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우 Mar 19. 2020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36)

[분석 5_4/4]

•헌신과 희생의 역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가 헌신과 희생입니다. 이 두 단어는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거든요. 여기서는 왜 헌신과 희생이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지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헌신과 희생은 주체로서의 이익을 버리고 객체에 더 많은 걸 투자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만약 그 투자가 긍정적 결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헌신이나 희생을 성공을 위한 합당한 노력으로 설명할 겁니다. 그러나 결과가 부정적일 때는 분노하거나 헌신과 희생이 무의미했다며 허탈해하겠죠. 특히 관계라는 측면에서 헌신과 희생이 적용되면 상대가 나를 배신했다거나, 이용당했다는 이상한 말이 나오게 됩니다.


헌신과 희생이 관계에 해로운 구조적 이유는 내가 대상에 집착한 만큼 그 대상이 나를 흔들 힘이 세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식을 할 때 생활자금을 제외한 모든 돈을 투자한다면 증권시장의 시황은 우리를 쥐고 흔들 겁니다. 즉 증권시장이 긍‧부정적 물리력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 영향력까지 내게 행사하는 겁니다. 이 지경이 되면 신호등만 봐도 가슴이 철렁할 수 있습니다. 관계에도 이는 똑같이 적용됩니다. 타인에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 자체가 관계에서 주도권을 상실하고 상대에게 서운할 일을 늘리는 속성이 있거든요.


그런데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헌신과 희생은 엄밀하게 말해서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이는 허구에 가까운 생각입니다. 저는 인간이 자신의 행불행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데, 이런 인간관은 속을 수는 있을지언정 이용당할 수는 없습니다. 실재한 현상과 주체의 인식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잘못된 평가와 예측을 합니다. 이런 오해로 불가능한 미래나 결과가 가능하다고 여기고 시간, 노동, 돈 따위를 투자하는 걸 실수했다거나 혹은 사기당했다고 말합니다. 이때 주체와 목적 사이에 타인이 개입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속은 거고 타인이 개입하면 사기 당한 게 됩니다. 가령 상대의 적극적 권유와 감언이설에 속아 투자한 경우에는 실수와 사기가 혼재돼 있는 거죠. 이럴 때 우리는 나의 아둔함을 탓할 수도 있고 상대의 악의를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용당했음을 착취와 동일시할 때입니다. 우선 이용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다른 사람이나 대상을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씀’입니다. 만약 우리가 타인에게 헌신하거나 희생했는데 거기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면 이건 이용당한 걸까요 아니면 사기당한 걸까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사례를 하나 제시해볼 테니 함께 생각해보시죠.


사례 하나 : 병철이는 올해 신작 게임을 개발하느라 하루 14시간 이상 일했습니다. 총 3개월간 하루 14~16시간을 근무했으므로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입니다. 하지만 과장님과 부장님은 이번 게임이 흥행하기만 하면 모두에게 굉장한 인센티브가 지급될 거라고 공언했습니다. 그래서 병철이를 비롯한 개발 TF에 참여한 여러 팀원은 과도한 업무량에도 군말 없이 약속 기한까지 개발을 끝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게임이 론칭되고 나름 흥행도 했는데 인센티브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임원 회의에 참석한 재무팀 장 대리님에게 물어보니 이런 답변을 들었습니다.


장대리 : “회사에서 기대한 것보다 실적이 별로인가 봐. 그래서 인센티브 지급 이야기는 전혀 안 나오고 있네. 이대로 그냥 넘어갈 것 같은 분위기야.”

병철 : “아니, TF 꾸릴 때 인센티브 준다고 해놓고서 지금 안 주겠다는 게 말이나 돼요. 성과가 안 나온 것도 아니고 기대에 못 미쳤다고 인센티브를 미지급하면 열심히 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장대리 : “글쎄, 분위기상 신입이면 다들 한 번은 개발 TF에 참가하는 눈치인데다가 어떤 친구들은 인센티브 없이도 지원하거든. 자기 이력에 한 줄이라도 더 추가하고 게임 제작도 경험해 볼 수 있으니까. 이직 생각하는 사원들은 의외로 괜찮은 이력이지. 처음부터 얼마 이상 달성하면 인센티브 나온다는 말이 있었던 게 아니니까,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거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야.”


