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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우 Mar 11. 2020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26)

[분석 4_1/3]

•도를 아시나요?


‣저는 학창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된 후부터 도시에 적응한 셈이죠. 도시에 삶에 적응하면서 가장 낯설었던 게 모르는 사람이 제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거였습니다. 다양한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왔지만, 크게는 둘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길을 물어보는 사람. 둘은 도를 아느냐고 묻는 사람입니다.


예전에만 해도 도를 아느냐고 묻는 사람들의 레퍼토리는 단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웹툰 캐틹터를 닮았다, 인터뷰하고 싶다, 설문조사를 부탁한다 등등…. 점차 목적을 숨긴 채 교묘하게 접근합니다. 이런 변화의 이유는 그들의 목적이 파악되는 순간 다수의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타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순수한 수단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수단이 되려면 이쪽도 기꺼이 목적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서 길거리 포교를 할 때는 성적 가치가 매우 중요해집니다. 우리는 성적 가치가 높은 사람이 목적 지향적 소통을 했을 때에나 기꺼이 그의 수단이 될 수 있거든요. 이는 외부적으로는 수단으로서 그의 목적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와 성적 가치를 교환하고자 하는 어렴풋한 목적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결국 순전히 수단으로 참여하는 게 아니라 목적을 가진 주체로서 참여하는 거죠.


하지만 성적 가치가 낮은 사람이 길거리 포교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그들의 시도는 십중팔구 실패하거나 무시당할 겁니다. 심각한 경우에는 타인의 경멸, 혐오, 분노까지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점을 돌려서 우리가 길거리 포교를 해야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1)자신의 성적 가치를 올린다.

2)목적을 숨기고 접근한다.


두 방법 중에 후자인 목적을 숨기고 접근하는 게 더 쉬워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상대에게 내 의도를 숨김으로써 목적을 위한 접근이 아니라 상대 자체에 관심을 두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죠. 고전적인 방법으로는 우울해 보인다는 말로 시작하는 위로가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의 의도를 알지 못하기에 그가 정말로 나의 상태를 걱정하고, 나의 자아에 관심을 둔다고 오해합니다. 실제로 우울한 사람이라면 이 일을 계기로 미주알고주알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수도 있겠죠. 요즘 유행하는 인터뷰 제의는 또 어떨까요? 이것도 주체의 나르시시즘을 자극하는 포교 방식입니다. 목적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 자체의 인생과 개성에 흥미가 있는 척하는 거죠. 결국 우리는 허영심이라는 자기 내부의 덫에 걸려 인터뷰에 응하고는 합니다. 상대의 목적을 모르기에 조금씩 인간관계는 구축되고, 나중에는 상호의존의 관계도 형성됩니다. 바야흐로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하면 상대는 드디어 목적을 드러냅니다.


“저랑 같이 성경 공부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아마 그들이 처음부터 목적을 드러내고 여러분을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다면 여기까지는 오지 못했을 겁니다. 만약 그게 성공하려면 성적 매력이나 사회적 가치가 매우 높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보통 사람의 관계에서는 자기 목적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게 더 유리합니다. 타인과 관계 맺는 이유 자체를 드러내지 않고 소탈한 느낌을 줬을 때, 더 진지하고 깊은 관계 형성이 가능하죠. 말하자면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친해질 수 있습니다. 이후 이런 친밀감이 충분히 쌓였을 때 그 상호의존성을 지렛대로 활용해 원하는 것을 하나씩 이뤄나갈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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