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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희 Oct 13. 2018

여기 살기는 아주 쉽겠어

저 외국놈이랑?   <암스테르담>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여행기를 써야 하는데,

게을러서 매일 미루다가 한달여가 지나서야 쓰는 엄마랑 유럽 여행 3일차 이야기.



여기는 암스테르담.

벨기에에서 암스테르담까지는 버스로 3시간이고, Flixbus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시간표도 가장 많고, 가격도 가장 저렴하고, 버스를 타는 곳도 접근성이 좋다. 

Flixbus를 타면 암스테르담 중앙역이 아니라 북역(Amsterdam Sloterdijk)에서 내리게 되는데, 암스테르담 워낙 작고 대중 교통 잘 되어있어서 별 문제는 없다. 다만 티켓을 마트에서 사야된다. 암스테르담 북역에 SPAR 라는 유럽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마트가 있는데 거기 캐셔한테 티켓 사면 된다.


진짜 문제는, 내가 예약해놓은 에어비앤비 주인이 무려 세시간 늦게 온다고 한 것.

암스테르담에서는 4박을 했기 때문에, 에어비앤비로 예약해두었는데 우리 도착은 오전 11시, 집주인놈은 3시에 온단다. 시작부터 불길한 에어비앤비.

암스테르담 북역의 파스타집에서 먹은 파스타


그래서 일단 식당에 들어갔다.

밥을 먹자. 밥을 먹으면 시간이 빨리 가니까. 

맛있는 집을 찾아가면 좋은데, 캐리어를 어디 맡길데도 없고 해서 북역에 바로 있는 파스타집에 들어갔다.

맛은 위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최악이다. 파스타 이렇게 맛 없게 만드는 집은 처음이다.

그냥 마트에서 파는 소스 가져다가 부어도 맛있는게 파스타인데,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야 저렇게 맛이없지

소스반 물반

왼쪽은 해산물 파스타다 무려....해산물...파스타...

Marmaris grill & pizza 라는 북역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인데 그 어떤 허기지고 급한 일이 있어도 절대 가지 말 것!

믿을 수 없게 맛 없는 식당이었다.


이렇게 암스테르담 첫 식사를 망치고, 우리는 일단 에어비앤비가 있는 동네로 갔다.

가서 기다리자



동네에 도착해서 본 암스테르담의 첫 인상은

"이래서 블럭이라는 개념을 쓰는구나."

유럽 특유의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 벽 하나를 건물들이 공유하는 방식의 건물들이 열개남짓 붙어서 

덩어리가 이루어져 있고, 위에서보면 정사각형의 블럭들을 양옆 똑같은 간격을 두고 늘어놓은 것 같은 모양새의 마을이었다. 정갈한 체크무늬 같달까?

어디하나 더 튀어나오거나 더 들어간 건물도 없이, 가로세로가 똑같은 건물 덩어리들이

똑같은 간격으로 늘어져있었다. 그래서 길 찾기가 너무 쉬웠다. 


이 건물 덩어리들이 스무개쯤 모인 곳 중간에 잔디밭과 광장이 있고, 그 광장을 중심으로 한 동네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 광장에 나와 저녁을 차려먹기도 하고 애기 돌잔치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 광장 잔디밭에 앉아, 동네 사람들이 밥 해먹고 애들이 자전거를 배우고 하는 모습을 보며 

집주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에어비앤비 주인 기다리는 중

이 때 관찰한 것들,

1. 암스테르담은 건물들의 크기와 간격이 자로 잰 듯 완벽하다. 블럭이라는 개념은 여기에 딱이다.

2. 우리라면 상가로 쓸법한, 바닥에 딱 붙은 1층들이 모두 주거공간이다. 저렇게 일층 창문을 통해 집안이 다 들여다보이는게 나는 어쩐지 이상해보였는데,(현관문의 절반이 유리창이라는 것도) 여기 사람들은 커튼 하나정도를 쳐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다. 마을이 되게 안전한가보다.