지금 병철이는 회사로부터 사기를 당했나요, 아니면 이용당했나요? 저는 병철이가 사기당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처음의 구두 약속과 이야기가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남들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거기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전혀 받지 못했거든요. 14시간이나 일했는데 월급이 똑같으니까요. 만약 사기당했다는 제 주장이 옳다면 병철이는 회사를 상대로 추가 노동에 대한 임금과 인센티브 지급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병철이가 기대한 바의 근거가 과장님과 부장님의 모호한 공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병철이가 직장인이 아니라 프리랜서로 TF에 참여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인센티브에 대한 명시적인 약속과 기준 나아가 계약서까지 요구했을 겁니다. 하지만 직장인인 병철이가 현실적으로 그리할 수는 없겠죠.


여기서 프리랜서인 병철이는 가능한데 직장인인 병철이는 왜 불가능한지 이유를 곰곰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게 제가 하고픈 이야기의 핵심이거든요. 이 부분만 잘 고찰해도 왜 헌신과 희생이 성립 불가한지 알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하나 더 생각해 볼까요? 병철이에게는 TF 참여와 관련해서 선택할 자유가 아예 없었을까요. 나아가 TF를 위해 하루 14시간을 꼭 일해야 했을까요.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인센티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명시적 약속을 도중에라도 받을 수는 없었을까요. 이 모두에 대한 제 답은 YES입니다. 마지막으로 병철이는 원한다면 부당한 대우에 저항한 후 퇴사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철이는 장대리와 함께 술 한잔 하고서 이 일을 그냥 묻겠죠. 그게 더 합리적으로 느껴지겠죠.


이쯤에서 저는 묻고 싶습니다. 만약 회사가 주체의 편익을 위해 병철이를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병철이는 어떤가요. 마찬가지로 주체로서 회사를 경제적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양자는 서로의 편익을 위해 불편한 공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만약 이 둘이 오직 정의만을 기준으로 행동한다면 이리될 겁니다.


1)회사 : 처음 약속한 대로 인센티브에 대한 구체적 지급 기준을 마련하고 거기에 따라 TF 참여자들에게 보상을 제공한다.

2)병철 : 회사가 지급하겠다던 인센티브와 관련한 구두 약속을 근거로 적절한 비용을 청구하고, 합의가 되지 않을 시 법적 도움을 받아 소송까지 진행한다.


직장생활을 잠시라도 해본 분이라면 위의 이야기가 판타지임을 아실 겁니다. 하지만 이게 판타지기에 결국 사회의 부조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병철이는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사기당했으나 그 사기당했음에 침묵함으로써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합니다. 결국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 회사도 인센티브를 요구하지 않는 병철이도 서로의 이익을 택함으로써 생존에 더 유리한 거래와 타협을 암묵적으로 한 셈입니다.


즉 주체가 이용당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사고 시스템이 부재하고 동시에 욕망도 부재해야만 가능합니다. 지적장애나 강요로 인해 염전 노예가 될 수는 있지만, 대기업 노예는 성립 불가능합니다. 대기업에 근무할 정도의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은 착취당함을 선택할 수 있을 뿐 순수한 의미에서 착취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헌신하지도 희생하지도 못합니다. 헌신과 희생을 선택함으로써 더 큰 심리적 만족을 얻거나, 반대로 실수하거나 사기당할 수 있을 뿐이죠.


명제 다섯에 근거한다면 결국 헌신과 희생이라는 생각 자체가 흔들림을 유발함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대상에 헌신하고 희생했다는 생각은 관계에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받았을 때 분노까지 유발합니다. 만약 위의 사례에서 병철이와 달리 TF 참여로 게임 개발 역량을 늘리고 향후 창업까지 생각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하루 14~16시간의 노동을 헌신과 희생으로 여길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그런 노동 자체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에 병철이처럼 헌신과 희생이라는 생각보다는 주체로서 참여했다고 생각하겠죠. 결론적으로 특정 대상에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건 성립하지도 못할뿐더러 주체의 생활과 심리적 안정성마저 훼손합니다. 우리는 내게 더 이익이 된다고 여기는 걸 선택했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가 예상한 것과 결과가 다르다면 이건 이용당했다기보다 실수했거나 사기당한 겁니다. 만약 사기당했다면 우리는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이제 긴 이야기를 여기에 정리해 봅니다. 세 가지 소결론으로 나눠보겠습니다.


하나, 타인 또는 대상에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건 나의 안정성을 무너뜨리므로 관계에 해롭다.

둘, 타인 또는 대상에게 헌신하고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건, 향후 서운함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관계에 해롭다.

셋, 타인 또는 대상에게 헌신하고 희생했다는 건 사실 성립할 수도 없고 이용당할 수도 없기에 이는 버려야 할 생각이다.


원망할 거면 따져야 하고, 따지지 못 할 일이면 원망할만한 일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체적 인간으로서 관계를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3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