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오던 빌리브 라디오를 개설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무리까미 하루끼 님의 무라까미 라디오를 흉내 낸 것이고 그냥 편하게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책제목까지 베낀 마당에 어차피 언젠가는 쓰게 될 무라까미 하루끼 님에 관해 써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그는 책이라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던 내가 독서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 원인제공자이자 최애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최고의 작가는 아니긴 하다. 아마 그도 그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최고의 작가는 그가 책 속에서 소개했던 토마스만이나 톨스토이 또는 잭런던이다 보니 아마도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작가와 겹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그가 원하는 것일 것이라고 나는 거의 확신한다.
또한 어쩌다 보니 그가 책 속에서 제시한 생활규범들의 많은 부분들을 따르며 살아가고 있는데 억지로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던지 신사일 것이라던지 골프를 치지 않는다던지 하는 것들이다. 그가 듣는다면 그게 왜 생활규범인 것인지 그냥 내 이야기를 한 건데라고 하겠지만 그가 듣게 될 리가 없으니 괜찮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한강변을 따라 러닝도 꽤나 자주 했었는데 지금은 가끔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서만 몇 분 뛰는 것뿐이라서 아쉽긴 하다. 러닝은 사실 어릴 적부터 하던 것이니 그를 따라 하는 건 아니긴 하다.
재즈 같은 그의 고상한 음악 취향은 아쉽게도 따라가기 어려웠다. 뉴욕에 갔을 때 재즈클럽에 한번 가봤는데 재즈 플레이어들의 화려한 애드리브는 아무래도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파스타는 가끔 만들어 먹긴 하는데 레벨 차이가 클 것 같다. 파리에서 독학으로 익힌 까르보나라를 부모님이 좋아하시긴 하는데 마찬가지로 독학으로 익힌 나만의 특제 짜파게티가 훨씬 더 자신 있다.
작가가 죽은 지 100년이 넘은 책만 읽는다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은데 꼭 그래서라기보다는 옛날 책만 읽고 또 읽다 보니 신간소설은 사실 읽기가 쉽지 않다. 그가 표현했던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솔직하게 말해서 나의 독서력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소설에 국한되는 것이고 사피엔스나 총 균 쇠 같은 책들은 열심히 찾아 읽어보려고 하고 있다.
만화책은 어릴 때나 읽고 하루끼는 대학생 때나 읽는 책이라는 말도 들어봤다. 만화책을 정말 좋아했었는데 지금 읽으면 감흥이 덜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렇지만 하루끼 님의 책은 대학생 때부터 읽기 시작한 것은 맞지만 지금 다시 읽어도 크게 변함이 없다. 토마스만의 마의산처럼 말이다.
잡문집이라는 책에서 봤던 문장들인데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놨던 것들이다. 글은 우리를 물어뜯을 수 있거나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트리는 도끼 같아야 한다는 인용문인데 정말 말 그대로 도끼와도 같은 문장이다.
또 다른 문장은 갈 곳이 없어 집에 들어온 길고양이들과 함께 잠을 자면서 어디까지가 사람의 체온이고 어디까지가 고양이의 체온인지 알 수 없는듯한 그리고 어디까지가 나의 꿈이고 어디까지가 다른 사람의 꿈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부분이다.
다시 봐도 좋은 영화들이 있다. 줄거리를 알면서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쇼생크탈출> 마지막 부분쯤 레드 역의 모건 프리먼이 버스를 타고 앤디를 찾아가는 장면이라던지 비교적 최근 영화 중에는 <그린북>에서 셸리를 흑인이라고 무시하는 인간들을 토니가 시원하게 패주거나 총이 있는 척 위협하는 그런 장면들이다.
무라까미 하루끼는 그런 책을 써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느끼게 해 줄 뿐이다.
그는 글을 쓰라던지 또는 써야 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본인이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글로 써보면 생각이 정리된다던지 그리스의 섬에서 비틀스의 노래를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들으며 노르웨이의 숲을 썼다던지 하는 식의 이야기만 할 뿐이다.
아무튼 아마도 나는 이러한 그의 섬세한 전략에 의해 글을 써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 안 또는 그 어딘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트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읽고 잊어버릴 글은 썼다가도 지우려고 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같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글을 써보려고 노력했던 삶을 살고 싶기는 하다.
분명히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이번 글은 확실히 망한 것 같고 다음글부터는 좀 더 가볍고 경쾌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전국의 일만이천 하루끼님의 팬여러분 잘지내시나요. 저는 잘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