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4_1/2]
•호의를 베풀었다면 보답을 바라지 말 것.
‣명제 넷을 시작하면서 이성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략 파트는 이성 관계에 한정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에게 무언가를 베풀 때가 있습니다. 그건 시간이 될 수도 있고, 구체적인 서비스나 재화의 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호의는 명제 둘에서 살펴봤던 채권‧채무 관계와 유사한 성격을 띱니다. 내가 베푼 호의가 클수록 상대는 고마움과 함께 부채감을 느끼고 동시에 나도 모르게 보상을 바라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쿨 해지기는 힘들어집니다. 외려 상대가 나를 여상히 대하면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죠. 그토록 잘 도와줬는데, 평소와 똑같이 대한다고 말이죠.
이런 원리를 이성 관계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성에게 무언가를 베푼다는 건, 사실상 그에게 호감을 느껴서입니다. 물론 그 외의 경우도 존재하지만, 전략 도출을 위해 이성적 호감을 느껴 베풀었을 때만 가정해서 논의를 진행하겠습니다. 명제 넷에 기반한다면 상대에게 내 생각이나 의도를 들키지 말아야 하겠죠. 호감을 느껴서 베푼다는 걸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불편해지고 부담스러워할 테니까요.
하지만 다수의 사람은 이성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상대에게 내 호감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상대도 내게 호감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들죠. 즉 친구 이상의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구실로 호의를 베푸는 겁니다.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상대의 감정이 나와 같지 않으면 관계에 악영향만 끼칩니다. 정리해서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상대의 요청에 따라 호의를 제공.
제공자 : 호감이 동인이 돼 호의를 베풂 ➜ 자신이 베푼 호의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발생 ➜ 만남을 통해 관계를 진전시키고자 함.
수혜자 : 지금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 ➜ 호의에 감사한 마음을 느낌 ➜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인간적 호감이 발생.
2)호의를 제공했음을 이유로 만남을 요청할 때.
제공자 : 상대와의 만남으로 관계를 진전하고자 함 ➜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탐색 ➜ 다시 만날 명분을 찾음.
수혜자 : 상대에게 진 심리적 채무를 지고자 요구에 응함 ➜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부담을 느낌 ➜ 심리적 부담의 가중.
보시다시피 호의를 베풀고 그걸 구실로 만남을 요청하는 건 관계에 도움이 안 됩니다. 외려 관계가 단절될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여기서 마음 급하신 분은 호구처럼 베풀기만 해야 하냐고 따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타인에게 베풀고 그걸 받아내려는 태도가 관계에는 도움이 안 될뿐더러, 이성 관계에는 더더욱 악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남녀 관계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을 만큼 관계가 진전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몇몇 분은 그럼 설렘이 없어서 안 되지 않냐고 되물으시는데, 그건 자주 만나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만났을 때 잘못된 행동과 말이 관측돼서 그런 겁니다.
대표적으로 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단점을 여러 번 보이면 만날수록 가치가 하락하는 거죠. 반대로 만날 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이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면 외려 상대는 내게 호감을 느낄 겁니다. 즉 자주 만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주 만날 수 있도록 심리적‧물리적 환경을 조성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호감이 있음을 들켜서는 안 되는 겁니다. 상대가 이를 아는 순간부터 부담이라는 감정이 작동하고 이는 심리적인 채무 변제가 강요되는 압박감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 때는 아래 네 가지를 고려해 봐야 합니다.
①내가 베푸는 호의가 보상을 바라지 않을 만큼 작은 일인가?
②보상을 바랄 만큼의 호의지만, 상대가 돌려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가?
③보상을 바랄 만큼의 호의면서 돌려받기를 바란다면, 상대는 그를 기꺼이 해줄 사람인가?
④내가 베푸는 호의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계속 알고 지낼 수 있을 만큼 장기적인 관계인가?
여기에 해당하는 게 하나도 없다면 호의를 베풀지 않아야 합니다. 상대를 도와주고 왜 갚지 않냐고 닦달하거나 고마움을 모른다고 서운해하는 건 여러분을 초라하게 만들고 관계에도 해롭게 작용합니다. 심지어 고마움을 느끼고 여러분이 도와 달라고 할 때 갚을 작정을 한 사람도 재촉하면 눈살을 찌푸립니다. 이건 인간의 비합리적인 면인데, 원래 우리는 타인의 감정은 평가절하고 나의 감정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호감이 있는 상대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요. 이때는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보통은 호의를 베풀고 나서 상대와의 관계를 진전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커피나 밥 같은 약속을 잡아 만나려고 하는 거죠. 하지만 이런 건 부담만 주고 도움도 되지 않음을 앞에서 살펴봤습니다. 차라리 호의를 베푸는 과정 자체가 드러나고 관찰되는 게 훨씬 유리합니다.
가령 과제를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면 가능하면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함께 진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호의를 베풂과 동시에 상대와 만나 시간도 보냈습니다. 아울러 함께 과제를 하면서 상대에게 나의 유능한 모습도 보여줬기에 매력도 어필했습니다. 또한 상대는 자기 과제를 위해서라고는 해도 나에게 시간을 투자했으니, 이미 나의 호의는 보상을 받은 겁니다. 말하자면 호감을 발전시키겠다는 목적은 이미 첫 만남에서 달성된 거죠.
함께 작업을 마친 후라면 상대는 다음에 밥 한 번 사겠다고 예의상으로라도 말할 겁니다. 그럴 때면 그냥 알겠다고 말하고 굳이 밥을 얻어먹으려거나 다시 만나려 애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미 우리는 상대와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냈고, 매력적인 모습도 보여줬거든요. 함께 밥 한 끼를 하는 게, 과제를 같이 했을 때보다 더 매력적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에게 긍정적 물리력을 발휘하는 사람에게 끌릴 수밖에 없거든요.
더불어 내가 베푼 것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지 않으면 우리의 능력은 더욱 커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베푼 호의는 보상을 바라지 않을 만큼 작은 일로 관측되거든요. 즉 수혜자의 눈에는 제공자의 능력이 더 뛰어나 보이는 겁니다. 이건 똑같은 돈을 지니고 있어도 막 쓰는 사람이 더 부유한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경계해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할 때만 찾거나 자신의 목적만 이루고 연락이 단절되는 경우입니다. 이럴 때는 상대가 나를 이용했다고 분노할 필요가 없음을 [물고기를 위한 만트라]에서 설명했습니다. 이해를 위해 첨언하자면, 만약 상대가 내게 보상해주기 위해 밥 한 끼 샀다고 칩시다. 그다음에 연락이 끊어졌다면 우리의 기분은 괜찮았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이건 상대가 나를 이용했음에 분노한다기보다는 내 욕망이 실현되지 않고 기대했던 바가 좌절돼서 분노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결론만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 때는 의도를 들키지 마세요. 호의를 베푼 다음에는 보상을 요구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리는 게 낫습니다. 차라리 상대가 나를 편히 느끼고 계속 부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훨씬 유리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상대와 자주 만나면서 나의 장점을 보여주고 관계를 진전하는 거니까요. 만약 만남이 거듭돼도 상대가 내게 호감이 없는 것 같거나 이용하기만 한다면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거나 비용을 청구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문제는 해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