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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우 Mar 11. 2020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28)

[분석 4_3/3]

•쿨함의 정체.


‣쿨한 사람을 싫어하는 분은 거의 없으실 겁니다. 그런데 쿨하다는 게 뭔지 모호합니다. 그래서 논의를 위해 쿨함을 정의해야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쿨함의 요소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나를 피곤하게 하지 않을 것.

둘째, 심리적 채무를 발생시키지 않을 것.

셋째, 심리적 채무가 있어도 쉽게 탕감해줄 것.


소위 쿨하다는 사람의 특징을 꼽자면 받으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의도가 없는 데다 보상까지 원하지 않는 이들을 보면 우린 쿨하다고 여기죠. 가령 내가 잘못한 게 있음에도 그걸 왈가왈부하지 않고 넘어가는 사람은 쿨합니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아직도 미안해하고 있어? 라고 이해해주는 거죠. 동시에 타인에게 밥을 사면서도 계산을 따지지 않는 사람, 지난 일은 묻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 타인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람. 대체로 이런 사람을 우리는 쿨하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타인을 피로하게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결국 쿨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베푸는 호의의 목적이 없어야 하며 보상도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심리적인 채무가 발생하지 않거든요. 전술한 대로 우리는 목적을 지니고 다가오는 사람을 보면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워합니다. 그건 상대와 나의 관계 형성이 목적과 목적을 거래하는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핸드폰을 바꿀 계획이 있는 사람에게만 통산사 대리점 직원의 고객님 잠깐만요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상대에게 이성적 관심이 없을 때라야 쿨하게 밥 한 끼 사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핸드폰을 바꾸기 위해 통신사 대리점에 가 상담을 했다고 칩시다. 대략 1시간 정도 상담을 했고 대리점 사장님은 최선을 다해 여러분의 조건에 맞는 핸드폰과 조건을 설명해 줬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상담하다 보니 어쩐지 핸드폰을 사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듭니다.(심리적 채무감) 이대로 나가버리면 괜히 내가 나쁜 사람이 될 것 같고 상대도 실망할 것 같거든요. 하지만 여기서 사자니, 정보도 부족한 상황이고, 따져보니 지금 바꾸는 것보다 조금 있다가 바꾸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여러분의 의중을 꿴 사장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고객님 이제 선택하시죠. 어떤 걸로 개통해 드릴까요?”


어떤가요, 여기서 쿨함이 발견되나요. 아마 찾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면 상담이 끝난 후 사장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해봅시다.


“고객님 여기가 처음으로 들른 매장인 거 같은데, 우리 매장 말고 다른 곳에도 한 번 들러보세요. 그럼 조건이 다를 수도 있고 돈도 좀 적게 쓰고도 개통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도 상담받아 보시고 그때도 괜찮으면 다시 오시죠.”


어떤가요, 이제 좀 쿨한 느낌이 들죠. 이 말에서 우리가 쿨함을 느끼는 이유는 심리적인 채무가 발생한 걸, 바로 탕감해줬기 때문입니다. 우선 대리점 사장님의 의도는 핸드폰 판매에 있는 게 아니라 나라는 인간 자체에 있습니다. 즉 그는 나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독립된 욕망의 주체로서 상담해줬습니다. 그래서 의도가 없는 그의 상담이 쿨하다고 느껴지고 피로도 발생하지 않는 거죠. 더불어 상대의 상담으로 내가 원하는 정보는 얻었는데 상대는 1시간의 상담에 대한 대가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은연중에 발생한 심리적 채무감도 완전히 사라졌으니 쿨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죠.


결국 우리가 쿨한 사람을 좋아하는 건, 내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득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쿨하지 않더라도 쿨함을 연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사 상대에게 바라는 게 있더라도 그걸 드러내지 않고 갚으라고 재촉하지도 않는 태도는 이성 관계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했을 때라야 상대와의 관계 맺기는 쉬워지고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치명적인 맹점이 있습니다. 자칫 호구가 될 수도 있거든요. 사실 위의 내용만 보면 호구와 쿨함이 다른 게 뭔지 알 수 없을 겁니다. 호구도 심리적인 채무를 안 지우면서 동시에 의도까지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은연중에 호구는 무시하고 쿨한 사람은 좋아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얄팍한 본성이 드러납니다. 명제 둘에서 우리는 [누가 힘을 쥐고 있는가?]를 살폈고 관계에서 중요한 건 물리력과 위계임을 말했습니다.

결국 쿨한 사람과 호구의 차이는 인식된 위계의 차등에서 옵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가 똑같은 부탁을 했는데도 평소 쿨하다고 여긴 사람이 거절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호구라고 여긴 사람이 거절하면 기분이 나쁘기도 합니다. 대체로 우리가 호구로 여기는 사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내 부탁을 거절할 힘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입니다. 즉 나보다 위계가 낮다고 여겨지는 타인인 거죠. 여기서 말하는 위계는 물리적인 사실이나 아니라 심리적으로 인식된 주관적 위계입니다.


호구의 대표적인 특징을 꼽는다면 휘둘린다는 겁니다. 내 마음대로 된다는 거죠. 대인관계에서 주체성을 잃은 사람, 나아가 내게 상처나 부정성을 전혀 줄 수 없는 사람은 곧 호구로 인식됩니다. 설사 나보다 위계가 높은 데도 내 마음대로 되면 호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죠. 이 때문에 호구 선배, 호구 교수님, 호구 선임 등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호구로 여겨지는 이유는 부정적 물리력을 전혀 활용하지 않아서입니다. 반면 부정적 물리력을 활용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를 호구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군생활을 해 보신 분은 알 겁니다. 후임이 잘못했을 때 얼차려뿐만 아니라 폭력까지 가할 수 있는 FM 스타일의 선임이 꼭 한 명씩은 있고 의외로 존경받는다는 사실을요. 이런 선임이 만약 내게만 특혜를 베푼다면 여러분은 그를 호구라고 생각할까요? 아마 그러기 힘들 겁니다. 주변에서도 그를 자기 후임에게는 잘해주는 선임이라고 평가하겠죠. 특히 이런 사람이 잘해줄 때와 화날 때가 명확하다면 더더욱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게 부정적 물리력의 힘이자 매력입니다.


그래서 쿨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정적 물리력과 주체성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즉, 나는 네가 원하는 걸 해주지 않을 수 있고 그럴 능력도 있어. 라는 느낌이 없으면 쿨함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런 능력과 주체적인 의지가 발현됐을 때라야 의도 없음, 피로하게 하지 않음, 보상을 바라지 않음이라는 가치가 쿨함으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결론만 말하자면 쿨하려면 부정적 물리력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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