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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우 Mar 11. 2020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27)

[분석 4_2/3]

•상대의 호의가 부담스러울 때.


‣이번 내용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겠습니다. 종종 밥 사주거나 술 사준다는 선배들이 있습니다. 고민도 없는데 먼저 고민을 털어놓으라는 변사또 같은 선배도 있고요. 사실 누군가가 내게 밥과 술을 사준다는 건 상당히 좋은 일입니다.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고 자존감까지 올릴 수 있거든요. 또한 내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이는 심리적인 안정에도 도움이 되므로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이 먼저 호의를 비춤에도 그를 받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부담스러워서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이미 상대가 내게 목적이 있음을 짐작해서입니다. 이해를 위해 한 가지 사례를 제시하겠습니다.


사례, 하나.


대학생인 영희는 학과 남자 선배로 현수와 병철이를 알고 있습니다. 현수는 못생겼지만 소탈하고 편한 사람입니다. 병철이는 아주 잘생기진 않았지만 훈훈한 편이라 인기가 많습니다. 물론 둘 다 영희 스타일은 아니라서 호감은 조금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계속 병철 선배로부터 카카오톡이 옵니다. 거의 다 시답잖은 내용인데, 답장을 안 하기도 뭣하고 하기도 뭣해 묘하게 불편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희 생일이었습니다. 병철 선배로부터 기프티콘이 와서 확인해보니까 파리바게트 홀 케이크가 도착해 있습니다. 평소 서로 생일을 챙기는 사이가 아니라서 받자니 부담스럽고 왜 이걸 보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영희는 오랜만에 현수에게 연락했습니다. 공강 시간에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한잔 한 후 영희는 조심스레 현수에게 묻습니다.


“오빠 혹시 병철 선배랑 친해요?”


영희는 왜 병철이와 밥을 먹지 않고 현수와 밥을 먹고 있을까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병철이가 더 잘생긴데다가 생일 선물까지 보내줬는데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영희라도 병철이와는 밥을 먹지 않을 겁니다. 그건 관심도 없는 이성이 내게 베푸는 호의가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 영희는 왜 병철의 호의를 부담스러워할까요? 그건 병철이의 행동이 영희에게 호감을 품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 지점에서 영희는 병철이와 잘 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병철이가 베푸는 호의는 단순하게 받을 수 있는 호의가 아니게 됩니다.


그건 목적성을 품은 호의면서 동시에 이성적인 관계로 나아가자는 거래의 성격까지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희는 그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목적을 알 수 있거나 이미 드러난 호의는 심리적 채무를 발생시키거든요. 즉 갚아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발생하고 그걸 갚지 않으면 비난받을 위험까지 생깁니다.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보면 정우성이 손예진과 소주를 마시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거 마시면 사귀는 거다?”


정우성이 했으니 망정이지 보통 사람이 하면 1,000만 원 빌려달라는 카톡만큼 부담스러워집니다. 병철 선배와 함께 하는 식사가 정우성이 권하는 술 한잔만큼의 무게가 있는 건 아니지만 동일한 방식의 부담은 작용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가 불콰한 기운으로 정우성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대응하실 건가요. 저라면 이리 말하겠습니다.


“취했네. 대리 불러줄게.”


이처럼 타인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직접적으로 관심을 드러내 버리면 외려 관계 맺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차라리 무관심한 척하는 게 더 낫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서로 편하고 격의 없이 지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제가 말하는 건 상대에게 관심이 있더라도 그걸 드러내지 않는 게 더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길거리 포교를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목적을 감췄을 때라야 관계를 맺기가 더 쉽고 향후 공고해진 신뢰와 상호의존성으로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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