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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신 Dec 20. 2021

나쁜 회사, 조강지처는 버림받는다

100세 인생 라이프쉬프트(연재2)

1. 나쁜 회사, 조강지처는 버림받는다(100세 인생, 연재2)


- 날벼락


50세 이전까지 직장생활은 너무나 좋았다. 매년 월급이 오르고 승진도 하였다. 

내가 승진하는 사이, 다른 한 켠에서는 고참 선배들이 직책을 빼앗기고 연봉을 삭감당한 채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매년 생기는 일이라서 남의 일처럼 지켜보았는데, 이번에는 입사 25년차인 내게 불똥이 떨어졌다.

달려오면서 어렴풋이 이때를 예상했지만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고 이후 경사는 가팔랐다

그때부터 실무자로서 2년을 더 일하다가 27년째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회사에서 자동차보험 전문가로 일하였고, 명예퇴직 후 2년간은 자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였다.

일본에서는 25년차 정도의 직장인이 진정한 전문가로 인정받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때부터 내부의 걸림돌이 된다. 직업을 그만 두거나 바꾸는 일은 누구에게나 큰일이다. 내게도 30살 결혼 이후로 이번 퇴직이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다.



한국인 평균 수명이 83세를 넘어섰고 100세 삶이 보편화되는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시대’이다. 통계청자료에 따르면, 지난 30년 간 남녀평균수명은 17.3세가 늘어났고, 현재 65세 이상 고령자인구는 16.5%이고 2025년에는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선다. 이전 세대보다 늘어난 수명으로 인해 60세 퇴직 이후의 일과 삶도 매우 길어졌다. 

대다수 직장인은 회사 일에 올인하고 회사에 모든 운명을 맡긴다. 

한 곳만 보고 전력으로 질주하던 어느 날, 그동안 익숙했던 자리를 모두 빼앗아 가는 통보를 받는다. 내가 먼저 회사를 자르지 않는 한, 자발적으로 걸어 나가지 않은 한 이런 일은 모든 관리자의 숙명이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분말이 되는 순간이지만 넘어진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해야한다.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사람이 최고이고, 퇴직 후에는 노후 준비가 잘 된 사람이 최고이다.  회사생활을 잘 하였다고 노후준비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삼성맨이었던 나의 퇴직은 보직해임을 알리는 임원의 전화 한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날벼락 같은 전화가 지금까지 굳세게 흘러왔던 물줄기를 완전히 바꾸었다.

입사한 지는 25년째, 관리자 보직을 받은 지는 13년차 되는 시점이었다. 

전화 통화에서 임원이 ‘이번에 어쩔 수 없어 발령을 내었지만 다음번에 기회가 있다’고 위로했지만 뻔한 거짓말이었다. 나이 때문에 보직 해임된 사람 중에서 아무도 자리에 복귀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는, 아직 정년을 많이 남겨두었지만 조직관리 업무를 대신할 후배들은 차고 넘쳤다.

상사가 내게 남긴 말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실적을 챙길 때는 하루에는 대여섯 번씩 전화를 하였으나 그 날 이후에는 단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

이때부터는 나는 한물간 고참으로서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을 순차적으로 겪게 되었다. 더 이상 회사와 나의 관심은 일치하지 않았고, 오를 때 함께 하였던 그 많던 동기들과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져 보이질 않았다. 가는 곳마다 나는 홀로라는 느낌이 들었다.

입사할 때는 입구가 같았지만 나갈 때는 각각 다른 출구로 나가도록 설계가 된 것 같았다. 


지방에 근무할 때는 바로 위 상사가 수시로 전화를 해서 고성을 지르며 실적을 챙기곤 했었는데, 그 동안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로 호통을 칠 때마다 가슴 속에서 욱하는 열기가 솟아올랐지만, 외곽의 책임자로서 수없이 화를 삭였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번 크게 싸워도 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임원과 회사의 결정이 야속했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남은 것은 방향도 의미도 모르는 긴 백의종군이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회사의 급여에 감사하되, 완전히 믿지는 말고 준비하고 또 준비하라고 한 임규남교수(저서 당신이 먼저 회사를 잘라라)의 말이 옳았다.


-   사진은 배근태 작가 페이스북에서 

                         

- 유리벽에 갇히다


회사에는 매년 신입사원들이 들어오고, 비슷한 숫자의 선배들이 관리직에서 물러나거나  퇴사를 해왔다. 다만 당사자가 아니면 그런 일이 먼 훗날의 일처럼 생각되었을 뿐이다.

