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의 추적, 코트 위의 한 게임
영업은 신뢰다
나는 25년간 건설 영업을 했다. 그동안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진정한 영업은 신뢰를 파는 일이다. 계약서는 서류에 불과하다. 서류에 서명을 하지만 프로젝트는 신뢰로 완성된다. 영업은 접대도, 말솜씨도 아니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왜 신뢰가 영업인가?
2025년 11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기사는 말했다. AI가 제안서를 쓰는 시대다. 알고리즘이 최적 솔루션을 찾아준다. 그래도 B2B 영업 인력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 이유는 명확하다. 복잡한 구매 과정의 모호함을 정리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기술은 복제할 수 있다. 가격은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신뢰는 만들어가는 것이다. 현장은 서류와 다르다. 현장은 변수가 있다. 민원이 생긴다. 비용이 증가한다.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건 계약서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다. 나는 이것을 베트남 프로젝트에서 배웠다.
6년 추적한 프로젝트
2012년 4월. 유럽 본사에서 이메일이 왔다. 베트남 화학공업단지 항만 건설 정보였다. 원도급사는 한국 대기업 K사. 나는 본사팀과 하나가 되어 제안서를 제출했다. 기술은 최고였으나 가격에 졌다. 경쟁사는 가격이 낮았지만 기술은 우리가 위였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공 난이도가 있다고 나는 확신했다. 본사와 협의했다. 다음 제안서는 공기 단축에 집중했다.
그리고 K사에 큰 변화가 왔다. 회사가 합병되고 조직이 재편되었다. 우리와 관계를 쌓았던 담당자들이 모두 교체되었다. 나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담당자들을 찾아갔다. 처음부터 설명했다.
미팅을 수십 번 하고 제안서를 수십 번 고쳤다. 거절도 수십 번 당했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2018년 6월, 드디어 낙찰 통지서를 받았다. 6년이 걸린 결실이었다. 8월에 계약서에 서명했다. 포기하지 않음으로 첫번째 신뢰를 얻었다.
테니스 라켓 두 개
계약서 서명은 했지만 계약은 시작일 뿐이다. 성공 여부는 시공 현장에서 벌어진다. 원도급사 K사의 현장 소장 TK는 원칙 주의자였다. 설계 변경도, 추가 비용도 없다고 했다.
유럽 J 본사에서 파견된 NM과는 충돌할 관계였다. 나는 NM에게 말했다. " TK 소장은 테니스를 좋아한다.” 그는 이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NM은 오래된 테니스 라켓 두 개를 챙겼다. 유럽에서 가져온 라켓이었다.
NM이 테니스 얘기는 첫 현장 미팅 후였다. "TK, 주말에 테니스 한 게임 하시죠?" TK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알았나요?" "지난번 미팅 때 말했어요."
토요일 오후, 베트남 테니스 코트는 습도가 높았다. TK가 라켓을 휘둘렀다. NM이 서브를 넣었다. 공이 오갔다.
NM은 자신의 실력을 말한 적이 없었다. "테니스 좋아합니다"라고만 했다. 사실 그는 세계 랭킹 선수와 게임한 실력자였다. 그러나 과시하지 않고 정직하게 게임했다. 이기려고 하지도, 봐주지도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했다.
TK는 상대의 실력을 알아챘다. 게임 끝났을 때, 둘 다 땀에 젖어 있었다. 상대의 짐심을 알게됐다. 그들은 일 얘기를 하지 않았다. 가족 이야기를 했다. TK 아들의 대학 입학, NM 딸의 대학 전공 이야기를 했다. 코트에서 서로를 인정했다. 그날 이후, '갑을' 관계가 사라졌다. 파트너십이 시작되었다.
나는 알았다. 테니스 라켓 두 개가 6년의 추적보다 강력했다. 스치는 말을 기억하는 세심함. 출장 가방에 챙겨온 테니스 라켓. 코트 위의 정직함. 두 번째 신뢰는 이렇게 쌓였다.
위기 속의 파트너십
현장은 관광지 해변이였다. 환경 규제가 엄격했다. 공사 구역 내에서 작은 배가 침몰했다. NM은 즉시 인양했다. 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현장은 전쟁터였으며 민원이 발생했다. 발주처가 변경을 요구했다. 공사는 멈췄다. 선박들의 대기료가 불어났다. 돈 문제는 곧 전쟁이었다.
그러나 TK와 NM은 변호사를 부르지 않았다. 현장 직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이 부분은 우리 책임입니다." TK가 말했다. "이 부분은 불가피한 추가 비용입니다." NM도 솔직했다.
TK는 믿었다. 불가피한 추가 비용을 인정했다. NM은 본사를 설득했다. 비용의 일부를 감수했다. 갈등이 있었지만 법적 분쟁은 없었다.
N사는 최고 사양의 선박을 교체 투입했다. TK는 압박하지 않았다. 공동의 목표를 향한 협력이었다. 나는 이메일로 현장 운영 상황을 알고 있었다. 숫자를 보면서도 숫자 너머를 봤다. 테니스 코트에서 맺어진 신뢰가 위기를 넘기고 있었다.
2020년5월, 준공했다. 약속된 일정을 지켰다. K사는 해외 프로젝트에서 적자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 TC 프로젝트는 흑자를 기록되었다. TK 소장은 상무로 진급했다. NM은 이사가 되어 더 큰 프로젝트를 맡았다. 회사는 정직한 사람을 인정하고, 실력 있는 사람을 승진시켰다.
이 프로젝트에 790개 이메일이 오고갔다. 나는 지금도 가끔 TK, NM과 연락한다. 우리는 더 이상 계약 관계가 아니다. 인생의 벗이 되었다.
영업은 믿는 일이다
준공후 TK는 내게 말했다. "NM이 최고였습니다." 그는 덧붙였다. "접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유럽에서 테니스 라켓 들고 와서 같이 땀 흘리는 것, 그게 영업입니다."
나는 엔지니어지만 영업을 배웠다. 영업은 화려한 언변이 아니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6년의 추적. 스치는 말을 기억하는 세심함. 출장 가방에 챙겨온 테니스 라켓. 코트 위에서의 정직함. 위기를 분담하는 책임.
이런 것들이 모여 신뢰를 쌓았다. 서류로 남은 건 계약서. 사람에게 남은 건 신뢰다.
영업은 믿는 일이었다. 신뢰로 시작해 신뢰로 끝났다.
그것이 베트남 붕따우 해변이 가르쳐준 영업이었다.