봉우리의 이름을 따서 키르피스 마을.



파괴된 델피 성소는 이렇게 아예 매몰되어 마을까지 형성되어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 마을 아래 델피가 있을거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그냥 전설이겠거니...

그러다 프랑스 고고학자팀에 의해 이곳이 델피라는 것이 밝혀졌고, 발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 모습이고염

발굴 된 보물들은 성소 바로 옆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공부하면서 가장 신비로웠던 곳이다.

정말 우연히 일어난 지진, 우연히 계속 분출되던 가스, 우연히 그걸 맡고 코피를 흘린 염소

이런 것들이 만들어낸 너 자신을 알라 라는 삼천년을 내려오는 격언과, 수 많은 전쟁과 역사들이 곱씹을수록 놀랍고 신기한 장소였다. 볼게없다 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델피, 볼게 이렇게 많은데 뭔소리람?





아폴로 신탁의 비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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