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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기도하는 곳

하늘과 바람, 파도와 해당화

by 더웨이

보이지 않는 역사를 찾아서

인천시 강화군 주문도(注文島)는 한반도의 배꼽이라 불린다. 그곳에 132년의 한 역사가 섬의 모래알처럼 쌓여 있었다. “노인이 하나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나는 그 불탄 도서관의 잔해를 찾아 9개월의 여정을 시작했다. 2022년 12월, 서도중앙교회 130년 역사 자료집을 만들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다.


1893년 여름 성공회 신부 2명이 이곳을 방문했다. 그들은 환등기로 기독교 복음을 전파했다. 그로부터 60년 후 1952년에 교회 연혁이 작성되었다. 130년간 선조들이 남긴 기록은 방대했다. 구역 회의록과 당회 회의록이 있었다. 제적부와 교적부, 역대 교역자 명단이 있었다.


토지 헌납 내용이 있었다. 20여 개의 졸업장과 상장이 있었다. 1908년(115년 전) 배재고등학교 졸업장까지 내 앞에 놓였다. 사립 영생학교 설립 기록이 있었다. 미감리회 한국 선교보고서가 있었다. 학습 세례자 명부와 예배 일지가 있었다. 주보는 물론 비품 대장과 청년부가 발행한 잡지가 있었다. 가문의 족보가 있었다. 주보를 제외하고도 1,600페이지였다. 100년 된 한옥 예배당은 인천시 문화재자료 제14호로 등재 되어있다.


기독교조선감리회 인천지방회록(1940.1.6.-8.) 통계를 보면 교인은 남 295명, 여 299명, 합계 594명이었다. 교회 신자들은 모두 일가친척이었다. 각각의 문서는 마치 퍼즐처럼 서로 연결되었다. 선조들이 남긴 기독교 역사를 찾는 일은 신비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감격의 여정이었다.


믿음으로 버틴 시간들

자료를 읽으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섬이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대한제국 암흑기와 일제강점기의 핍박이 있었다. 6·25 전쟁의 포화가 있었다. 선조들은 험난한 시간을 신앙으로 이겨냈다. 어떤 집안은 고종 시대에 '종 3품' 벼슬인 가선대부와 오위장을 지냈다. 무슨 연유가 있어 이 섬으로 피신해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도 복음을 받아들였고, 마태복음의 성경 말씀을 실행했다. 이웃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 1917년, 2천 원으로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기독신보, 1917.5.2). 선조들은 토지와 건물을 교회에 헌납했다. 일제의 억압 아래서도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민족의 문맹을 퇴치하는 운동을 했다. 인민군 치하에서 마을을 지킨 방위군이 있었다.


특별한 기록은 1950년 6·25 전쟁 때 미공군 7명을 구출한 이야기였다. 인민군은 주문도를 '작은 미국'이라 불렀다. 인민군은 미공군을 구조한 주민 4명을 납북하여 처형했다. 1962년, 미 공군과 대사관에서 주문도를 방문했다. 구조 공로자 후손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영국 성공회 신부들이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미국 선교사들이 양육했다. 주문도는 기독교 복음으로 일찍 개방되었다. 지역 사회와 국가에 기독교의 사랑과 평화를 전파했다. 어려운 상황을 일치 단결하여 극복했다. 이 작은 섬에서 시작된 후손들은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와 미국, 아프리카까지 선교하며 나갔다.


6·25 전쟁 후 마을 어르신이 육필로 남긴 글이 있었다. "이 교회, 이 제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곳으로 길이길이 수호하고 물려주자." 그 글씨를 보는 순간, 나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파도가 기도하는 섬

주문도에는 여러 별칭이 있다. 서해의 고도. 해당화 피고 지는 섬. 파도가 기도하는 섬. 사랑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섬. 한반도의 배꼽.


선조들은 육지에 살면서도 고향을 사랑했다. 고향 교회와 늘 연결되어 있었다. 교회가 어려울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거기에는 하늘에서 내려앉은 듯한 아름다운 들판이 있었다. 백사장 앞에서는 시간마저 멈췄다.


선조들의 새벽 기도에 파도가 응답했다.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긴 모래사장에 해당화가 피었다. 꽃들은 하나하나 사연을 품었다. 지금도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사랑의 종소리가 세상의 불안과 고통을 위로한다. 주민과 방문객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자료 수집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도움을 주었다. 교인들과 역대 목회자가 있었다. 교회사 신학자가 있었다. 서도중앙교회 출신 목회자와 신자들이 있었다. 특히 한국 기독교 교회사 이덕주 명예 교수는 모든 회의에 참석하여 자문해 주었다. 그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이 자료집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이 자료집의 목적은 명확했다. 주문도에 복음이 전파된 역사적 배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 선조들의 업적과 신앙 유산을 기억하는 것. 선조들의 열정과 희생을 본받는 것. 교회 공동체와 믿음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 복음의 역사를 통해 지역 사회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했는지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그루터기에서 펼처질 미래

나는 역사자료를 종이책으로 냈고, 포함되지 않은 내용은 전자 문서로 전달하기로 했다. PDF 파일과 JPG 사진 파일로 구성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문을 한글로 옮겨 적었다. 선조들의 위대한 신앙 역사에서 귀중한 교훈을 얻고 미래로 나갈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믿음의 선조들을 본받아 믿음의 열매를 맺는 곳. 영혼이 위로받고 쉼을 얻는 곳. 영혼이 치유되며 힘을 얻는 곳으로.


주문도가 순례자의 길을 걷는 영성의 고향이 되기를 바란다. 지친 영혼들이 회복되는 순례길이 필요하다. 자료를 보관하고 전시할 역사 기념관이 필요하다. 이 순례길과 역사관은 우리의 영성과 신앙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선조들이 구출한 미공군 7명의 후손들과 연결하여 그 일을 기념하는 것. 그것은 주문도의 역사적 중요성을 국제적으로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고향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후손에게 믿음의 유산을 전달하며 서도중앙교회를 지키는 모든 성도가 역사의 주인공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꿋꿋이 교회를 지키며 믿음을 이어가는 후손들이 있다.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비록 고향을 떠났어도 서도중앙교회의 신앙 유산에 감사하는 이들이 있다. 외지에서 고향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한 따뜻한 손길이 있다. 그들은 기억한다. 하늘과 바다, 바람과 파도, 해당화는 그렇게 거기에 있다고.


서도중앙교회는 복음의 그루터기였다. 복음의 깃발을 올리고 바다를 건넜다. 파도가 기도하는 곳이었다. 믿음의 뿌리는 살아 있다. 선조들이 심은 신앙의 그루터기는 후손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전했다. 모든 것이 사랑과 희생으로 이루어졌다. 선조들의 그 고귀한 유산에 경의를 표할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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