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데생이 그려낸 세월
케이블카 승강장의 화가
전남 목포 해상케이블카 고하도 승강장 2층. 화가는 산책로 방향 입구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도화지와 연필, 이젤에는 유명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11월 19일, 늦가을. 아내와 나는 그 앞을 지나다 발을 멈췄다. "연필 데생 초상화 한 번 해볼까? 예전에 해보고 싶어 했잖아."
우리는 조금 긴장한 채 의자에 앉았다. 마치 졸업사진을 찍으러 온 학생 같았다. 화가는 중년을 넘긴 시니어였다. 온화한 모습과 연필을 잡은 손이 예사롭지가 않았다."편하게 앉으세요. 억지로 표정 짓지 마시고, 그냥 평소처럼 계시면 됩니다."
그는 먼저 아내를 바라보았다. 눈매, 입술, 코, 턱 선을 훑어봤다. 그 시선은 단순히 모델을 보는 게 아니었다. 살아온 세월을 읽는 눈이었다.
얼굴로 읽는 세월
"초상화를 그린 지 30년 됐습니다." 연필이 종이 위를 스치기 시작했다. 침묵이 흐르고 손만 움직였다. 가는 선과 굵은 선에 이어 윤곽을 잡아갔다. 나는 앉아 있을 뿐인데 표정이 자꾸 굳어졌다. 아내도 비슷했다. 지금 이 표정이 도화지에 남겠구나 하는 생각에 표정이 더 어색했다.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일부러 웃지 마시고,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 좋습니다." 나는 아내 손을 살짝 잡았다. 아내 손이 내 손을 한 번 꼭 쥐었다 놓았다. 그 작은 동작에 긴장이 풀렸다. 화가는 자연스러운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얼굴과 세월의 결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한다. 사진을 찍을 때 미소를 지어보고, 거울 앞에서 표정을 지어 보며 더 나은 얼굴을 보여주려 애쓴다. 하지만 화가는 달랐다. "연필 데생 인물화는 투명합니다.
색을 쓰면 꾸밀 수 있는데, 연필은 그럴 수가 없거든요. 선이 그대로 다 드러납니다. 데생은 그 사람을 바라본 시간이 나타납니다." 그가 하는 일은 얼굴을 복사하는 게 아니었다. 눈가 주름에서 웃던 세월을 읽고, 미간 골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찾는 일이었다.
몇 년 전 암스테르담 국립 라이크스뮤지엄에서 본 렘브란트의 많은 자화상이 떠올랐다. 말년의 그는 자신의 노화와 고독, 인생의 굴곡을 진솔하게 그렸다. 거울 속 얼굴이 아니라, 내면과의 대화였다. 스스로 그린 자서전이었다.
화가는 과거를 묻지 않았다. 능숙한 손으로, 눈앞 얼굴에서 세월의 결을 그릴 뿐이었다.
낯선데 익숙한 모습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 다 됐습니다 하며 연필을 내려놓았다.
"한번 보세요." 종이를 돌려세우는 순간, 얼굴이 조금 묘했다. 분명 우리였다. 그런데 거울 속 얼굴과는 약간 달랐다. 주름은 분명히 그려져 있었는데 부드러웠다. 입가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던 옅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제가 본모습입니다. 자연스러운 표정이 이렇습니다. 사진하고 다릅니다."
낯선데 익숙한 얼굴. 거울은 얼굴을 그대로 보이지만, 연필 데생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둘이 밥 먹을 때, 얘기할 때의 얼굴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나타난 느낌이었다.
주름의 세월
그림을 액자에 넣어 받아 들고 2층 승강장을 나섰다. 돌아오는 해상 케이블카에 다시 올랐다. 발 밑으로 목포 바다가 넓게 펼쳐졌다. 창밖을 보다 불쑥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렇게 늙었구나. 서로의 얼굴은 매일 보니 잘 몰랐다. 종이 위에 옮겨진 주름을 보니 세월이 나타났다.
그 주름들이 마음을 잔잔하게 했다. 자녀를 키우고, 응급실의 초조했던 시간, 싸우고 화해하며 버틴 세월이 그 주름 속에 다 있었다. “얼굴 보면 살아온 세월이 보입니다. 복 받은 얼굴, 고생한 얼굴, 세월이 얼굴에 다 묻어납니다." 화가가 했던 말이다. 삼십 년 동안 사람 얼굴을 그린 화가의 세심한 관찰이었다.
함께 늙어가는 얼굴
우리 곁에는 오래 함께한 사람이 있다. 부모, 배우자, 자녀, 형제자매, 친구. 자주 보는 얼굴이라 잘 모른다. 그러나 얼굴에는 함께 살아온 세월이 새겨져 있다. 나이 든 얼굴은 역사다. 주름은 삶의 지문이다. 깊은 눈빛에 지긋한 이야기가 서려있다.
고쳐 젊어 보이려 애쓰지 말고, 지금의 얼굴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면 된다.
그날 화가는 우리에게 초상화를 그려준 게 아니었다. 서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잠깐 멈춰서 서로를 보여줬다.
집으로 돌아와 액자를 다시 한번 봤다. 그림 속 서로는 같지만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입술에 이야기가 있었고, 눈빛에는 믿음이 있었다. 연필 초상화는 인생 파노라마를 한 장에 압축해 놓았다. 함께 살아온 세월을 집합시켜 초상화가 되었다.
화가는 삼십 년 동안 사람 얼굴을 그리며 배웠다고 했다. 나도 그날 초상화에서 평소의 얼굴이 가장 편안하며,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얼굴로 서로에게 서 있었다.
아내와 나란히 앉아 초상화의 모델이 되고, 그려지는 얼굴을 기다리는 것은 노년에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인생을 반추하며 이미 살아온 얼굴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주름이 있어 보기 싫은 것이 아니라 함께 늙어가는 얼굴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