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기 때문에 하는 것들
그래도, 해야 한다
탈북민 청년들을 코칭하며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됐다. 남한 사람들은 탈북민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면 거리를 둔다. 남한 청년도 일자리가 없는데, 왜 탈북민이 그 자리를 차지하냐며 비난한다. 그들은 차별당하고, 사상과 문화의 벽에 가로막힌다. 이중의 벽 앞에서, 그들은 절망한다.
하지만 이 절망은 부분적인 것이다. 2025년 10월,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암울하다.
그래서 나는 켄트 M. 키스의 시, <역설적 십계명> "그래도, Anyway"를 떠올렸다.
한국사회의 속사정
저출산과 초고령화가 나라를 삼킨다. 아이 울음소리는 사라지고 노인만 늘어난다. 생산 인구는 줄고 사회 활력은 떨어진다.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최고 수준이다. 노후 대비는 부족하고 노인 일자리는 없다. 인구 구조의 붕괴가 국가의 미래를 위협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삶의 압박감, 고립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겹쳐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 자산, 소득 양극화는 심화된다. 부의 불균형이 극에 달했다. 상위 10%와 하위 10%의 격차는 벌어진다. 계층 이동은 막혔다. 부는 세습되고 가난도 세습된다. 사회 통합은 무너지고 계층 갈등은 깊어진다.
정치권은 협상보다 싸움만 한다. 한국인이 인식하는 최대 사회문제다. 모범을 보여야 할 자들이 오히려 불신을 키운다. 부패와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범죄자들은 활개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정의는 실종되었다.
고용과 노동이 불안정하다. 청년 실업률은 높고,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을 받는다. 일과 삶의 균형은 무너졌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성실히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다. 전세 사기가 횡행한다. 피땀 흘려 모은 돈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이 삶을 위협한다. 폭염과 한파가 극심하다. 이상 기후는 일상이 되었다. 미세먼지는 하늘을 가린다. 환경 재난은 더 자주, 더 강하게 온다.
안전사고 예방과 대응이 부족하다. 학교 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아동 학대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산업 재해로 노동자가 죽는다. 재난 대응 체계는 아직 갈길이 멀다.
개인정보 유출과 사이버 범죄가 증가한다. 개인 정보는 쉽게 새어 나간다. 보이스 피싱이 일상화되었다. 온라인에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사이버 범죄는 진화하지만 대응은 뒤처진다.
세대 갈등이 날로 증가한다. 2030 세대와 5060 세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념으로 나누고 지역으로 나눈다. 세대로 나누고 계층으로 갈린다. 대화는 단절되고 혐오만 쌓인다. 사회 통합은 멀어진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속내이다.
절망의 순간에도
1968년, 미국은 베트남 전쟁 반대, 케네디 대통령, 마티 루터킹 목사 암살로 혼돈의 시대였다. 이때 켄트 M. 키스는 하버드 대학교 2학년으로 한 편의 글을 썼다.
역설적 10 계명 (The Paradoxical Commandments) 그래도 (Anyway)이다.
사람들은 종종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하라.
당신이 선(善)을 행하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이기적인 다른 동기가 있을 것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그래도 선을 행하라.
당신이 성공하면, 가짜 친구와 진짜 적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도 성공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기 쉽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오랫동안 가장 큰 꿈을 가진 큰 사람들은, 가장 작은 생각을 가진 가장 작은 사람들에 의해 꺾일 수 있다. 그래도 큰 꿈을 가져라.
사람들은 약자를 동정하면서도, 강자만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약자를 위해 싸워라.
당신이 수년에 걸쳐 쌓아 올린 것이 하룻밤 사이에 파괴될 수도 있다. 그래도 쌓아 올려라.
당신이 선행을 베풀면, 사람들은 당신의 수고를 질투할 수 있다. 그래도 그들을 도와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사람들은 당신을 속일 수 있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당신이 세상에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주더라도, 결국 당신은 발길질을 당할 수 있다. 그래도 세상에 최고의 것을 주어라.
키스는 이 글을 쓰고 30년간 잊고 살았다. 그러나 1997년, 친구가 테레사 수녀의 책에 실린 글을 이야기했다. 그것이 자신의 글이었다. 테레사 수녀는 인도 캘커타 “사랑의 선교 수녀회(Missionaries of Charity)” 본부 벽에 이 십계명을 붙여 놓았다. 키스의 역설적 10 계명은 세계에 널리 알려졌고, 그는 비로소 자신이 쓴 글의 무게를 알게 됐다.
한국사회는 키스의 역설적 10 계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매일 절망한다. 노력해도 보상받지 못한다고 절망한다. 정의는 패배하고 불의가 승리한다고 절망한다. 미래는 없다고 절망한다. 절망은 전염된다.
그러나 절망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절망은 쉽고 책임도 없다. 절망은 시도하지 않는다. 절망은 나약함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키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해야 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당신과 하나님 사이의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출산과 초고령화가 나라를 위협하지만, 그래도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한다. 노인 빈곤율이 최고이고 노후 대비가 부족해도, 그래도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부의 불균형이 극에 달해도, 그래도 정직하게 살며 약자를 위로해야 한다.
정치가 실망스럽고 믿을 수 없어도, 그래도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들은 모범적이지 못하고 범죄자들은 활개 치지만, 그래도 정의를 지켜야 한다. 부패와 비리가 끊이지 않아도, 그래도 정의를 외쳐야 한다.
청년 실업률이 높고 일자리가 없어도, 그래도 일터를 찾아야 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 임금의 절반을 받아도,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전세 사기가 횡행해도, 그래도 보금자리를 꿈꾸며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기후 변화가 삶을 위협해도, 그래도 환경을 지켜라.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리고 산불이 산을 태워도, 그래도 나무를 심어야 한다. 안전사고 예방과 대응이 부족하고 재난 체계가 미흡해도, 그래도 서로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학교 폭력이 멈추지 않아도, 그래도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사이버 범죄가 증가해도, 그래도 디지털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 보이스 피싱이 일상화되어도, 그래도 경계하며 살아야 한다. AI 세상이 안전하지 않아도, 그래도 대비해야 한다.
세대 갈등이 심화되고 사회 통합이 어려워도 그래도 대화해야 한다. 이념으로 갈리고 지역으로 갈려도, 그래도 소통해야 한다. 혐오만 쌓여도, 그래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Why?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보상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정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옳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흔들림 속에서도 우리는 걸어왔다.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섰다. 독재와 싸웠다.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산업화를 해냈고 가난을 벗어났다. 이제 내면을 돌아볼 때다.
그 모든 변화는 절망한 자들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한 걸음씩 걸었던 자들이 만들었다. “그래도”라고 말하며 일어선 자들이 만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땅의 문제는 절망으로 풀리지 않는다. “그래도”라고 말하며 한 걸음씩 나아갈 때 비로소 길이 보인다. 나도 서툴고 더디지만 “그래도” anyway,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