3. 여기 애들은 걸음마를 막 뗀 것 같은 애들도 두발 자전거로 자전거를 배운다. 세발 자전거는 없다. 

 키가 내 무릎만큼 오는 애들도 아주 작은 두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그게 그렇게 기특해보일 수가 없다.  


나는 비행기에서 챙겨온 담요를 잔디 위에 깔고 누워서 주인을 기다렸다. 날씨 좋았다 이렇게.

3시에 온다던 주인은 5시가 다 되어서야 왔고....(극대노)....ㅠㅠ

나는 진짜 화를 안 낸다. 암스테르담 동네 잔디에 누워서 기다리는 것도 추억이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를 당황하게 한 건, 집주인이 늦은 게 아니라, 집주인이 집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집주인은 네덜란드 사람 답게 자전거타고 와서는 집 안의 이것저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집에 뭐가 있는지 뭘 주의해야 하는지 따위 하나도 알고싶지도 않았고, 그냥 빨리 집주인이 꺼져주기를 바라며 대충 예스예스하고 들었다. 그런데 모든 안내가 끝나고도 집주인이 안가는 것이 아닌가?

거실에 앉아서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안가지?


방 안에서 십분이 넘게 집주인이 나가기를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집주인에게 물었다.

너 안가니? 너 혹시 여기 사니?

-YES, I LIVE HERE.


뭐라고라고라 여기산다고???

저 당혹스러운 대답에 나는 급하게 에어비앤비 어플을 켜서 후기를 찾아봤다. 

후기들이 좋았고, 별점도 좋았고, 집도 좋았고, 가격도 좀 비싸서 예약한 곳이었다. 

(비싼 것 = 좋은 것)

후기들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게웬걸....

HE IS A FREINDLY ROOMMATE 란다!!

룸메이트란다!!!!!!!!으악!!!!!

후기를 계속 읽다보니 나같은 사람도 있었다. 자기는 돈 내고 집을 빌렸는데 집주인이 나가질 않아서 별로였다는 후기. 아 사일동안 저놈이랑 같이 사는거구나

이런 실수를 하다니

집주인이랑 같이 지내는 에어비앤비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는 호텔보다 에어비앤비를 선호해서 꽤 많은 에어비앤비에서 지내봤었는데, 이런 적은 없었다.

적잖이 놀란 나는 일단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내가 실수했어...저 놈이랑 같이 지내는 숙소였어....

-뭐라고? 저 외국놈이랑 같이 지낸다고? 어머....


에어비앤비에만 들어가면 김치찌개를 해먹으리라 잔뜩 기대했던 엄마는

그럼 요리는 못 해먹는 거냐며 실망했다.

나는 급 자신감을 되찾아서,


-요리 해먹으면 되지, 저 주방도 다 돈 내고 빌린건데! 걱정마!!


엄마는 허허 뭐이런 황당한 일이 다 있니, 어떻게 저 남자애랑 한 집에서 지내니 하고 웃었다.

아 남자애라는게 문제였구나

난 외국에서 사는 동안은 집에 남의 남자 없이 살아본 적이 없어서, 집에 모르는 남자가 있다는 게 문제가 되는 줄은 몰랐는데 엄마는 그렇게 느낄 수 있겠구나. 당연한 말이지만, 엄마는 한 집에서 모르는 남자와 지낸다는게 이상한 사람이구나 깨달았다. 어쨌든,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을 정리하고 우리는 암스테르담 구경 나갔다.

엄마랑 이런 여행 궁합은 좋구나 하고 느꼈던 부분이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이미 일어난 일인데 어쩔 수 없지 쿨하게 넘겨버리는 거? 나도 허허 엄마도 허허

난 이런 실수들도 모두 여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엄마도 그런 것 같았다.



트랜을 타고 시내로 나와 처음 내린 곳, 역시 시내다. 쇼핑몰도 예쁘다.
암스테르담은 중앙역이 정말 예쁘더라
내 얼굴은 비밀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기억나는 건물은 중앙역 건물이다.