혈기가 넘쳐 거래처와 멱살잡이하던 신입사원 시절이 엊그제 같지만, 내게도 물러날 시간이 온 것이다. 직장인은 스스로 나가지 않으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나가야한다. 

긴 시간 노동에 대한 대가는 이미 받았고, 오십이 넘으면 받는 급여에 비해 본인의 역할이 떨어진다. 위로 올라갈수록 관리직은 피라미드처럼 적어지고, 다시 실무자가 되어 오래 버티려고 하면 회사도 불편해 하고 후배들마저 불편해한다. 

회사가 조 단위의 흑자를 기록해도 실적이 부진한 부서 임원들은 여전히 회사를 떠나야하고, 실적이 나쁜 사원들은 하위고가를 받아 급여를 삭감 당한다. 이런 방식은 자본주의에서 주식회사가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크게 이긴 전투에서도 상대적으로 전공이 약한 책임자는 퇴진하고, 부진한 조직이나 개인은 불이익을 받는 것이 주식회사이다. 

최근 들어 이런 회사 내 평가방식이 결코 합리적이거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을 받고 있지만 해외 연구소나 학자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도 관리자 시절에는 사무실에서 중심인물이었고 모든 팀원들이 주목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무보직이 되어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면서 모두가 무관심하게 되고 거의 투명인간이 되어갔다. 직책이 있을 때 단지 선배라는 이유로 팀원들이 나를 따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책에서 내려오고 나면 팀원들이 ‘나’라는 사람보다는 인사와 고과 권한을 직책에 순종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출근을 해도 건성건성 인사를 할 뿐 팀원들의 눈에는 별다른 의미나 관심이 없다. 예전 부서의 후배는 물론이고 같은 처지의 선배들도 무관심해 보인다. 회사 내 모든 직책에는 권력이 있다. 그 이전에는 자신의 힘이 인격에서 나오는 줄 착각하지만 보직을 빼앗기고 나서야 내가 주목받았던 이유가 나의 경력도, 매력도, 정체성도 아니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권력이 없어졌다는 것은 어떤 책임감도 없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마음이 홀가분한 점도 있다. 애초에 그 권력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회사에서 자리만 빼앗아 간 것이 아니었다. 직책에서 내려오면서 나는 세 가지를 잃고 있었다. 센타장이라는 보직을 잃었고, 자리를 빼앗아간 회사는 연봉을 매년 줄였고, 남아있는 기간 동안 희망마저 빼앗아 갔다. 

실무자로서 부서에서 가장 터프한 일을 도맡아 했지만 연말고과는 최하위로 내정되어 있었고, 더 이상 나와 회사는 동반자가 아니었다. 종전에는 합숙교육이나 부서 책임자 회의 등 출장이 잦았으나, 이후부터는 퇴직까지 단 한 번의 교육이나 회의소집이 없었다. 

사무실에서 종일 고객과 통화를 할 때면 사무실이 유리온실처럼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게다가 젊은 고객들은 나이든 목소리에 불편을 느끼면 담당자변경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원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임원이었더라면 통보받은 순간부터 모든 직책과 권한을 내려놓고 후임자를 위해 짐부터 빼야한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전직임원들은 자신에게 닥친 일이 사회적 죽음이라는 깨닫는다.



실무자로 내려온 첫해에 계약연봉이 무려 천만 원 이상 삭감되었다. 급격한 급여삭감은 생계와 관련된 일이라고 어필을 하자 부서장은 마이너스 고과자가 받는 불이익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웃음을 흘렸다. 

과거 20여 년 동안은 해마다 승진이 되거나 연봉이 인상되었다. 어떤 경우는 연봉이 20%가량 올랐고 수석으로 진급할 때는 일천만원 이상 올랐다. 연봉을 올려줄 때도 삭감할 때도 회사는 일방적이었다.

회사의 인사 조치와 연봉조정은 내게 큰 메시지를 던졌다. 업무에 대한 기대보다는 결단할 시간을 주는 것만 같았다. 보직에서 내려온 후 아무도 미래를 이야기 해주거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은 없었다. 

올라갈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내려올 때는 보이기 시작했다. 불과 3~4년 전에 연봉을 일방적으로 크게 올려줄 때 뭔가 대비했어야 했는데,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정년까지 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강남사무실에서 1년을 근무해보니, 들새가 큰 유리벽 속에 갇힌 것 같았다.   끝


-  다음에는 3화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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