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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 이대로

나를 지키는 마음

by 더웨이

실적과 명성의 사이

2021년 9월, 주차장 계단에서 쓰러졌다. 프로젝트 미팅을 앞둔 아침이었다. 어지럼증이 왔고 왼쪽 가슴이 조였다. 계단 난간을 붙잡았지만 몸이 무너졌다.


응급실에서 심방조동 진단을 받았다. 심장이 분당 250회에서 400회까지 뛰고 있었다. 시술을 받고 나서 의사가 말했다.


"과로와 스트레스입니다. 더 이상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의사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그러나 그 말은 내게 경고음처럼 울렸다.


병원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46년 직장 생활 왜 이렇게 달려 왔나? 실적과 명성이 무엇인가? 나를 쓰러뜨린 건 욕망이었다. 그 욕망의 실체를 비로소 마주했다.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

나는 성공한 사람으로 살았다. 해양 토목 엔지니어에서 경영자가 되었다. 글로벌 기업 한국 대표 25년. 실적도 좋았고 명성도 있었다. 그런데 내 안에는 그늘이 있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명성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다. 은퇴 후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며 또 다른 인정을 찾고 있었다.

멈추면 사라질 것 같았다. 휴가 때도 노트북을 챙겼다. 해외 출장지 호텔에서 밤늦게까지 이메일에 답했다. 주말에도 업무 전화를 받았다. 쉬는 게 두려웠다.


책임감이라는 이름도 나를 짓눌렀다. 대표와 가장의 책임, 교회 리더의 책임.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며 내 감정은 뒷전이었다. 피곤해도 책임과 일이 우선이었다.


심장 질환은 몸이 보낸 마지막 신호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신호를 무시했던가. 불확실한 것이 두려웠으며 모든 걸 설계하고 관리하며 살았다. 프로젝트 일정표를 만들듯 인생을 계획했다. 나이 듦도, 질병도, 관계까지 미래를 대비했다. 은퇴 설계도 준비했다.


그런데 인생에는 설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람의 마음, 갑작스러운 질병, 예기치 않은 이별은 계획할 수가 없다. 불안과 긴장이 일상이었다. 미래에 닥칠 일을 미리 걱정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엔지니어로 완벽을 추구했다.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못했다. 완벽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고 했다. 그 기준이 나를 가두었다.


내면의 그림자들

탈북민을 돕고 선교사를 후원했다. 북한 이탈 주민 청년들에게 비즈니스 코칭을 했다. 교회 리더로 봉사했다. 나는 이타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면을 살펴보니 이기적이었다.


베푸는 행위가 내 존재감을 확인하는 수단이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나를 채웠다. 선한 일을 하는 내가 좋았다.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니었다. 자기중심적 이타주의였다.


은퇴 후에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해상 풍력 컨설턴트로 연락을 하고 에세이를 쓰고 뉴스레터를 발행했다. 일을 멈추면 내가 사라질 것 같았다. 일 없는 나는 존재할 수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 직함이 사라지면 남는 게 뭔가. 그 질문이 두려웠다.


프로젝트 성공 경험이 자긍심을 만들었다. 해상 풍력 건설 업계에서 개척자로 인정받았다. 누군가 내 의견에 반대하면 방어적이 되었다. 내 이미지가 상하지 않게 방어했다.


슬픔이나 실망 같은 감정도 피했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약함이라 생각했다. 더 큰 프로젝트, 더 높은 목표로 세웠다. 2021년 그 계단에서 심장은 외쳤다. 더 이상 갈 수 없다. 멈춰야 한다.


나를 품을 용기

내 안의 그늘을 보니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인정욕구, 두려움, 완벽주의, 자기중심을 인정하며 짐을 내려놨다. 인정과 명성에서 벗어난다. 과도한 책임감을 내려놓는다.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인다.


심장의 경고에 변해야 했다. 더 이상 미래에 나를 희생할 필요 없다. 오늘을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일 때가 왔다.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


내 모습 이대로가 인생 후반전의 지혜다. 은퇴자로 살아가는 삶을 계속 배우고 있다. 불완전함이 나를 인간답게 만든다. 약함을 인정할 때 강해진다.


내 모습 그대로의 나를 안아줄 때 평안이 온다. 더 이상 달릴 필요가 없다. 계단에서 쓰러진 그날, 심장이 말했다. 이제 천천히 가라. 네 짐을 벗고 가라. 욕망을 제거하면 빛이 보인다. 너는 이미 충분히 잘했다. 이제 걸어도 된다. 내면의 그늘을 보고 네 길을 가라. 그 길에 평안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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