사진에 다 담기지 않지만, 아주 크고 웅장한데다가 앞에 흐르는 운하에, 중앙역으로 달려오는 트램들에, 

다리에 서서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유명한 감자튀김집
홍등가


암스테르담은 정말 작다. 저녁에 나가서 네시간 남짓 구경하는데 거리는 거의 다 봤다. 

박물관, 미술관 구석구석을 앞으로 천천히 볼 테지만 도시 자체의 규모는 아주 작다. 

명성답게 자전거들의 천국이었고, 사람들은 키도 크고 다리도 길고해서 자전거 아주 시원시원하게 잘 타고,

자전거 도로 환상이고, 트램도 너무 잘 되어있었다. 

이 정도 도시 규모에, 이 정도 대중교통에, 이 정도 자전거 도로면 자동차 안 타겠는데 싶었다.

실제로 차가 밀리는 도로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중앙역 근처가 차량 통행이 많았는데, 그건 우리나라 막히는 거에 비하면 뭐 아무것도 아닌 정도였다. 막힌다고 말 할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난 아직도 내가 저 나라에 살면 어떨까, 이 나라에 살면 어디다가 집을 구하고, 뭘 타고 다닐까, 어디 마트를 가면 되겠다 등등을 상상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런 상상들이 가장 쉽게 됐던 도시였다. 

어디에 살아야 할지, 뭘 타고 다녀야 할지가 직관적으로 그려지는 도시였다. 

이 전에 암스테르담을 여행했던 친구들이 "여기는 되게 살고싶은 도시야" 라고 했었는데, 그 이유를 알았다.


요즘 유명한 발패치(광고아님)



숙소로 돌아와 씻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매일 발패치를 꼼꼼히 붙이고 잤다.

엄마가 많이 걸을 일이 걱정됐던 내가 준비한 비장의 아이템!

인터넷에서는 효과가 좋다고 광고를 많이 하길래, 

"그래 이거라도"

라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붙일 만큼 사갔다. 나는 아무리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아서(전직 가이드 포스) 

효과를 못 느꼈는데 엄마는 아주 좋아했다.


"어떻게 이렇게 걸었는데 발이 하나도 안 아프지? 이것때문인가봐 어머나"


하며 놀라워할 정도로 효과를 봤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붙이고 잔다. 


그리고 샤워를 하기 전, 엄마한테 뭐가 샴푸 린스인지를 알려주고


"유럽은 건식화장실이 많아, 샤워커튼 꼭 치고 샤워하고, 샤워실 바깥 공간에는 배수구가 없으니 여기에 물 튀지마. 샤워커튼 치면 하나도 안 튀어."


라고 주의 사항을 알려줬는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던 엄마는 샤워를 끝내고

기어이 샤워기로 화장실 바닥에 물을 휘휘 뿌렸다.

씻고 나면 화장실 바닥에 물을 촤아악!!! 끼얹고 나오는게 엄마 습관이다.

저러고는 나한테 와서 


-웅비야 내가 바닥에 물을 촥 뿌렸는데 어떡하지?

-아 건식 화장실이라 물 뿌리면 안된다니까, 배수구 없단 말이야...마르겠지 뭐...


엄마는 기어코 물을 한 번 뿌려본 다음에야 건식 화장실을 이해한 것 같았다.

안 된다고 말해줘도, 이해가 안되면 기어코 해본 다음에야 아차하고 이해하는... 저런 무대뽀 같을 때가 있다 엄마가.



다음 날, 반 고흐 미술관을 가는 일정을 설명하며

한국에서 미리 다운 받아온 <러빙 빈센트>영화를 틀어줬는데, 아무래도 영 엄마 취향이 아니다.

십분인가를 채 못 보고 잠들었다.

근데 이 영화를 못 본게 아마 다음날의 복선이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이 날 저녁 보지 않아도 됐었다.

왜인지는 다음 편에...


암스테르담 첫째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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